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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Oct 25. 2024

때론 잘못 들어선 길이 목적지로 안내한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

오랜만에 반가운 전화가 왔다. 대학생일 때부터 만나 백수시절을 거쳐 서로의 취업과 결혼을 모두 지켜봤으니, 15년 이상의 세월을 함께 한, 그야말로 볼 꼴 못 볼 꼴 서로 다 본 사이다. 언니동생을 넘어 이제는 친구나 진배없다.


최근 몇 년 간 동생에게 너무나 힘든 일이 있었다. 차마 글로 다 풀지 못할 만큼 많고도 깊은 어둠이다. 혹시나 동생이 잘못될까 남몰래 걱정하기도 했고, 연락을 받는 것조차 힘든 일일 것 같아 전화기를 들었다, 놓았다도 여러 번이었다.


그랬던 동생에게 최근 좋은 일이 가득하단다. 마음껏 축하해주고 있는데, 문득 이런 말을 툭 내려놓는다.


"남들에게는 이런 일상이 그냥 평범하잖아. 나에게는 너무 소중하고 특별해."


가슴이 덜컹했다. 저 한 마디를 꺼내기까지 얼마나 눈물을 흘려야 했을까. 행복으로 가는 길이 이렇게나 험한 가시밭길인 줄 알았다면 미리 두툼한 신발이라도 신고 대비했을 텐데, 불행은 소리 없이 찾아왔고 무자비하게 채찍을 휘둘렀다.



힘든 고비를 잘 버텨내고 자신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게 기특했다. 어떤 날은 죽지 못해 살았을 날도 있었을 것이고, 그저 살아가야 해서 꾸역꾸역 하루하루를 채운 날도 있었을 것이다. 열심히 살아온 죄밖에 없는데 왜 하필 나였을까 억울하면서도, 원망도 화풀이도 못 한 채 한숨조차 꿀꺽 삼켰을 아이였다.


그랬던 동생이 이제는 '행복하단다'. 이 말 한마디에 모든 걱정이 녹아내렸다. 역시 너답다. 앞으로도 예상치 못한 또 다른 고난이 눈앞에 놓일 때도 있겠지만, 언니의 걱정은 살포시 내려놓을 용기가 생긴다. 그때도 너답게 폴짝 잘 뛰어넘을 것이라는 믿음 덕분에.


본인도 힘든데, 주위 걱정을 하고 있길래 일갈을 빼놓지 않았다.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는 짐들까지 모두 털어버리라고 했다. 그래야 네가 산다.


너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나를 목적지로 데려다준다.



 나도 예상치 못한 인생의 변화를 겪으며 정신적 방황을 한 시기가 있었다. 불안정한 감정은 마치 쓰나미 같았다. 소리 없이 일순간에 빠졌고, 한순간에 폭풍으로 몰아쳤다. 그때마다 저 한 마디를 꽉 붙잡고 버텼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읊으며 분을 삭이고, 눈물을 삼키고, 미소를 쥐어짰다.


그리고 이겨냈다. 보란 듯이 잘 살고 있다. 새로운 동력을 찾았고, 브런치를 통해 인생 첫 책을 완성했으며, 아이와 함께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 행복하다.


일순간에 눈앞에 펼쳐진 인생의 풍경이 바뀌길래 길을 잘못 들어섰구나 싶었다. 그런데 이 길이 맞았다. 종착지가 행복이니, 잠시 멈추는 정거장마다 내가 채워야 할 것들로 가득했다. 목표로 했던 것들을 하나 둘 해결하다 보면 어느새 내가 탄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만 같은 희망이 보글거린다.


그러니 예상치 못한 길을 걷게 된다 하더라도 너무 비탄에 빠지지는 말자. 그 길이 나를 더 나은 곳으로 인도해 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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