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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Feb 25. 2023

"내 다리, 어디 있어?"

트라우마극복기 3

"내 다리... 내 다리 어디 있어?"


대수술을 마치고 난 뒤 회복실 안. 따뜻한 손이 제 작은 손을 꼭 잡고 있습니다. 나지막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왕-왕- 머리가 지끈거립니다. 기계음인지, 내 머릿속에서 들리는 소리인지... 무겁고 둔탁한 소리만 울립니다. 


누가 온몸을 결박이라도 한 듯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지만, 

눈을 뜨는 것조차 너무나 힘들고 벅찼지만, 

입안이 온통 말라붙어 입술을 떼는 것도 힘겨웠지만, 

다리의 행보가 너무나 궁금했습니다. 

내 다리는 정말 잘린 것일까.


발가락이라도 움직여볼까, 다리 감각을 느껴보려 애쓰지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아니,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그 방법마저 잊은 것 같습니다. 절망적입니다. '결국 다리가 잘렸구나...' 짧은 순간에 숱한 생각이 스쳐갑니다. 허허벌판에 혼자 우뚝 서있는 허수아비가 떠올랐습니다. 스스스솨악. 스산한 바람이 몰아치자, 한쪽의 바짓가랑이만 펄럭이는 그림이 머릿속에 펼쳐졌습니다. 


'저 허수아비가 곧 나의 모습이구나.'


있는 힘껏 실눈을 뜹니다. 하얀 천장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흐릿해져 가는 초점을 간신히 부여잡습니다. 울컥. 입 속은 침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메마른 논 같습니다. 입술을 뜯어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봅니다. 마른 목구멍 사이로 쉰소리가 긁혀 흐릅니다.


 "내 다리... 내 다리, 어디 있어?"

"보라야. 네 다리, 여기 있어."

"어디...?"

"여기..."


수녀님이 눈시울을 적시며 붕대로 칭칭 감은 제 다리를 조심스레 들어서 보여줍니다.


"내 다리 아닌 것 같은데..."

 "이거 보라 다리 맞아. 아직 마취가 덜 풀려서 그래. 보라 다리 안 잘랐어. 걱정 말고 푹 자."


수녀님은 갓 수술을 마친 다리를 살그머니 내려놓은 후, 가만히 제 가슴을 토닥입니다. 눈이 마주쳤습니다. 7살의 눈에 뜨거운 눈물이 고입니다. 목구멍이 말라붙어 우는 소리도 안 나오건만, 눈물은 소리 없이 차올라 오열하듯 흘러넘칩니다. 수녀님의 눈가도 이내 촉촉해집니다. '내 다리가 정말 붙어 있구나... 내 다리 맞구나...' 마음을 놓은 순간, 다시 깊은 잠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수녀님은 저의 막내고모이십니다. 저는 '자식 같은' 조카입니다. 세상을 일찍 뜬 오빠(=저에겐 아빠)의 어린 조카들이니 더 애틋하게 여겨질 것 같기도 합니다. 엄마보다 고모와 더 닮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외모도 판박이입니다. 목소리마저도 닮았다고들 하시니, 고모의 자식이나 다름없는 '미니미'가 맞습니다. 일찍이 성직자가 되셨지만 언제나 저를 딸처럼 어여삐 돌보아주셨어요. 


"보라는 넓은 세상을 보고 살았으면 좋겠어."


제 이름도 고모께서 직접 지어주셨답니다. '세상을 보라'라는 성경 구절에서 따와, 제 이름을 '보라'로 지으셨습니다. 이름의 뜻에 걸맞게, 저는 세상을 보고, 또 세상을 전하는 일을 하며 삽니다. 부모님이 보라색을 좋아해서 이름을 보라로 지은 것이 아닙니다. 제가 방송에서 보라색 의상을 입으면 "보라가 보라색 입었네.^^"라는 농담을 듣곤 하는데, 방송을 시작한 이후 20여 년간 들은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보라색 좋아합니다.)

각설하고, 제가 앵커가 된 건 어쩌면 고모 덕인지도 모르겠어요. 하느님의 자녀가 되셨기에, 고모 대신 수녀님으로 불러야 하지만, 여전히 저는 고모라고 부르는 게 좋습니다. 


"언니, 보라 수술하지 말고 기다려요." 


제가 인천의 모 병원에서 다리 절단 수술을 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고모는 다급히 엄마를 저지했습니다. 고모 역시도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셨다고 합니다. 당시 수원성빈센트병원에서 근무하고 계셨던 고모는 소식을 듣자마자 그 길로 인천으로 달려오셨고, 저를 데리고 다시 수원으로 갔습니다. 제 손을 꼭 잡고 앰뷸런스에 함께 오르셨지요. 차가운 공기 속에 사이렌 소리만이 간간이 울렸습니다. 핏기 하나 없는 싸늘한 공기 속에서도 고모의 손은 참 따뜻했습니다.


수술은 수원에서 진행했습니다. 설사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해도, 고모의 눈으로 직접 수술을 보고 싶으셨다고 합니다. 하늘이 도와 명의를 만났습니다. 10시간에 가까운 힘겨운 수술이었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정말 고생하셨다고 합니다. 괴사 된 살과 근육을 일일이 도려내야 했으니까요. 어떻게든 다리 절단만은 막는 것이 목표였고, 수술은 성공했습니다.


"이 녀석아. 선생님이 너 다리 살려내려고 두 눈 부릅뜨고 일일이 다 도려냈다. 눈알이 빠질 것 같다. 고생했다." 회복실에서 나와 정신을 차린 뒤에야 담당 선생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 초췌한 얼굴 속에서도 눈은 빛났습니다. '희망이 넘치는 눈빛'이 존재한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고모께서 신신당부하신 덕도 있었지만, 환자들에게, 특히나 아이들에게는 더없이 인자하시고 장난기 넘치는 선생님이셨어요. 그러던 어느 날, 인자하신 선생님이 호랑이처럼 변하는 사건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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