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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상 선 너머의 초록 커리

하나로 어우러지는 다양한 식재료

by 미죠떼

“너 여기 선 넘으면 죽는다아!”

초등학생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거나 입에 담아봤을 말이다. 내 책상과 네 책상, 경계가 분명했고, 지우개 하나라도 그 선을 넘으면 가차 없이 잘라버리곤 했다. 지금 돌아보면 우습기만 한 그 모습은, 어쩌면 ‘나만의 것’을 처음으로 의식하고 구분 짓기 시작한 시절의 몸짓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내 것’을 주장하며 나라는 존재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선 하나로도 야박했던 우리 반에, 어느 날 인도에서 전학생이 왔다. 이름은 드미트리. 짙은 갈색 피부에 굵직한 쌍꺼풀, 단정하게 다듬어진 스포츠컷. 우리가 평소에 보던 친구들과는 확연히 다른 외모였다. 학년당 두 반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 외국인 전학생이라니, 교실 안의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자기소개가 끝나자 쉬는 시간이 되기도 전에 아이들은 마치 자석에 끌리듯 드미트리의 책상 주위로 몰려들었다.


“인도 어디서 왔어?”

“인도말 좀 해줘!”

“한국말은 해? 한국어 해봐!”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또 다른 질문이 이어졌고, 말투는 거칠었지만 눈빛은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드미트리는 수줍게 웃으며 아이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고, 말을 아꼈다. 한국말이 서툴러서인지, 아니면 낯선 환경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떠올랐다. 나도 유치원 때 전학을 간 적이 있었다. 대구에서 태어나 강한 억양을 가져 말끝마다 사투리를 붙이던 나를 보며 친구들이 웃었고, 도시락 반찬을 신기하게 보던 눈빛이 이상하게 쑥스러웠다. 어린 나이에 어떻게든 사투리를 고치려 애썼고 집에서도 부모님에게 사투리를 하지 말라며 신신당부한 기억이 있다. 그래서인지 드미트리의 어색한 미소를 보며 예전의 내 모습이 자꾸만 겹쳐졌다. 사투리도 이렇게 서러웠는데, 이 친구는 얼마나 외로울까. 마음이 쓰였다.



‘우리 반 아이들이 외국인이라고 선을 긋고 멀리하진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짝꿍이 책상 선을 넘는 것도 용납하지 않던 아이들인데, 드미트리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조금 불안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아이들은 매일 아침 “굿모닝~”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고, 급식 시간엔 “이건 먹을 수 있어?” 하며 반찬을 챙겨줬다. 그 모습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마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처음엔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몰랐던 것뿐이었구나. 서툴렀을 뿐, 그 안엔 따뜻한 마음이 있었던 거다. 그걸 알아차리니, 나도 모르게 마음이 뭉클해졌다.


얼마 뒤, 드미트리의 아버지가 학교 근처 2층에서 운영하는 인도 커리 가게에 반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게 되었다. 문을 여는 순간, 향신료 냄새가 코끝을 휘감았고, 벽에는 인도 전통 문양과 색색의 천이 걸려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메뉴판 대신 커다란 사진이 놓여 있었고, 익숙한 노란 카레 외에도 붉은색, 초록색, 주황색 커리가 펼쳐져 있었다. 그중 초록색 커리가 유난히 눈에 띄었다. ‘내가 아는 카레는 노란색인데…’ 궁금한 호기심 반, 자신 있어하는 드미트리 아버지—사장님의 추천에 힘입어 용기 내 주문했다.


조심스레 한 숟갈 떠 입에 넣는 순간, 부드러운 크림과 시금치, 코리앤더와 고수 향이 입안을 감쌌다.

처음에는 낯설었지만, 그 속에는 부드럽게 익은 감자와 따뜻한 향이 녹아 있었다. 익숙하지 않아서 멈칫했던 맛이, 곧 다정하게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그날 우리는 모두 초록 커리를 한 그릇씩 비웠다.

누구도 “이건 이상해”라고 말하지 않았고, “다르다”는 말조차 꺼내지 않았다.

우리는 단지 “맛있다”라고, “또 오자”고, 그렇게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책상에 선을 긋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오는 게, 내 세계를 어지럽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커리 한 그릇 앞에서 우리는 그 선을 허물었다.

국경도, 언어도, 문화도 그 순간엔 아무런 장벽이 되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그 선 너머의 세상은 생각보다 따뜻했다는 것을.

드미트리는 더 이상 ‘외국인 전학생’이 아니라 그냥 내 친구가 되었다.

다르다는 것이 낯설 수는 있어도, 틀린 건 아니라는 걸 우리는 그렇게 배워가고 있었다.

어릴 적, 우리는 그렇게 ‘다름’을 알아갔다.

처음엔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천천히 다가가며 서로를 배워갔다.

그리고 배웠다.

다르다는 건 틀린 것이 아니라, 그저 우리가 아직 잘 모르는 것이라는 걸.

아이들의 순수한 눈빛과 말투는 그 사실을 가장 먼저, 그리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커리 한 그릇 앞에서 우리는 언어도, 피부색도, 출신도 중요하지 않다는 걸 느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그 마음이야말로, 이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드는 첫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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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네컷.png




시금치 새우 커리 레시피


재료

새우 60g

또띠아

시금치 70g

토마토

양파 1/4개

리코타치즈 70g

카레가루 50g

휘핑크림 50ml

아몬드 20g


조리 순서 및 방법

1. 양파는 슬라이스해 준비한다.

2. 토마토는 15초간 짧게 데친 뒤 찬물에 식히고 껍질을 벗긴다. 씨를 발라 한 입 크기로 손질한다. (Tomato Concassé)

3. 시금치는 큼직하게 썰고 마늘은 다져 준비한다.

4. 새우는 깨끗이 세척해 둔다.

5. 올리브유를 두른 냄비에 마늘, 양파, 토마토, 시금치를 넣고 볶는다.

6. 아몬드, 리코타 치즈, 카레가루, 물 200~300ml를 넣는다.

7. 블렌더로 곱게 간 뒤, 새우를 넣고 2~3분 익힌다.

8. 간을 보고 휘핑크림과 소금을 넣어준다.

9. 기호에 맞게 페퍼론치노와 후추를 넣어준다.

10. 팬에 구운 또띠아 또는 난과 함께 곁들여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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