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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마요 한 그릇에 담긴 시간

추억을 가득 담은 치킨마요덮밥

by 미죠떼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뭐 하고 지내냐??” 몇 달 만의 연락인데도 어색하지 않은 말투.
‘이 자식은 그대로네’ 하며 웃으며 답장을 보낸다. “이번에 고향 내려가는데 얼굴이나 한번 보자.”

이 친구와는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중학교 때부터 붙어 다니며, 어쩌다 보니 사회인이 된 지금까지도 연락하는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다.


볼 때마다 헤실헤실 웃는 얼굴에 유한 성격 덕인지, 아니면 무시 못할 함께한 시간 때문인지, 오랜만에 봐도 어색함이 없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반에는 하나둘 떠나가는 친구들 속에서 나만 남겨진 기분이었다. 씁쓸하고 외로웠다. ‘어른이 다 그렇지 뭐’ 하며 애써 위로해 봤지만, 여전히 무리를 지어 다니는 친구들을 보면 ‘내가 뭘 잘못했나’ 자책하기도 했다. 지금은 조금 안다. 자라면서 친구들이 떠나는 건 당연하다는 걸. 다들 자기 인생을 살아가기에도 벅찬 시기가 있다는 걸. 학생 때처럼 매일 보고 웃고 떠들 순 없어도, 가끔 불쑥 떠오르는 그 시절의 기억들이 힘든 하루를 넘기게 해 줄 때가 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만에 만나 옛날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 한둘이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이제는 안다.


그를 만나면 꼭 생각나는 곳이 있다. 우리가 자주 가던, 학교 근처의 허름한 도시락집. 식성이 비슷했던 우리는 별다른 말도 없이 늘 치킨마요덮밥을 시켰다. 가끔 고향에 내려올 때마다 둘이 다시 찾아가곤 했는데, “너는 아직 이게 안 질리냐?”며 웃는 그 얼굴은 여전했다. 뚜껑을 열면 퍼지는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 하얀 밥 위에 간장에 조린 치킨이 올려지고, 말랑하게 익힌 스크램블 에그가 자리를 잡는다. 그 위로 꾸덕꾸덕한 마요네즈가 듬뿍 뿌려지고, 김가루가 솔솔- 이건 단순한 덮밥이 아니다. 이건 우리의 시간이 담긴 한 그릇이다.



숟가락을 들면, 이상하게 그 시절이 함께 떠오른다. 학교 복도의 빛, 매점 앞에서 줄 서던 풍경, 벤치에 앉아 웃던 얼굴들. 냄새는 기억을 저장한다는 말이 있다. 치킨마요를 한 입 넣을 때마다, 그 시절 우리가 고스란히 입안에 퍼진다. 우린 마치 그 치킨마요덮밥 같았다. 순하고 부드러운 마요네즈 같은 친구와, 확실하고 강한 데리야끼 소스 같은 나. 가끔 멘털이 포슬포슬 무너질 때면, 짭조름한 치킨처럼 서로를 다독여주던 우리.


지금의 우리는 조금 달라졌다. 넌 요즘은 매운 걸 못 먹는다며 조금 더 순해졌고, 나는 예전보다 말이 줄었다.
치킨마요는 여전한데, 우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좋은 쪽으로, 익어가는 쪽으로. 이제는 각자 다른 맛을 찾아가고 있다. 서로 좋아하는 재료를 하나둘씩 더해가며, 삶이라는 메뉴를 조리 중이다. 어쩌면 치킨마요는 철없던 시절의 맛일지도 모르지만, 그 보잘것없는 한 그릇이, 문득문득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맛이 되었다.


그렇게 철없던 시절을 함께 버무린 우리는, 이제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치킨마요덮밥 한 그릇에 담긴 우정과 추억만큼은 시간 속에서도 부드럽게, 또렷하게 남아 있다. 다시 만날 날이 오면, 너와 나는 아무렇지 않게 그 도시락집 얘기를 꺼낼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그릇 시켜놓고, 예전처럼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빠르게, 웃으면서 비우겠지.




치킨마요 덮밥 레시피


재료 (1인분 기준)

닭고기: 200g

쌀: 1 공기

쪽파: 2g

대파: 1/8개

단무지: 10g

양파: 1/4개

계란: 2개

청주: 1큰술

마요네즈: 1큰술

데리야끼 소스: 1큰술

후리카케: 1작은술

김 (김가루 또는 구운 김): 적량

식용유


[소스]

간장 1T

청주 1T

요리당 1T

설탕 1/2T

다진 마늘 1/2T


만드는 방법

1. 쌀과 물을 1:1 비율로 맞춰 밥을 짓는다.

2. 강불에서 2-3분, 중불에서 6-8분 끓인 뒤 불을 끄고 뜸 들이기 5분.

3. 양파는 채 썰고, 쪽파, 대파는 송송 썬다.

4. 단무지는 작게 다지는 썰어준다.

5. 닭고기는 씻어 물기 제거 후 한입 크기로 자른다.

6. 계란 2개에 청주 1큰술을 넣고 잘 섞는다.

7. 팬에 기름을 살짝 둘러 중 약불에서 달걀물을 붓고, 가볍게 저어가며 촉촉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든 뒤 접시에 옮겨둔다.

8. 같은 팬에 기름을 보충한 뒤 닭고기를 넣고 볶는다.

9. 고기가 절반 이상 익으면 양파 채, 대파를 넣고 함께 볶는다.

10. 분량의 소스를 적당히 둘러가며 졸이듯이 바짝 볶아 소스가 걸쭉해질 때까지 가열한다.

11. 그릇에 밥을 담고, 위에 후리카케를 골고루 뿌린다.

12. 다진 단무지와, 스크램블 에그, 닭고기를 올린다.

13. 졸여진 닭고기를 스크램블 에그 위에 얹는다.

14. 김가루(또는 잘게 자른 김), 쪽파 송송, 마요네즈, 데리야끼 소스를 기호에 맞게 둘러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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