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한성 May 28. 2024

걔는.


헤어져 본 적이 없습니다. 늘 돌아가면 있는 존재였고 그 애에게도 나는 언제고 돌아오는 애였겠지요. 그러니 우리는 헤어져도 기어코 다시 만나는 사이였던 겁니다.


영영 헤어지는 상상도 습관처럼 하고는 합니다. 생각이 많아지는 새벽녘에 연습처럼 해보는 거예요. 우리는 어떤 식으로 헤어지게 될까 수천번의 경우의 수를 세어봐요. 끝은 늘 물비린내가 납니다.


오기 전에 걔는 무척 아팠어요. 이번 헤어짐은 다르다는 걸 은연중에 알았나, 나를 어떻게든 붙잡고 싶었나. 흐려진 동공 바라보며 동이 터오를 때까지 살을 문지르고 코끝을 맞대며 원망 섞인 목소리로 속삭였어요. 왜 그래. 너 이러면 나 어떻게 가. 마음 불편하라고 그러지 너. 침묵은 긍정이래요. 그 긍정을 은연중에 알면서도 부정했어요.

헤어지기 전에는 꼭 안아주는 법이에요. 늘 내가 안아줬지만 어째서인지 늘 안기는 기분이었어요. 같이 보낸 시간이 깊어질수록 자세가 바뀌어요. 수년 전에는 걔를 상승시켜 안아 빙그르르 돌았다면 이제는 내가 몸을 낮추며 바닥 가까이 심장을 기댄 채 귀와 귀가 닿도록 안아 보여요. 그래서 그때도 끌어안고 싶었어요.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하게. 아플까 봐 걱정되는 마음이 더 커 결국 마음만큼은 강하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든 동여 메고 있는 감정을 꾹꾹 눌러 담아 내가 너를 지겹도록 그리워할 거란 의미를 담아 안아주고 싶었어요.

안기고 싶었어요. 말수 적어진 걔는 숨소리로 대답하지만 그 결 마디마디에 오묘하게도 다정한 위로가 담긴 것 같았거든요. 이기적 이게도 그 숨을 통해 잘 다녀와,라는 말 따위를 듣고 싶었어요.

근데 걔는 그 새벽 나오지를 않았어요. 미세한 불빛 사이사이를 수풀 헤치듯 살펴보았는데 늘 일렁거리던 그 작은 그림자는 그날따라 보이지 않았어요.

미웠나 봐요 내가 그렇게 두고 간다고.


아득해요. 수신기 너머로 맺히는 걔는 늘 다른 곳을 봐요. 흐릿해진 망막 사이로 내가 들어오기는 할까 늘 의문이에요. 이름을 아무리 들어봐도 늘 잠이 간절한 것처럼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괴어요. 할 말이 없어져요. 무서워요 문득. 내가 돌아가도 네가 똑같은 행동을 할까 봐. 늘 자초한 일에 대한 대가는 정당하게 돌아가는 법이니까요.


흐리던 미래가 조금은 투명해지는 것 같을 때. 안정적인 걔 곁보다 불안정하더라도 조금 더 도전적이고 싶을 때. 걔가 있는 곳이 집이라는 걸 뻔히 알고 있는데도 내 집은 어디인가 장난처럼 고민하고 있을 때.

나는 또다시 만약을 가장해 너와의 헤어짐을 상상하고 있을 때.


이번에는 안아주기를 바라. 하며 꼭 끌어안아요. 이번에는 기다리지 마. 내 마음 편하자고 하는 말이에요. 그래도 조금만 기다려주면 안 될까? 이것도 나 좋자고 비는 거고요. 빨리 돌아올게. 왔다 가는 주제에 할 말은 아닌 것 같고. 사랑해. 이 말도 위악 같고. 보고 싶을 거야. 자격 없다는 걸 알아버렸어요.


너는 나를 평생 기다리고도 또 기다릴 거지. 그 생각을 하면 무릎 꿇고 빌어지고 싶어요. 왜냐하면 나는 걔를 기다리지 않거든요. 어느새 내 시간은 걔를 지나 한참 멀리 뻗어나가 또 끝없이 뻗어나가 영영 멀어질게 뻔하니까요.


근데 걔는 거기서 늘 기다리겠죠.


나 보러 와줄 거지. 돌아올 거지. 언젠가는. 그러다 흩어져버릴 것 같아서.


간혹 걔 있는 곳으로 날아갈 거예요. 하지만 또 원래 있던 자리로 날아가버리겠죠 나는. 이기적이고 나쁘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엄마가 괜찮았으면 좋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