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빌딩 숲 사이로 석양이 진다. 평소 같지 않게 저무는 순간에도 여전히 뜨겁다.
그 열기에 취해 사람들은 혼돈이다. 누군가는 쓰러졌고 누군가는 도망친다. 마치 지구의 마지막을 보는듯하다.
아니! 잘 못 봤나?
가만히 보니 강하고 붉은 불빛에 모든 것이 왜곡 됐다.
흐릿한 공기 속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꽤 평화롭다.
어떤 이는 노을의 색을 멍하니 바라보고 어떤 연인들은 노을빛을 차분히 거닌다.
이 작품은 2003년 런던 테이트모던 미술관에 설치된 ‘날씨 프로젝트’라는 작품이다.
덴마크 출신의 작가 ‘올라퍼 엘리아슨’은 빛과 수증기를 사용해 관객들에게 몽환적인 체험을 선사한다.
각자 보이는 것은 다르다.
어려서부터 노을이 좋았다. 하굣길에 보이는 도로 끝자락의 석양은 마음을 울렁이게 했다. 그 울렁임을 가지고 노을길을 뛰다 보면 길가의 코스모스도 함께 일렁거렸다. 오랜만에 돌아간 고향에는 그 시절 노을도 길가의 코스모스도 없었다.
테이트 모던의 붉게 빛나는 석양은 아련한 내 어린 시절을 뿌옇게 비춰준다.
생각해 보니 보이는 건 없다. 지금 이 사진에 있는 건 내 어린 시절 노란느낌만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