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여행기. 오얀타이 탐보에 관한 전혀 다른 두가지 이야기
*쿠스코 아르마스 광장에 서있는 파차쿠텍(Pachakuteq) 황제의 동상
*그가 통일한 영토, 잉카 제국(그는 여러 부족들을 통일해 잉카제국을 만들었다)
오래전, 안데스의 별들이 더 가까이 떠 있던 시절.
잉카 제국의 태양, 파차쿠텍 황제는 쿠스코에서 안데스 전역을 다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곁에는 언제나 충직한 장군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오얀타이(Ollantay).
전쟁터에서 그는 잉카의 독수리처럼 용맹했고, 제국의 검처럼 날카로웠다.
하지만 오얀타이의 가슴속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별 하나가 떠 있었다.
그 별은 바로, 황제의 딸. 꾸시 쿠일리르(Cusi Coyllur. 잉카어로 “기쁨의 별”을 뜻하는 이름)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밤마다 사랑을 속삭였다.
그러나 그 사랑이 너무 뜨거웠던 걸까?
결국 황제에게 발각되고 만다.
태양신 ‘인티’의 후예로 태어난 파차쿠텍 황제는 신의 피가 천한 피와 섞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공주를 신전 깊숙한 곳에 감금하고,
오얀타이에게 냉혹한 명령을 내린다.
“그대는 그 입을 닫고, 사랑도 죄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라.”
하지만 장군은 침묵하지 않았다.
그는 검을 들었다. 그리고 사랑을 위해 싸우기로 했다.
그러나 황제의 군대를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패배한 오얀타이는 고향으로 후퇴하고,
그곳에 사람들을 모아 성벽을 세운다.
그렇게 완성된 요새,
그것이 바로 오늘날의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 다.
*라마(Llama) 모양의 오얀따이 탐보 안내도 - 오얀타이 탐보는 잉카의 동물 ’라마‘모양이다.
그는 이 땅을 끝까지 지켜내려 했다.
왜냐하면 이곳은 더 이상 단순한 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곳은 사랑을 지켜낼 마지막 성채였다.
황제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
잉카 제국의 군대는 오얀타이탐보까지 진군했고,
전쟁은 무려 10년간 이어졌다.
바위가 피를 흘리고,
들꽃들은 까맣게 불탔다.
결국, 오얀타이는 패배했다.
병사들은 흩어졌고,
요새는 무너졌다.
그러나 그는 도망치지 않았다.
신전 꼭대기에 올라 태양을 향해 마지막으로 외쳤다.
“나는 황제의 명을 거역했지만,
내 사랑은 결코 신을 욕되게 한 적이 없다.”
황제는 그를 용서하지 않았다.
공주는 끝내 그를 다시 볼 수 없었다.
오얀타이는 마지막까지 지켰던 땅,
그 요새 아래에 묻혔다.
사람들은 그 뒤로 이곳을 ‘오얀타이 탐보(오얀타이가 잠든 곳)’라고 불렀다. (탐보 Tambo는 ‘보급소, 머무는 자리’라는 뜻이다.)
지금도 오얀타이탐보의 돌담 사이로는 바람이 속삭인다.
“내 사랑이 깃든 땅이여, 나는 여기에 잠들었노라.”
이것은 안데스의 산과 바람을 따라 전해지는 전설이다.
사랑 때문에 황제에게 저항했고,
저항 끝에 전설이 된 한 장군의 이야기.
그러나
오늘날, 이곳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전혀 다른 결말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것은 잉카 제국의 유일한 희곡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다.
그 이야기의 끝은 이렇다.
10년의 전쟁 끝,
황제는 오얀타이의 변치 않는 사랑에 감동한다.
그는 결국 공주와 장군의 사랑을 허락해 주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며 그에게 땅을 하사했다.
“이곳은 이제부터 오얀타이의 탐보(오얀타이가 머무는 곳)라 하겠다.
그대의 이름이 영원히 남게 하라.”
해피엔딩이다.
역시 사람들은 해피엔딩을 좋아한다.
오얀타이 탐보에 전해지는 두 가지 이야기.
하나는 비극, 하나는 낭만…
여러분은 어떤 전설을 믿고 싶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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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얀타이탐보는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가는 길목에 있다.
수도 쿠스코를 지키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
*계단을 따라 정상까지 올라가면
태양 신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곳에 40톤이 넘는 바위 6개가 나란히 서 있다.
어떻게 옮겼을까?
정말 외계인이 옮긴 것일까?
혹은 거인족이 정말 존재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