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범주의의 패배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게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옛날 사람들이 ‘요즘 것들은 말을 너무 이상하게 해서 화가 난다’라며 남긴 글을 후대의 언어학자가 보고서, '이 글이 쓰이던 당시에 언어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구나' 하고 알아채는 장면을 목격하는 일이다.
그런 글을 남긴 옛사람들의 분노를 불러일으키던 언어변화가 현대에는 당연할 만큼 완전히 정착한 것이라면 더더욱 좋다. (밑에서 구체적인 사례를 구경해 보자.)
규범주의와 기술주의에 대한 글에서 말했듯이, 언어에 대한 언어학의 기본 입장은 언어 사용자더러 '언어를 이렇게 써라, 이렇게 쓰면 안 된다' 하고 간섭하는 규범주의(prescriptivism)가 아니라, 언어 현상을 있는 그대로 기술하고 설명하는 기술주의(descriptivism)이다.
그런 맥락에서, 조상들이 '언어 파괴 좀 하지 말아라!'라며 분노하며 남긴 글을 언어학자가 접할 때, 그러한 분노에는 조금도 공감하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심지어 재미있어하며) 읽고서 '이 당시에 이러한 변화가 진행되고 있었군' 하는 정보만 빼가는 모습을 보면, 조상들의 규범주의적 분노가 속절없이 무색해지는 걸 볼 수 있고, 그것은 마치 '규범주의의 패배'를 상징하는 사건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물론, 언어변화의 시대적 양상을 엿보는 일 자체에서 느껴지는 지적 희열은 덤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언어변화가 현대에는 돌이킬 수도 없이 완전히 정착한 것이라면 화룡점정이다.)
이러한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늘 있어 왔으며, 분명 앞으로도 한결같이 계속 있을 것이다. 그런 사실을 함께 떠올려 보면 승리감(?)을 한층 더 고양시킬 수 있다.
이 글은 그 사례들을 모아 본 것이다. 아래의 사례들이 독자 제위께도 비슷한 재미와 쾌감을 선사해 주기를 바란다.
1. 중국어 (현대 표준 관화)
한자를 배운 사람은 중국어 발음에서 일정한 패턴을 감지할 수 있다. 이러한 패턴은 인명이나 지명 등 고유명사에서도 일관되게 보이므로, 중국어를 전혀 배운 적이 없더라도 유심히 살피다 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 한국어(한국 한자음)로 '북경'이라 부르는 도시를 중국어로는 '베이징'이라고 부른다. '남경'은 '난징'이다.
- 한국 한자음으로 '습근평'이라 읽는 이름을 중국어로는 '시진핑'이라고 읽는다. (북한말이나 중국 조선어로는 실제로 습근평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북한에서는 우리처럼 바꾸려다가 그만뒀다는 말을 본 적이 있는 듯.)
- 한국 한자음으로 '절강성'이라 부르는 행정구역을 중국어로는 '저장성'이라고 부른다.
- '김(金)'씨 성을 쓰는 한국인이라면 중국어 수업에서 자기 이름을 '찐~진(Jīn) 무엇 무엇'으로 말하면 된다고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외에도 여러 유사한 패턴이 있지만 일단 이렇게 한국어 'ㄱ'과 중국어 'j'의 대응 패턴을 대표 격으로 제시해 본다.)
이러한 대응 패턴이 만들어진 이유는, 과거의 중국어에서 'ㄱ'과 유사하게 소리나던 자음이 지금의 중국어로 오면서 특정한 소리 앞에서 'ㅈ'과 유사한 소리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국어 시간에도 배우는 '구개음화'이다.)
그런데 중국어에는 원래도 'ㅈ'과 유사하게 소리나는 자음이 따로 있었으므로, 이전에 서로 다르게 발음되던 단어가 이러한 변화를 겪으면서 서로 같은 발음을 갖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예를 들어 아홉 구(九) 자와 술 주(酒) 자의 발음이 현대 표준 중국어에서는 jiǔ로 같아졌다.
중국어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던 시기에, 어떤 사람이 '요즘 놈들의 말버릇'에 대해 분노를 담아 남긴 기록이 있다.
"명대 말기, 태원인太原人 부산傅山은 저작 『상홍감전집霜紅龕全集』 "해타주옥咳唾珠玉"의 "보유補遺"에서 "태원사람의 언어에는 정확하지 않은 것이 많은데, 가장 천박하고 화나게 한다. 내가 젊었을 때 사람들의 말을 들으면, 백 명 중에 한 두 명뿐이었는데, 지금은 극치에 달한다. 예를 들면, 酒를 九로, 見(볼 견)를 箭(화살 전)으로 발음하는 것과 같은 것들이 너무 많아 이루 다 분별해낼 수 없다."고 하였다. 이는 태원 방언에서 일찍이 첨단(尖團)을 구분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다. 이것은 언어의 객관적인 발전 과정으로, 부산傅山은 비록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거스를 수도 없었다."
- 당작번(唐作藩), 『한어어음사(漢語語音史)』, 채영순 역 (학고방, 2018)
(위 내용은 월운 님께서 중국어 역사언어학 오픈채팅방에 소개해 주셔서 알게 되었다.)
명나라 사람의 분노 섞인 불평에 따라붙는 언어학자의 냉정한 코멘트가 매우 인상 깊다. '부산' 씨에게는 미안한 노릇이지만, 지금에 와서 표준 중국어 사용자들이 '酒'와 '九'를 같은 발음으로 읽는 것이 '천박하고 화난다'라며 진지하게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하고 감정적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그냥 눈앞에 존재하는 가치중립적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편 '酒를 九로' 발음하는 사례도 있었다는 내용이 혹 오역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ㅈ-류 발음이었던 글자도 ㄱ-류 발음으로 읽는 과도교정(hypercorrection)이 당시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 월운 님의 설명에 따르면 중국어 언어학에서 ts, tsʰ, s(또는 t͡ɕ, t͡ɕʰ, ɕ) 등을 '첨음(尖音)'이라고 부르고 k, kʰ, h 등을 '단음(團音)'이라고 부르는 것은 전자를 발음할 때 혀의 뾰족한 부분이 사용되고 후자를 발음할 때는 혀의 둥근 부분이 사용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그러한 소리에 대응하는 만주 문자의 모양이 각각 뾰족하고 둥글어서 생겨난 용어일 수도 있다고 한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김태경, 2003, <『圓音正考』와 尖團音> 참고)
+ 한편 청나라 건륭제 때는 『圓音正考』라는 책이 발간되었는데, 九와 酒 등의 발음을 구분할 줄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어떤 글자가 과거에 'ㄱ'류 발음으로 읽혔는지 알려주는 책이었다고 한다. 원래 번역을 위한 책은 아니었지만, 'ㄱ'류 소리와 'ㅈ'류 소리의 구분이 있는 만주어를 중국어로 번역할 때 그런 구분을 할 줄 모르는 중국인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김태경, 2003, <『圓音正考』와 尖團音> 참고)
2. 라틴어
2.1. Appendix Probi
Appendix Probi라는 문서는 서기 4세기 전반 경에 로마에서 쓰인 것으로, 당대에 로마 제국에서 흔했던 227가지의 라틴어 '철자 오류'와 그에 대한 '교정' 형태를 짝지은 목록을 포함하고 있다.
예를 들면 "'oculus(눈)'를 'oclus'라고 쓰지 말아라!", "'aqua(물)'를 'acqua'라고 쓰지 말아라!"와 같은 식이다.
이러한 철자 오류가 생긴 것은 분명 4세기 전반 당시의 로마인들이 'oculus'를 'oclus'처럼, 'aqua'를 'acqua'처럼 발음하는 등 라틴어 발음에 몇 가지의 새로운 습관이 생겨났기 때문일 것이다.
이 목록을 작성한 사람(들)은 분명 "젊은 것들아, 제발 언어 파괴 좀 그만 하고 제대로 된 라틴어를 써라!"와 같은 심정이었겠지만, 이 목록을 살펴보는 현대의 언어학자들은 그런 감정에 그다지 공감할 수 없고, 그저 '(통)속 라틴어가 로마어파 언어들(Romance languages, 로망스어파)로 발달하던 과정 중에 일어난 음운적, 문법적 변화'를 보여주는 자료로 취급할 뿐이다. (그리고 실제로 이러한 변화들은 스페인어, 불어, 이탈리아어 등을 만들어 내는 재료가 되었다.) 즉 "당대 로마 사람들은 (일부 규범주의적 반발에도 불구하고) '눈'을 oclus로, '물'을 acqua로 말하곤 했구나"라는 정보를 얻어갈 따름이라는 것이다.
* Appendix Probi에 나오는 목록만으로 당시의 음성 언어 현실이 어땠는지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닌 듯하다. 기존에 aqua로 적히던 말을 acqua로 적게 되었다면, 그것은 본디 [ˈa.kʷa]였던 발음이 [ˈak.kʷa]와 같이 변했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논리적으로는 이를테면 [ˈak.kʷa]와 같은 중첩 자음(geminate) 유형의 음운 배열이 라틴어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려서 철자법에 혼란이 생겼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시나리오에서라면 본디 중첩 자음으로 발음하던 단어들도 이제는 단자음으로 발음하되 철자는 여전히 중첩 자음을 사용할 텐데, 그런 발음 습관을 지닌 언어사용자 입장에서는 어느 단어가 옛날부터 쭉 단자음이었고 어느 단어가 옛날에는 중첩 자음을 갖고 있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므로, 단자음으로 발음하는 모든 단어에 대해서 중첩 자음 철자를 써 보는 과도교정(hypercorrection)이 있었을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물'의 발음은 전처럼 [ˈa.kʷa]로 하되 철자만 acqua로 쓰는 상황도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 실제로 라틴어에 일어난 변화가 둘 중 어느 쪽인지 당장 더 조사하지는 못했지만, 현대 이탈리아어나 롬바르드어, 코르시카어, 시칠리아어 등을 보니 소리가 [ˈak.kʷa]로 바뀌어서 철자가 그에 맞추어 바뀐 게 맞지 않을까 싶다.
+ 나는 아래 영상을 통해 Appendix Probi의 존재를 처음 알았다. Appendix Probi 자체를 다루는 영상은 아니지만 NativLang 영상이 다 그렇듯이 재미있고 퀄리티가 좋다.
https://www.youtube.com/watch?v=a2TWBBxwhbU
2.2.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의 성인 아우구스티누스는 지금의 알제리 북부 해안 지역에서 태어나고 활동했다. 해당 지역은 로마 제국의 영토였으므로 라틴어를 사용했는데, 노년의 성 아우구스티누스가 남긴 기록 중에 아주 흥미로운 것이 있다.
원래 라틴어에서 '입'을 가리키는 단어는 장모음 ō가 들어가는 'ōs'였고, '뼈'를 가리키는 단어는 단모음 o가 들어가는 'os'였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로마 제국 사람들은 장모음과 단모음을 구분하지 못했고 따라서 '입'과 '뼈' 두 단어의 소리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에, 말하는 사람이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 '뼈'라는 말을 할 때 'os' 대신 'ossum'이라는 형태를 사용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경건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경건에는 집중하지 않고) '내 말을 듣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장단모음을 구분 못 해서 내가 'os'라는 제대로 된 라틴어 대신 'ossum'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며 불평했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여기에 대해 '라틴어 발음을 그렇게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어째서 경건에 대해서는 그렇게 하지 않는가?'라고 안타까워했다고 한다. (원래 나는 이 대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아우구스티누스 본인이 아프리카 라틴어의 발음을 싫어했다고 썼는데, 중국어 역사언어학 오픈채팅방의 키릴로스 님께서 제대로 된 해석을 알려주셨다.)
"cur pietatis doctorem pigeat imperitis loquentem ossum potius quam os dicere, ne ista syllaba non ab eo, quod sunt ossa, sed ab eo, quod sunt ora, intellegatur, ubi Afrae aures de correptione uocalium uel productione non iudicant?"
"Why should a teacher of piety when speaking to the uneducated have regrets about saying ossum ("bone") rather than os in order to prevent that monosyllable (i.e. ŏs "bone") from being interpreted as the word whose plural is ora (i.e. ōs "mouth") rather than the word whose plural is ossa (i.e. ŏs), given that African ears show no judgement in the matter of the shortening of vowels or their lengthening?" (위키백과의 African Romance 문서에 수록된 번역. 원문은 Adams, J.N. (2007). The Regional Diversification of Latin 200 BC - AD 600. Cambridge University Press. ISBN 978-1139468817.)
위 내용을 엉뚱하게 이해하는 바람에 번역하는 데에 애를 먹다가 결국 정반대의 이상한 내용으로 업로드해 버렸었는데, 키릴로스 님께서 아래와 같이 해석해 주셨다:
'경건한 교사가 무식한 청중한테 말할 때 ossum과 같은 말을 꺼릴 필요는 없다. 청자가 이해할 수 없는 순수한 말이 어떤 이점이 있을 것인가. 청자가 이해할 수 있다면, 우선 순수한 말을 써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다지 순수하지 않은 말을 쓸 필요도 있다.' (종교적으로도 마음에 드는 말이다.)
원문의 출전은 '그리스도교 교양'이며, 분도출판사에서 낸 번역본이 있다는 점 또한 알려주셨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마따나 사람들이 '경건'보다도 더 집착하던 '순수한 라틴어'는 결국 어디 가 버리고, 이렇게 장단음을 구분하지 않는 아프리카 라틴어의 특징은 해당 지역이 로마 제국의 손을 벗어나 반달족의 땅이 되고 나서도 계속 이어졌던 모양이다. 자세한 내용은 NativLang의 영상 참고.
(써 놓고 보니, 장단모음 구분을 전혀 할 줄 모르는 현대국어 사용자로서도 미묘한 기분이 든다. 내가 쓰는 말도 한두 세대 어른들이나 아나운서들에게는 분명 마뜩잖게 들릴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Y01C1BKu8Tk
+ 본문하고 별로 상관은 없지만 흥미로워서 옮겨 싣는다.
이 그림은 위 NativLang의 영상에서 이탈리아어 등 다수의 로마어파(Romance, 로망스어파) 언어들과, 아프리카 및 사르데냐 지역의 로마어파 언어들이 라틴어의 모음 체계를 각각 변형하여 계승한 양상을 비교한 것이다. 개인적으로 두 번째 그림이 대단히 흥미롭다. 가운데 가로줄은 장단 구분을 가지고 있었던 라틴어의 모음 체계이고, 윗줄은 quality의 변형 없이 장단만 중화시킨 아프리카 및 사르데냐 지역 로마어파 언어들의 모음 체계이며, 아래쪽은 a를 제외한 단모음 i, e, u를 조금씩 아래로 내리고(각각 중모음화~근저모음화시키고), 중모음 e와 o로 내려진 단모음 i와 u의 경우 원래 그 위치에 있던 장모음 ē, ō와 합류시킨 이탈리아어 등 다수 로마어파 언어들의 모음 체계이다.
3. 영어
한편 이와 같은 일은 영어에서도 빈번히 일어났다.
미시간대 Anne Curzan 교수는 Ted 강연에서 아래와 같은 사례를 소개한다.
- 'desirability'는 terrible한 단어이고, reliable은 ([rely + 목적어]가 아니라 [rely upon+목적어]라는 이유로?) 정당한 단어가 아니며, reliable이라고 말하고 싶을 때는 trustworthy라고 말하면 그만이라는 주장(19세기). (참고로 COCA 코퍼스의 2012년 자료 기준으로 reliable은 trustworthy보다 5배 이상 많이 쓰였다.)
- contemplate나 balcony를 발음할 때 첫 음절에 강세를 넣는 것이 offensive하다는 주장(19세기). Anne Curzan 교수에 따르면 balcony는 이탈리아어 차용어라서 원래는 두번째 음절에 강세가 실렸다고 한다. 지금의 영어 사전에서는 과거에 그런 발음이 존재했다는 정보를 접하는 것조차 쉽지 않아 보인다. contemplate에 대해서는 별도의 언급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 대충 검색해 봤는데 다른 음절에 강세를 넣는 발음을 실은 사전은 아직 찾지 못했다.
- 벤자민 프랭클린은 데이비드 흄과 교류하는 과정에서 'colonize'라든가 'unshakeable'과 같은 미국식 표현(Americanism)에 대해 지적을 받았고, 그것이 '좋지 못한 말'임을 인정하였다. 'colonize'는 당시로서 흔하게 쓰이는 표현이 아니라는 이유였고, 'unshakeable'은 'rather low'하다는 이유였다는 모양이다. (... he gives "it up as rather low;")
위 테드 강연에서는 "In 1760, Benjamin Franklin wrote a letter to David Hume, giving up the word "colonize" as bad."라고 언급되고 있다.
Labaree, L. W. (1964). Benjamin Franklin’s British Friendships. Proceedings of the American Philosophical Society, 108(5), 423–428. http://www.jstor.org/stable/985816
Riddell, W. R. (1924). Benjamin Franklin and Canada. The Pennsylvania Magazine of History and Biography, 48(2), 97–110. http://www.jstor.org/stable/20086534
+ 이 강연이 '규범주의'나 '기술주의'라는 말을 사용하지는 않지만 그에 밀접한 이야기를 다루며, 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이 언중의 언어 사용을 추적하고 모사하면서도 표준적인 언어에 대한 지침을 원하는 언어 사용자에게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려고 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강의이다.
우리나라는 국가기관이 하나의 표준 사전을 만들고 언중의 언어사용을 추적하면서 주기적으로 표제어를 추가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서 봐도 좋겠다.
https://www.youtube.com/watch?v=F6NU0DMjv0Y
이외에도 1950년대에 청소년들이 국어의 /ㅔ/와 /ㅐ/를 구분하지 못하는 데 대해 불평한(?) 글이 있다고 해서 찾아 보려고 했는데 만족스러운 것을 찾지 못했다. (대신 그 과정에서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를 통해 20~70년대에 언어와 언어 정책에 관해 쓰인 기사를 몇 개 구경해 봤는데 재미가 있었다.)
사실 /ㅔ/와 /ㅐ/가 내게 있어서는 완전히 합류한 음소가 맞지만 (베트남어로 대화를 할 때 폐음절의 'ê'와 'e'를 구분 못 해서 원어민 친구들한테 지적받기도 했다. 물론 그게 /ㅔ/, /ㅐ/의 소리와 완전히 같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우리 세대에도 /ㅔ/와 /ㅐ/를 들을 때든 말할 때든 구분하는 사람은 은근히 있기 때문에(!), /ㅔ/와 /ㅐ/의 사례는 본문에 싣기에 좀 적당하지 못한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