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솜털같이 보드라운 너에게
큰아이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신경 쓴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떨지 상대가 기분이 상할지 집안분위기가 싸하면 밝게 만들려고 노력하고 별거 아닌 일에도 쉽게 사과하는 아이. 세 살 어린 동생에게도 늘 미안해를 달고 산다. 둘째는 깐돌이다. 까불기도 많이 까불지만 형아가 착해서 웬만하면 다 들어주고 사과하라고 하면 사과하니까 늘 그런 식이다.
"형아가 이거 망가뜨렸잖아 내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미안해 내가 다시 만들어줄게"
"됐어 어떻게 하는지 모르잖아, 내가 만든 건 그렇게 안 생겼어"
듣고 있자니 화가 치민다. 별거 아닌 걸로 형아를 몰아세우는 둘째와 자기 키의 반토막 밖에 안 되는 놈한테도 절절매는 그런 모습이. 집에서만 그런 건 아닐 거라는 짐작이 들어서이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들어서면서 학교 의무상담기간이 없어지고 필요시에 상담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예전엔 학기별로 한 번씩은 선생님과 만나거나 전화로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젠 그런 기회마저 사라져 버렸다. 필요하면 앱으로 신청을 하고 선생님이 승인하면 가능하긴 한데, 난 웬만하면 학교나 학원에 연락을 일절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 입으로 가뭄에 콩 나듯 듣는 소식으로 일상을 파악하는 중인데 아들만 둘이다 보니 쉽지 않다.
다치지만 않고 속상한 일만 없다면 나는 오케이다.
학교에 마음 맞는 친구가 있는지 물어본 적이 있는데 없다고 했다. 쉬는 시간에는 뭐 하냐고 했더니 1인 1 역할이 매달 바뀌는데 주로 그 역할을 하며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이번달은 창틀 닦기란다. 그렇구나, 창틀 열심히 닦고 왔겠구나.
큰아이의 학교생활에 궁금함이 시작됐던 건 며칠 전이었다.
"엄마 모둠별로 발표하는 과제가 있는데 대본을 내가 만들어 가야 한대. 어떻게 하지?"
"대본? 그걸 네가 쓰기로 한건 어떻게 정한 거야?"
"그냥 조장이 나보고 하래 나머지 세명은 ppt 만든다고 하고 나 혼자 그냥 대본 적어오래."
"그래? (일방적으로 시켰다고?... 열받지만.. 일단 릴랙스 하고)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을지 한번 적어보자."
내막은 이랬다. 두 명은 대본을 짜고 두 명은 ppt파일을 만드는데 큰아이와 같이 대본 짜야하는 아이가 일방적으로 ppt 도와준다고 가버리고 결국은 혼자 대본을 짜야한다는 이야기였다.
여기까진 뭐 오케이 괜찮았다. 다음번에 하는 아이의 말이 내 화를 살살 돋우기 시작했는데
"사실은 학교에서 대본 적어서 조장한테 보여줬는데 연필로 엑스 이것도 엑스 하면서 다 아니라고 이렇게 쓰는 거 아니라고 다시 써오라고 했어."
"그래서 너는 가만히 있었어??"(내 목소리에 화가 묻었다.)
이야기 전하는 아이의 눈이 시뻘게진다. 지가 잘못한 것도 없는데 왜 우는지 난 더 속상함이 밀려온다.
이 상황에서 아이를 다잡아 왜 그런 말도 못 했어하고 꼬치꼬치 캐물으면 더 눈물을 쏟을 것이 뻔했기에
그냥 차분한 척하려고 애썼다.
아이들과 협업하는 일에 늘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니 아이들이 던저주는 과제에 속을 썩이면서도 그냥 가만히 있는 큰아이. 너무 갑갑하고 답답해서 선생님께 전화하고 싶었다.
"선생님! 학교에서 조별과제에 준비하는 동안 이런 일이 있었는데 선생님은 모르셨죠? 한 아이가 일방적으로 과제를 내고 하라 말아라 틀렸다 다시 써라 하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요?"하고 따지고 싶었다.
"엄마가 선생님한테 전화해서 한번 이야기해 볼까?"
뻘건눈을 한 아이는
"엄마 이번에 내가 내 의견말 해볼게 그랬는데도 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엄마가 전화해 줘"
그래 스스로 바로 잡을 기회가 필요하다.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의 잔소리가 아니라 당장 내일 학교에 가서 일어날 일에 대해 거절하는 방법을 연습하는 거였다.
아이와 나는 배우가 된 것처럼 역할극을 했다.
큰아이 : "여기 이렇게 대본 준비했어"
조장: "야 이렇게 쓰면 어떻게? 이것도 잘못됐어 저것도 틀렸어 다시 써 와"
큰아이 : "나는 최선을 다해서 썼어, 지금 니 얘긴 네 맘에 들게 쓰라는 말인 거 같은데 그럼 이번엔 네가 써"
나랑 연습해 보는 중에도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음이 아프다.
덩치만 컸지 아직 마음은 보송 솜털 있던 다섯 살짜리다.
아침에 양치하며 거울 속 자신과 하이파이브했다. 이건 아빠가 알려준 아침 루틴이란다.
지금쯤이면 그 아이와 이렇게 저렇게 이야기 주고받았을 텐데. 걱정스럽다.
하지만 잘 이야기했을 거라 믿는다.
키우기 편한 아들이다.
둘째처럼 바라는 것 많은 놈이 아니었기에 순하고 착해빠져서 엄마 아빠를 편하게 해주는 아들.
미안한 마음이 든다. 당당하게 고개 들고 자기주장하라고 그렇게 하는 거라고 많이 보여줄걸.
자신감 갖게 다양한 시도 해 볼 수 있도록 이끌어 줄 걸.
" 아들! 키가 쑥쑥 자라고 있는 것처럼 마음도 자라거든. 키가 클 때 무릎이 아픈 것처럼 마음도 자라려면
성장통이 오나 봐. 보드라운 솜털이 단단해질 수 있을 때까지 엄마가 늘 함께 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