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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연 Feb 11. 2023

그래도 영화, 사랑하시죠?

<바빌론>의 이유 있는 영화 사랑 강요

  <바빌론>은 192-30년대 헐리우드를 배경으로 '시네마 사랑'을 고백하는 영화다. 여기에는 무성영화를 사랑하는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취향이 묻어있는 동시에, 꿈과 환상의 공장이라고 불리는 '헐리우드'의 뒷면까지도 환상적이지는 않았다는걸 광란의 파티와 온갖 토사물로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아이폰이 폭스콘 노동자들을 착취한 결과물이며 나이키가 위험한 노동환경에 노동자를 몰아붙이며 세워진 제국이었다는걸 생각해 보면, 영화 또한 태생적으로 귀하고 건강하며 아름답기만 한 예술은 아니라는걸 말하고 싶은 것만 같다.





  관객들에게 헐리우드의 그늘을 나열해 놓고 '그래도 영화, 사랑하시죠?' 라고 말하는 이 영화는 시네필의 지나친 사랑 호소처럼 보인다. 허나 이 호소엔 간절함이 느껴진다. 영화 속 인물들이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로 시대적 변화를 요구받고 사라진 것처럼, 2020년의 팬데믹 이후 영화는 실질적인 위기를 맞닥뜨리고 생사의 기로에 올라선 상태다. 좀 더 나아가서 <바빌론>이 묘사하는 1920-30년대는 2010년-2020년대와 묘하게 겹쳐보인다. 관객을 위한 볼거리를 만들어 대중을 극장으로 불러모으는 대중예술의 뒷편에는 노동착취, 성폭력, 마약범죄 등 그들이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의 컨셉과는 정반대의 일들이 벌어졌다. 데이미언 셔젤은 또 한 번 찾아온 '영화의 위기'가 1920년대에 변화를 요구받은 헐리우드의 상황과 동일시하고 있는게 아닐까.



'LA의 똥구멍 씬'은 영화 이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프릭쇼'가 곧 영화의 미래임을 의미하는게 아닐까.




  영화는 줄곧 새로운 매체의 도전을 받아왔다. 1950년대 생방송 드라마, 팬데믹 이후 성장한 OTT, 그리고 보는 것을 넘어서 체감시키려는(그렇게 느끼도록 착각하게 만드는) VR까지. 영화는 숱한 신흥매체로부터 위협받았다. 유성영화의 시대로 변화하고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진 사람들처럼, 영화를 만들고 있는 사람들 또한 시대의 요구에 사라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데이미언 셔젤은 변화를 맞닥뜨린 시기에 <바빌론>을 찍었다. 후반부에 각종 실험영화와 B급무비를 나열하고, 필름에 찍힌 이미지를 RGB와 CMYK로 분해해 다시 조립하는 몽타주를 기어이 욱여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쌓아올린 영화라는 바벨탑은 다시 한 번 붕괴의 위기를 마주했다. 출신이 불분명한 자들이 목숨을 잃고 자신의 존재까지도 잊혀지면서 꽃피웠던 영화라는 대중예술은 이번에야말로 무너질지도 모른다. 이 위기 앞에서 데이미언 셔젤은 단순히 영화를 사랑하라고 강요하는게 아니라, 우리는 영화를 사랑하니 계속 영화를 만들겠다는 단단한 고백을 한 것만 같다. 난삽한 시기를 난잡하게 표현하는데 있어 기능적으로만 활용된 인물들도 있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자극적인 씬들을 멈추지 않고 쏟아내면서 감독 혼자서 중구난방으로 떠드는 것 같지만, 그 속에 묻혀 있는 애잔한 마음은 충분히 전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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