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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Nov 07. 2022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2022 롤드컵, 그리고 데프트에게 축하를 보내며.

 2012년부터 시작한 롤챔스는 당시 20대에 게임을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특별했던 동시대적 경험이다. 스타크래프트의 인기가 꺼질 무렵 리그오브레전드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로부터 10년, 이제는 은퇴하여 해설로 전향한 선수도 있고 아예 게임계에서 멀어진 선수도 있다. 프로게이머의 수명은 프로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짧은 편이다. 20대 중반만 되면 은퇴라는 단어와 가까워진다. 하지만 놀랍게도 2022년 롤드컵 결승전에 오른 두 선수는 만 26세다. 프로게이머 세계에서는 노장 축에 속한다. 한 명은 롤을 플레이해보지 않아도 그 이름은 한 번 쯤 들어봤을 '역체롤' 프로게이머 페이커.

 다른 한 명은 원거리 딜러의 로망이라 불리는 데프트다.






 데프트는 이번 해를 ‘라스트 댄스’라고 말했다. 병역 문제도 있겠지만 최상위 실력을 가졌음에도 롤드컵 우승을 하지 못한 좌절감이 컸을지도 모른다. 롤을 즐겼던 게이머와 이스포츠 관객들은 그가 부디 좋은 성적을 내기를 염원했다. 그의 플레이는 늘 관객들을 환호하게 만들었으니까.


 그는 낭만이라는 단어에 가장 부합하는 선수다. 이미 동나이대 선수들은 은퇴했고 그의 옆자리를 대신하는 동료들은 19살, 21살, 22살 등 훨씬 어린 선수들이다. 오래 전부터 이스포츠를 관람했던 관객들에게는 데프트라는 프로게이머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울컥할지도 모른다. 내 추억의 일부에 자리잡았던 존재가 과거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곁에 있다. 17살부터 프로생활을 시작했으니 이스포츠 팬들은 그가 선수로서 성장하는 과정을 모두 지켜본 셈이다.

 데프트는 올해 자신의 친정팀 DRX로 돌아왔다. 팀은 2021년에 리그 꼴찌를 했고, 영입된 선수들은 성장 가능성은 있지만 당장은 최상위 실력자가 아니었다. 데프트는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을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과거의 동료, 그리고 우승경력이 있는 선수와 함께 해보고 싶어 돌아왔다. 우승권이 아닌 팀에서 우승을 노린다는 소년만화적인 도전에 모두가 놀랐다. 그는 이제 전성기는 아니지만 여전히 상위권 원딜러다. 그러나 '데프트 최고의 원거리 딜러인가?' 라는 질문에 모두가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결국 최고는 월드 챔피언십을 우승해야 한다. 그는 분명 최상위지만, 단 한 번도 정상에 선 적이 없었다.





"내게 롤드컵은 마치 만화 '원피스' 같은 존재다.
해적들은 원피스의 정체가 뭔지도 모르면서 그걸 찾으려 든다.
 나도 똑같다. 롤드컵을 우승하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다.
그래도 계속 도전하게 된다."



 사람들은 그가 이제 우승과는 한 발 멀어진 선수라고 생각했다. 예전보다 무뎌졌고, 팀원도 강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DRX는 매번 난투 끝에 성장했고 우승후보들을 꺾으며 결승에 진출했다. 그리고 다수가 우승후보로 점친 T1을 5세트 접전 끝에 승리하며 정상에 섰다.

 누군가는 그를 퇴물이라고 부르며 은퇴를 종용했고 누군가는 그가 우승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단한 채로 동정 섞인 응원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무너지지 않으면 언제든 이길 수 있다는 마음으로 난관을 극복했다. 동료에게 의지하고 동료를 위해 희생하며 승리 확률을 높였다. 이제는 우승하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다는듯 자신에게 주어진 난관을 즐길 준비가 된 데프트는 결승전 마지막 경기, 동료를 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가자, 가보자.


 데프트의 우승은 이미 우승과는 거리가 멀어진 선수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본 관객들의 심금을 울린다. 원래 낭만은 현실에서 조용히 소멸하기 마련이나, 데프트는 보란듯이 낭만을 실현했다. 삶의 고난과 부딪칠 때마다 좌절하는 이들에게 데프트는 단순히 프로게이머가 아니라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꺾이지 않는 마음으로 도전하는, 우리가 그토록 발휘하길 원하는 불굴의 의지를 상징한다.

 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원피스라는게 별 거 없는 것 같다. 그냥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너무 좋았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는 우승이라는 결과보다는 결과를 위해 나아갔던 수많은 어려움을 함께한 동료들을 향한 찬사처럼 들린다. 그리고 그가 해낸 것처럼, 여전히 우승을 꿈꾸며 노력하는 게이머들이 존재한다. 그렇게 낭만은 데프트에게서 다른 게이머들에게 계속 전이되어 사라지지 않는다. 비록 우승하지 못해도 상관없다. 결과보다 과정이 좋았다는 그의 말처럼, 원피스를 얻기 위해 매진한 자신의 시간은 그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ONE & ONLY 이기에.



2022 LOL WORLDS CHAMPION DRX.

그리고 DEFT 김혁규. 덕분에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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