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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열린 Dec 01. 2022

낙담은 나의 힘

가질 수 없는 타인의 높다란 재능을 올려다보며 느끼는 질투는 본인을 끌어올리기 좋은 원동력이라는데 글쎄.

저런 상황에서 내가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질투보다 낙담이 훨씬 많다.


내 소소한 낙담의 서사는 이렇다.

중고등학교 시절, 예뻐서 동네를 평정한 단짝을 보며 낙담하기.

좋아하던 남자가 이쁜 그 친구랑 연애하는 것을 보며 낙담하기.

대학 입학 후, 부모님 덕분에 좋은 자취방에 사는 친구를 보며 낙담하기.

운이 좋아서 각종 뽑기 이벤트 및 인생길이 잘 풀리는 지인을 보며 낙담하기.

타고난 머리로 회사에서 날고 있는 동료를 보며 낙담하기.


그리고 현재,

내 옆에 무수히 놓인 낙담 거리로도 모자라 이젠 책을 읽으면서까지 낙담한다.

이렇게 글을 잘 쓴다고…?




어릴 때는 책을 읽으며 곧잘 스트레스를 풀었다.

책만 보면 스트레스받는다는 주위 사람들이 많았지만, 다행히 활자가 주는 거대한 압박감을 나는 못 느꼈나 보다.

세상엔 유흥거리가 많아서 점점 책과 먼 인생을 즐겼지만, 돌아온 탕자의 마음으로 돌고 돌아 나는 책에 다시 마음을 눕혔다.

내 헌사랑은 기어이 직접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으로 점철되어 자아를 고통에 몰아넣었다.

즐길 거리였던 책은, 이제 독서라는 행위를 온전히 즐기지 못하게 한다. 책을 펼치면 이야기에 몰두하는 것보다 작가의 필력에 감복해 항상 우울의 자책골로 스코어가 마무리됐다.

찰거머리처럼 붙은 낙담은 나를 떠나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이 글을 써야 되는데 나 같은 게 뭐라고 나댔지? 나는 그저 독자에 머무는 양상으로 배를 두드려야 하는 인간인데 왜 작가가 되고 싶다고 감.히. 마음먹었지?

아무리 자문해도 자답을 할 수 없다.


유튜브를 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직접 유튜버의 길로 뛰어든 친구가 낙담할 때마다 응원의 소리를 보냈는데 매번 머리를 쥐어뜯고 있는 모습은 나도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풀리지 않는 편집의 모양새로, 풀리지 않는 글감과 필력의 자물쇠로 다르지만 비슷한 양상의 좌절을 겪고 있었다.

에휴, 한때는 창작의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멋있어 보였는데 나는 창작의 ㅊ에도 못 미치면서 오만 난리부르스를 떨고 있다.


이 낙담이 나를 포기로 이끌지, 수용과 인내로 이끌지 모르겠지만 친구에게 보냈던 위로가 나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오길 바란다.

정작 친구에게 글을 쓴다는 말은 못 했지만 언제가 우리가 나란히 앉아 창작자의 고뇌를 멋진 모습으로 토론할 날이 오길 고대하고 소망하고 기대하고 기다린다. 그날이… 진짜 오겠지?

그럼가보자고!!!






Photo by nrd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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