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에 다다르고 싶다.
나는 커피를 즐겨 마시지는 않는다. 내가 혼자서 커피를 마시러 커피숍에 가는 일은 아마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것이다. 주로 나는 커피숍에 누군가를 만나러 갈 때나 오히려 가끔 ‘끼니’를 해결하러 커피숍에 간다. 그렇다면 나는 커피랑 인연이 전혀 없어야 맞겠지만 또한 그렇지도 않다.
내가 항상 커피숍에 가면 시키는 메뉴가 있다.
그것은 바로 카푸치노,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마셔본 커피 종류이다. 정말 가끔 신선함을 느껴보고자 다른 메뉴를 선택할 때도 있긴 하지만 그래도 나한테는 카푸치노가 1번이다. 계산대 앞에 서면 뇌에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자동으로 입에서 카푸치노가 튀어나온다.
사실 내가 카푸치노를 좋아해서 시키는 건지 아니면 어쩌다 종종 시킨 게 습관이 돼서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건지 가끔 헷갈린다. 생각을 곰곰이 해보니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다. 습관이 되었던, 아니면 옛날에 어딘가에서 내가 이 커피에 대해 특별함을 느꼈든 간에 일단 내가 카푸치노를 마시면 편안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카푸치노는 나에게는 커피 중에 제일 맛있는 커피여서 먹기도 하지만 카푸치노의 다른 부분에서도 매력을 느낀다. 보통 카푸치노를 시키면 당연히 마시기 위해 시키고 잔을 들겠지만, 나는 시키고 나서 커피를 관찰도 한다. 그날의 에스프레소와 우유의 비율, 거품이 있는지 아니면 가루가 카카오나 계피 중에 뭐가 들어갔는지, 데코레이션은 어떤 모양을 했는지 그 ‘조화’를 본다.
또한 가게마다 그날 점원의 상태에 따라서 비율이 달라져 맛이 약간 다를 수도 있다. 우리는 커피숍에 가면 많은 종류의 커피 메뉴를 보게 되는데 그중에 커피랑 우유의 조합으로 된 메뉴들의 가장 큰 차이는 ‘비율’이다. 카페 라때, 카페 마키아토 등등 이들의 차이는 커피와 우유의 비율이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서 명칭이 붙게 된다.
메뉴 이름의 어원들을 쫓다 보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것들이 있기도 하고 그리고 메뉴마다 비율이 정해진 게 아니라 어느 날은 바리스타의 상태에 따라서 카푸치노가 카페 마키아토가 될 수도 있고 카페 마키아토네가 될 수도 있다. 몇 퍼센트의 비율이 카푸치노가 되고 다른 커피가 또 다른 메뉴가 되는 것은 역사적 어원, 지역의 전통. 메뉴판 상의 구분인 것이지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가 않다는 것이다.
카푸치노라는 단어는 cappuccio+ino 단어의 조합이다. cappuccio라는 단어는 이탈리아에서 수도승들이 사용하는 갈색 후드 달린 수도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이제는 커피의 한 종류 로서 사용되고 한다.
ino는 이탈리아어에서 어떤 단어의 뒤에 붙으면 보다 작은 느낌이나, 조금 귀여워진 느낌을 표현할 때 사용한다.
카푸초(cappuccio)에서 조금 작아진 카푸치노(cappuccino), 원래의 것에서 조금 작아진 것. 나에게는 이 단어가 ‘중간’이라는 의미로서 와닿는다. 그렇다, 나에게 카푸치노는 ‘중간의 커피’ 같은 느낌이다.
나는 카푸치노이고 싶다. 카푸치노가 되길 희망한다. 꿈속에서도 카푸치노를 만나고 싶다. 중간의 커피를 마시며 항상 ‘중간’이고 싶다.
중간의 입장으로 생각하면 카푸치노는 수많은 다른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커피,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커피이기도 하다.때로는 한가지로만 구별 짓지 않고 여러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카푸치노만으로 정의될 수도 없다.
나는 ‘카푸치노적 인간’이 되고 싶다.
‘카푸치노적 인간’이 되기 위해 평생 카푸치노만 마셔야 할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나는 한때 유럽에 오랜 기간 살면서 평생 마셔야 할 카푸치노를 정말 다 마신 것 같기도 하다. 또 한때는 여행을 많이 다니면서 각 도시에 갈 때마다 커피숍은 꼭 갔던 것 같다.
조금 전에 커피를 즐겨 마시지 않는다고 했지만 나는 그때 당시에는 커피를 마시러 간다기보다는 문화 체험 목적으로 갔었다. 유럽이나 그 외 많은 나라들이 커피는 커피만 마시는 곳이 아니라 만남의 광장이기도 하고 그 나라 사람들의 생활 습관을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커피숍은 많은 나라에서 ‘중간의 장소’이기도 하다.
나는 ‘중간의 장소’인 커피숍에서 ‘중간의 커피’인 카푸치노를 어딜 가든 마시고 또 마셨다. 커피의 모양을 관찰하며 사람들을 관찰하기도 하고 커피숍 내부의 인테리어를 관찰하기도 했다. 지금도 여전히 나에게 메뉴는 거의 한결같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카푸치노를 마실 때마다 나는 이 한 잔의 커피를 보며 반성하기도 하고 다짐도 하고 때로는 바램을 투영하기도 한다. ‘카푸치노적인 인간’이 되기 위하여. 누가 보기에 커피 한잔 먹는 게 뭔가 굉장히 비장해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단지 커피를 먹는다는 것이. 카푸치노를 먹는다는 것은 “보며 먹는 것이다”. 그냥 나의 소소한 바램을 투영하며, 커피와 우유의 조화를 보며 비율을 보기도 하며. 그 조화 속의 중간을 찾아내고 싶은 것이다.
잠깐 관찰하고 난 후 그 편안한 느낌의 카푸치노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것이다.
다음 카푸치노가 문득 기대된다. 혼자서는 절대 커피를 사 마시지는 않으니 누군가를 만났을 때 먹을 텐데, 장소도 스타벅스일지, 이디야일지 모르겠지만 우연한 멋진 비율을 발견하기를 기대하며 기다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