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에세이 (히든 포텐셜-애덤 그랜트)
대학을 졸업하고 잠시 신림동에 기생했다. 멀리 계신 부모님을 숙주 삼아 몇 년의 시간을 보내고 나서 깨달았다. ‘난 안되는구나!’ 그리고 또 다른 숙주를 찾아 외국으로 떠났다. 당시 신림9동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세 가지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집합소였다. 그 작은 동네에 7만 명가량의 젊은이들이 밀집해서 같은 꿈을 꾸었다. 내가 그 꿈을 포기하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신림동을 벗어나기 1년 전에는 그곳의 사람들을 구경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엄습하는 죄책감을 덜어내고자 독서실에는 갔지만 의자에서 1시간 이상 집중한 적은 별로 없다. 그래도 주기적으로 밖으로 나가 체조를 해줘야 한다. 공부를 안 해도 정신은 지치고 허리는 아프다. 그럴 때는 바람을 쐬러 독서실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지나가는 사람들 구경을 했다. 그렇게 공부 한 시간 사람구경 한 시간. 공부 한 시간 사람구경 두 시간. 그렇게 사람만 구경하며 1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합격할만한 사람들은 티가 난다. 지금 와서 보면 그 느낌은 크게 틀리지 않았다. 주변의 선후배를 봐도 그렇고 까끔 티브이에서 보이는 변호사의 얼굴이 추억 속 독서실 그녀와 오버랩될 때면 더욱 그렇다. 내 예리한 촉에 경의를 표할만하다. 관상을 보는 것도 아니고 초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의 성실함이 눈에 보였을 뿐이다. 그들의 성실함은 독서실 의자에 밀착된 엉덩이에서도 느낄 수 있고 차분한 발걸음과 재수 없고 단조로운 얼굴표정에서도 느껴졌다.
사실 심리학에서 ‘성실성’은 성과에 있어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심리학자들이 신뢰하는 성격 검사 중 하나인 big5검사에서는 성격요인을 크게 5가지로 나눈다. ‘개방성, 성실성, 외향성, 우호성, 신경증성’이다. 그중 성공(?)과 가장 밀접한 관련성으로 가지는 것이 성실성(Conscientiousness)이다. 그런데 문제는 성실성이 성격이라는 것이다. 심리학자들은 성격의 많은 부분이 유전에 의해 결정되고 나머지 부분도 5세 이전에 거의 형성된다고 본다. 그러니 나이 들어서 성격이 바뀌는 것은 쉽지 않다. ’사람 절대 안 변해!‘라는 사람들의 푸념들이 전혀 근거 없는 소리는 아니다. 불행한 일이다. 특히 나처럼 예민하고 성실하지 못한 사람에겐 더욱 그렇다. 이런, 절망적이다! 내 이번생은 글러먹은 것인가? 그러나 사람의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성격만이 아님은 우리는 경험적으로 잘 알고 있다. 타고난 ‘지능이나 육체’도 중요한 요소이고 ‘환경이나 운’ 역시 무시 못할 요인 중 하나다. 그러나 이 역시 내게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지능이나 육체도 유전적 영향이 크고 환경이나 운 역시 개인이 바꾸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 정도면 자칫 운명론이나 대충 살자는 허무주의에 빠질 만도 하다.
그런데 천재 심리학자 에덤 그랜트는 저서 ‘히든 포텐셜’에서 작은 희망 하나를 던져준다. 그놈은 ‘성격인 듯 성격 아닌 성격 같은 놈’이다. 에덤은 ‘품성’이라고 칭하지만 사전적 정의와는 조금 다르다. 사전적 의미의 성격은 개인의 행동, 반응, 감정 등을 포함하는 ‘심리적 특성’을 말하고, 품성은 그 사람의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심리학이 정의하는 성격은 평소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관한 원초적(?) 본능이고, 품성은 위기상황에 우리가 본능을 넘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에 관한 후천적(?) 역량이다. 가장 중요한 품성의 특성은 후천적으로 개발 가능하다는 점이다. 품성이란 개념 자체가 희망(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히든 포텐셜’이란 뜻이 ‘잠제력’ 이란 것을 가만하면 이 책이 개발 가능한 품성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하다.
책에서 저자는 품성기량을 개발하는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법을 제시한다. 그중 가장 공감되는 것은 ‘불완전주의자’되기다. ‘완벽주의(Perfectionism)를 버리는 것‘이 ‘대충 아무렇게’는 아니다. 불완전주의자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불패(不敗)라는 완벽을 버림으로써 수많은 도전을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겪는 실패는 또 다른 경험이 된다. 이는 ‘탁월함을 추구(Exellence seeking)’할 수 있는 거름이 된다. 책에서는 ‘불완전주의자’의 대표적 예시로 세계적 건축가‘안도 다다오’를 말한다. 우리에게는 ‘빛과 콘크리트의 예술가’로 알려져 있는 건축가. 특히 그의 노출 콘크리트 공법은 많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줬다. 지금도 곳곳에 그의 공법을 따라한 콘크리트 건물을 적잖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공법이 탄생한 배경에는 ‘불완전한 완벽주의’가 있다. 제한된 예산으로 원래 의도한 건축물을 완성할 수 없었던 그는 더 중요한 곳에 집중하기 위해(Exellence seeking) 외벽을 꾸미기(Perfectionism)를 포기한다 (지금은 매끈한 표면으로 가공해야 하는 안도의 노출 공법이 비용이 더 든다). 보통 우리의 완벽주의(혹은 실패를 두려워하는 것)는 주위 평가를 의식하는데서 비롯된 경우도 많다. 이 역시 우리의 착각일 뿐이라고 저자는 실험을 통해 알려준다. 사실 사람들은 타인에게 그리 큰 관심이 없다. 적어도 우리가 걱정하는 만큼은 아니다. 몇 해 전에 베스트셀러였던 ‘빠르게 실패하기’라는 책도 ’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고리타분한 옛말도 사실은 비슷한 의미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완벽하려고 준비만 하지 말고 ‘빨리 시작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말이 쉽지 실천은 쉽지 않다. ( 그래서 저자는 그 구체적인 방법 역시 책에서 제시하고 있다. 이에 관해서는 제 불완전한 지식을 전달하기보다는 직접 책을 보시길 권한다. )
게으른데 완벽주의까지 있는 나는 며칠째 이 글을 썼다 지웠다 한다. 역시 안다고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러다 또 시작도 하기 전에 포기하고 말 것이다. 그러니 어서 대충 이 글을 마무리한다… 그래야 한다;! 사람 잘 안 변하지만 노력하면 조금은 바뀔 수 있다. 그리고 그 조금씩이 쌓이고 시간이 흐르면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난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야, 사람 변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