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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Oct 30. 2024

어느 날 갑자기 방문을 '쾅'

초딩의 홀로서기

"어제가 마지막 밤인 줄 알았더라면 한 번 더 꽉 안아볼 걸 그랬어, 보라야"


친구는 열 살 아들을 키운다. 10년 간 친구와 함께 잤다고 한다. 나 역시도 7세인 딸과 늘 함께 잔다. 누구는 신생아 시절부터 수면독립을 한다지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랬던 꼬맹이가 어느 날 갑자기 친구를 내쫓더란다. 


"엄마, 이제 나 혼자 잘 수 있어. 엄마 내려가."


"... 정말?... 진짜?... 오늘?"




친구는 큰 눈을 끔뻑대며 재차 물었지만 10살 아들의 결심은 확고했다고 한다. 눈이 큰 탓에 동공지진도 고스란히 노출됐다. 그렇게 아무 소리도 못한 채 베개를 안고 '쫓겨났다'. 그날의 충격이 가시지 않은 듯, 친구는 먼 산만 바라보며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전날 밤이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잘 때 한 번 더 꼬옥 안아줄 걸 그랬어. 이제는 뽀뽀도 잘 안 해줘. 애 많이 안아 줘. 시간 금방 간다."


어머 어머, 세상에, 그랬어? 아이고 어쩌냐, 나는 감탄사만 연발할 수밖에 없었다. 남일 같지 않았다. 친구 아이와 세 살 차이이니, 곧 내게도 닥칠 일일 테다. 


선배들은 일찌감치 조언해 주셨었다. 사춘기가 시작되는 순간은 '소리'와 함께 알 수 있다고. 어느 날 갑자기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니 이것저것 따지지 말고 , 그저 많이 많이 안아주라고 하셨다.



집에 돌아와 아이를 보니 더 애틋하다.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기도 했다. '소인에게는 아직 3년의 시간이 남아있사옵니다...' 열두 척의 배로 왜군과 싸웠던 이순신 장군의 마음처럼 결연했다. 오늘은 진짜 으스러지게 안아보자, 다짐했다. 아이에게 간식을 바치며 애정을 구걸했다.


"딸~ 우리 강아지~오늘 엄마랑 꼬옥 껴안고 자 볼 테야? 엄마가 꼬옥 안아도 괜찮다고 해 줄 테야?"


아이는 본능적으로 느꼈을 것이다. '엄마가 평소와는 다르다.' 눈치 빠른 아이는 변화된 공기의 질감만으로도 심리적 우위에 올라서버렸다. 


"음... 글쎄... 엄마가 뜨거운 바람만 안 분다면."


조건이 붙어버렸다. 뜨거운 바람은 내 콧바람을 뜻하는 것이다.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숨을 내쉴 때 콧바람이 뜨겁고 덥단다. 여름이면 '숨 좀 차갑게 쉬라'며 구박을 하곤 했었다. "엄마가 어디 가서 구박받을 사람이 아닌데, 너니까 참고 듣는다!" 지렁이처럼 꿈틀거리는 반격이 전부였던 나다.


이후로 아이를 안을 때마다 숨을 죽이고 있다. 짧게 들이마시고 천천히 길게 내뱉는다. 3년밖에 안 남았다. 아직은 내 품 안의 자식이건만, 소중한 아이가 하찮은 내 콧바람에 날아갈까 얕은 숨을 뱉으며 아이를 더욱 힘껏 안아본다.  


아이가 새근새근 코를 곤다.

슬며시 팔베개를 뺀다.

답답했던 숨을 크게 내쉬어본다.

가만히 내 코에 손을 대본다.


'그렇게 뜨겁나...'


너는 나에게

식지 않는 사랑이다.



아이는 벌써 훌쩍 자랐다. 세상을 향해 홀로 설 준비도 시작하고 있다. 친구와 나는 '괜찮다, 잘 키워서 잘 독립시키자'며 서로를 다독였지만 아이들의 성장이 너무 빨라 못내 아쉬운 초보 엄마들이었다. 독립할 준비가 안 된 건 아이가 아니라 우리였다. 


글을 마무리하는 찰나, 아이가 곁으로 온다. 


"오늘 밤은 엄마랑 같이 자면 안 돼?"


애교에 쉽게 무너지는 엄마다. 7살 딸아이의 애걸을 즐기며, 늘그막의 추억을 위해 하룻밤을 또 한 번 적립해 본다. 으스러지도록 안아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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