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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보라 Nov 11. 2024

낙엽이 여행을 간다

너의 독립을 응원해

휘잉-

겨울을 재촉하는 가을바람에 낙엽이 제법 날리는 길을 걷고 있었다. 바싹 마른 가벼운 몸뚱이로 바람을 타고 이리저리 흩날리는 나뭇잎을 보던 7살 딸이 신난다는 듯 종알거린다.


"엄마! 낙엽이 여행을 가나 봐요~"


천진난만한 시야다. 엄마는 이 바람이 참 스산했는데, 너에게는 여행을 떠올리는 에너자이저였다니. 그래, 가을은 새로운 도전일 수 있다. 


"어머~그러네. 엄청 신나 보인다. 낙엽이 어디로 가는 걸까?"


맞장구를 쳐주며 아이의 감성을 북돋아 본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흩날리는 낙엽을 쫓아다니느라 분주한 아이를 보니 감회가 새롭다. 쓸쓸하지 않다.


알베르 카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올 때면 나는 늘 쓸쓸하다고 생각했다. 흑백에 가까운 잿빛 하늘에 몸을 잔뜩 움츠린 사람들. 저마다 깃을 세운 장벽 사이로 찬바람만 오가는 느낌. 뭐랄까, 알베르 카뮈의 시리고 서늘한 눈빛과도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가을바람을 맞으면서도 '여행'을 떠올릴 수도 있게 됐다. 어린 딸은 바닥에 가라앉은 낙엽들을 하늘로 던져주며 여행을 가라고 부추겼다. 나의 가을은 퍼랬다가, 노랬다가, 붉어지는 단풍처럼 다양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딸 덕분이다. 



차가운 바람이 불면 나무는 겨울을 준비하기 시작한다. 나뭇잎으로 가는 수분과 양분을 차단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초록의 엽록소는 광합성을 하지 못해 자신이 가지고 있던 색깔을 드러낸다. 카로티노이드 성분을 가진 이파리는 노란색으로 물들고, 안토시아닌 성분을 가진 이파리는 붉은색으로 변신한다. 그렇게 떨어진 이파리는 거름이 되어 나무의 새로운 양분이 된다. 


가만히 잎을 떨구는 나무의 마음은 어떨지를 생각해 본다. 아플까, 후련할까, 기쁠까. 자연의 섭리에서 부모의 마음을 엿본다. 혹시 나무는 나뭇잎의 '독립'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 한껏 자란 나뭇잎이 보금자리를 떠날 준비가 되었을 부모는 비로소 자식의 손을 놓고 먼발치서 지켜만 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항상 이 자리에 머물 테니, 너는 마음껏 세상을 여행하다 와라.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날아가라. 보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다 경험해 보아라. 그러다 힘이 들 때면 언제든 다시 돌아와 품에 안겨라. 이슬 주고 영양분 주어 새로운 잎으로 태어나게 해 줄 테니.'



가지를 흔들어 나뭇잎을 떨군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내어놓은 채 나뭇잎 없는 겨울을 견뎌내야 한다. 때때로 비바람이, 때로는 눈보라가 몰아쳐 외롭고 추운 날도 버텨내야 하겠지만, 이 또한 나무에게는 다행인지도 모를 일이다. 자식 같은 나뭇잎이 험한 계절을 겪지 않아도 되는 것이니. 


 흩날리는 이파리가 마냥 신이 난 딸아이를 지켜보며, 앙상해져 가는 나무에게서 부모의 덕을 배우게 된다. 너도 언젠가는 내 품을 떠나겠지만, 그게 언제가 되었든 너의 세상여행을 응원해야겠다, 다짐해 본다. 고작 7살짜리 딸아이를 앞에 두고 눈물이 왈칵 흐를 뻔했으니, 나는 현명하고 자애로운 부모가 되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그래, 가을은 새로운 도전이다. 엄마는 더 이상 쓸쓸하지 않다. 이제는 인고의 시간을 걸어볼 용기를 내야겠다. 가을의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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