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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을연필 May 24. 2024

“야! T발 너 C야?”  “그럼 넌 호구세요?”

독서 에세이 (기브 앤 테이크 - 애덤 그랜트)


 토요일마다 연기수업을 듣는다. 수업이 끝나고 회식자리에서 L이 갑자기 다른 사람들의 MBTI를 맞추기 시작했다. 자신에 찬 얼굴이지만 정답률은 높지 않다. 하나둘씩 회원들의 MBTI가 밝혀졌다. F 다섯 명에 T 둘. 자연스레 공감능력 없는 T를 놀리는 분위기다. 주로 T에게 상처받은 경험담들이다. 다행히 나는 F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TV를 보면서도 자주 운다. 나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다른 회원들의 연기를 보면 감정선이 살아서 펄덕거린다. MBTI를 그리 신뢰하진 않지만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좀 더 인간적으로 느껴지긴 한다.


 진화론적으로도 공감은 무리 지어 사는 우리들에게 필수조건이다. 공감하지 못하는 인간은 집단에서 도태되어 결국 위험에 노출되기 쉬웠다. 우리는 생존을 위해 공감해야만 하는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나의 선조들도 그렇게 살아남아 공감지수 높은 나를 남기셨다.


 또한 공감은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공감력이 있어 우리는 노인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본 적도 없는 아프리카 어느 나라의 아이들에게 기부금을 보내기도 한다. 심지어는 삐쩍 마른 길냥이나 절둑거리는 길강아지에게도 인간의 공감능력은 발휘된다.


 그래서 우린 가끔 공감능력이 적은 사람을 만났을 때 냉혈한이라 비난하기도 한다. 한때는 ‘너 T발 C야?‘ (‘너 C발 T야?’라는 혐오의 뜻이다)라는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 사실 소시오패스나 나르시시스트의 공감능력은 매우 부족한 게 사실이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유튜브에서 김경일 교수는 한국은 ‘진실이 아니라 진심이 통하는 나라’라고 말했다. 칭찬인가? 싶다가 왠지 돌려 까는 것도 같았지만 그저 객관적 평가라 보고 싶다. 나도 꽤 납득이 간다. 간혹 문제를 일으킨 연예인들이나 정치인들의 진심을 다한 인터뷰는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다. 그들의 빼어나 외모나 뛰어난 언변을 접하고 나면 없는 공감력도 생길만하다. 그리고 앞서 말했지만 공감은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생존능력이다.


 문제는 항상 과할 때 나타난다. 지나친 공감은 가끔 진실을 가린다. 이성이 뒷받침되지 않고 감성에만 치우친 공감능력은 자칫 맹목적 믿음이 된다. 감성은 매우 인간적이지만 가끔 사실을 왜곡한다. 과거 히틀러의 선전 선동에 공감했던 많은 독일 국민들은 유태인과 세상에 지우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또 심리학자 애덤그랜트는 책 ’ 기브 앤 테이크‘에서 지나치게 공감하는 사람들은 ‘호구’가 되기 쉽다고 말한다. 회사에서도 궂은일을 하는 사람들은 정해져 있다. 항상 손해 보는 놈은 정해져 있다. 내가 아는 누나도 그랬다. 항상 혼자 사무실 정리를 했고 항상 밥값을 냈다. 소심한 성격의 누나는 평소에는 불만을 말하지 못했다. 그러다 어느 날 눌러왔던 억울함을 한꺼번에 폭발시켜 버렸다. 그리고 온갖 비난은 누나에게 쏟아졌다. 억울한 호구는 더 억울해졌고 아무 생각 없이 행동하던 주변 사람들은 꽤 황당해진 상황이 펼쳐진 거다.


  책에서는 그렇게 소심하고 착한 누나가 호구가 되지 않는 방법을 세 가지 제시한다. (3가지 호구 탈출법!!!)


 첫 번째는 타인의 감정이 아닌 ‘생각에 공감’하기다.

우리가 보통 생각하는 공감은 ‘정서적 공감’을 말한다. 타인의 감정에 동요되는 것이다. 이런 감정은 ‘선동과 동조‘에 취약해서 타인에게 휘둘리거나 이용당하기 쉽다. 그래서 제시하는 방안이 타인의 관점을 수용하는 ‘인지적 공감’이다. ’진심이 아닌 진실을 파악하라!‘는 김경일 교수의 말도 비슷해 보인다.


 두 번째는 ‘너그러운 앙갚음’ (너그러운 Tit for Tat 전략)이다.

이는 ‘받은 만큼만 돌려줘라’는 말이다. 모두에게 잘해주면 호구가 되니까 ‘사람 봐가면서 잘해줘라’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매번 이렇게 계산적으로 행동한다면 세상이 너무 삭막해지니 세 번 중에 한번 정도는 손해를 봐도 좋다는 의미로 ‘너그러운’이란 말을 붙였다. 이렇게 한 번씩 베풀다 보면 상대에게도 그 이타심이 전이되고 결국엔 아름다운 세상이 될 거라는 희망적 방안이다. 그런데 소심한 호구가 받은 대로 돌려주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세 번째 방안이다.


 세 번째는 ‘역할 체인지-엄마곰 효과’(mama bear effect)다.

새끼를 위하는 엄마곰처럼 자신이 아닌 소중한 사람을 위한 일이라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이다. 날 위한 행동이라 생각하면 하지 못할 행동도 새끼를 위한 거라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호구의 소심함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저자의 탁월한 식견과 선한 철학에 박수를 보낸다. 심리학을 공부할수록 느끼는 거지만 ‘인간을 연구하는 심리학은 전혀 인간적이지 않다’ 감성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하겠다. 심리학은 가장 감성적일 수 있는 인간의 심리를 실험과 통계로 잘게 잘게 썰어 증명하고 설명한다. 내가 심리학에 관심이 있는 것도 이 점 때문이다. 꽤 감성적인 내가 감성으로만 행동한다면 인생은 뻔하다. 호구 아니면 짱구;다. 그러나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심리학이 내 사고와 행동에 묻어났을 때 내 삶의 추는 균형을 이룰 것 같았다. 물론 공부가 옳은 행동만 하게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자신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는 해준다.


 요즘처럼 ‘외로움’이 화두인 시대에 누군가의 ‘공감’은 참 따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욱더 ‘공감’에 열광하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무언가 과하다 싶으면 우리는 잠시 멈추고 생각해봐야 한다. 이게 맞는지? 이래도 되는지? 아니면 산책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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