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대학생일 때부터 만나 백수시절을 거쳐 서로의 취업과 결혼을 모두 지켜봤으니, 15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한, 그야말로 볼 꼴 못 볼 꼴 서로 다 본 사이다. 언니동생을 넘어 이제는 친구나 진배없다.
최근 몇 년 간 동생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 있었다. 차마 글로 다 풀지 못할 만큼 많고도 깊은 어둠이다. 혹시나 동생이 잘못될까 남몰래 걱정하기도 했고, 연락을 받는 것조차 힘든 일일 것 같아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도 여러 번이었다.
그랬던 동생에게 최근 좋은 일이 가득하단다. 마음껏 축하해주고 있는데, 문득 이런 말을 툭 내려놓는다.
"남들에게는 이런 일상이 그냥 평범하잖아.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특별해."
가슴이 덜컹했다. 저 한 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나 험한 가시밭길인 줄 알았다면 미리 두툼한 신발이라도 신고 대비했을 텐데, 불행은 소리 없이 찾아왔고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힘든 고비를 잘 버텨내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기특했다. 어떤 날은 죽지 못해 살았을 날도 있었을 것이고, 그저 살아가야 해서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채운 날도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 억울하면서도, 원망도 화풀이도 못 한 채 한숨조차 꿀꺽 삼켰을 아이였다.
그랬던 동생이 이제는 '행복하단다'.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이 녹아내렸다. 역시 너답다.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난이 눈앞에 놓일 때도 있겠지만, 언니의 걱정은 살포시 내려놓을 용기가 생긴다. 그때도 너답게 폴짝 잘 뛰어넘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본인도 힘든데, 주위 걱정을 하고 있길래 일갈을 빼놓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짐들까지 모두 털어버리라고 했다. 그래야 네가 산다.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나도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화를 겪으며 정신적 방황을 한 시기가 있었다. 불안정한 감정은 마치 쓰나미 같았다. 소리 없이 일순간에 빠졌고, 한순간에 폭풍으로 몰아쳤다. 그때마다 저 한 마디를 꽉 붙잡고 버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으며 분을 삭이고, 눈물을 삼키고, 미소를 쥐어짰다.
그리고 이겨냈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 새로운 동력을 찾았고, 브런치를 통해 인생 첫 책을 완성했으며,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일순간에 눈앞에 펼쳐진 인생의 풍경이 바뀌길래 길을 잘못 들어섰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길이 맞았다. 종착지가 행복이니, 잠시 멈추는 정거장마다 내가 채워야 할 것들로 가득했다. 목표로 했던 것들을 하나 둘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탄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보글거린다.
그러니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된다 하더라도 너무 비탄에 빠지지는 말자. 그 길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해 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