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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Oct 27. 2022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의 일기 보고서

슬롬 정규앨범 'WEATHER REPORT' 를 듣고

 듣자마자 슬롬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지 더 궁금해졌다.


 앨범소개에 적힌 그대로 이 앨범은 슬롬의 지나온 변화무쌍한 날씨를 기록한 보고서이자 슬롬의 일상을 담은 일기장이다. 일상을 담은 만큼 그의 취향이 앨범 곳곳에 산재해 있다. 앨범 커버도 카를로스 조빙을 레퍼런스 삼은 것 같고. 앨범은 최근 힙합씬에서 대중적인 동향을 가장 잘 파악해왔던 그의 행보와는 정반대에 위치해 있다. 쇼미더머니에서 가장 대중적인 사운드를 만들었고 최근 수민과의 합작 앨범 [MINISERIES]에서 정갈한 팝에 가까운 사운드를 선보였다면, 이번 단독 정규앨범은 재즈를 적극 채택하여 고전적인 사운드를 담아내는데 열중한 듯 싶다.




카를로스 조빙을 언급했지만, 몹시 '블루노트' 스럽기도 하다.



 창작자가 새롭게 쓴 소설보다는, 슬롬 본인이 일상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기록한 에세이 같은 앨범이다. 'SKIT'과 쌍둥이곡처럼 여겨지는 '아니라고'는 관계에 관한 불확실성에 잇따르는 허탈과 상실을 적어냈고, '선인장'과 'D.R.E.A.M'은 코로나 이후 슬롬 본인의 일상의 변화에서 파생한 감정을 포착했다. 자신의 처지를 선인장처럼 생각하고, 팬데믹 시기에 타인과 만남을 가지지 못해 얌전히(?) 지내야만 했던 금요일에 대한 안타까움을 곡에 담았다. 여전히 음악인으로서 활동하는 빛과소금을 향한 존경심이 묻어나오는 리메이크곡 '그대에게 띄우는 편지'는 후반부 고조시켰다가 드랍하는 변주를 줬다. 똑딱이는 사운드가 고전영화에서 나오는 음악들, 특히 반젤리스의 사운드가 연상된다. (그래서! 슬롬의 영화음악 진출을 응원합니다.)





(타이틀곡 '아니라고(Feat. Zion.T' M/V)




 취저 트랙은 6번 'WHAT DO I DO'. 눈 앞에 있는 사랑하는 너를 두고 어떡해야 할지 모르는 풋풋하고 귀여운 감정이 가득 실려있다. 이마저도 소위 '옛날 사운드'로 구성되어 있으니, 이거야말로 레트로가 아닐까 싶기도.


 나는 지나칠 정도로 자전적인 이야기를 좋아한다. 그런 이야기는 그 사람에 관한 호기심이 커지고, 결국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귀기울이게끔 한다. 물론 이 앨범이 슬롬이라는 사람을 온전히 묘사할 수는 없을 것이고, 슬롬이라는 사람을 완전하게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직설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앨범이 아니니까. 하지만 매력적인 음악, 나아가 매력적인 사람은 쉽게 이해할 수 없다. 그래야만 그 사람을 향한 관심을 오래도록 유지할테니까. 줄곧 슬롬의 음악을 '세련'이라는 키워드에 가둔 채로 들었는데 'WEATHER REPORT'는 갇힌 사고를 열어준 귀중한 앨범이다. 그가 기록한 일기보고서를 자주, 오래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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