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앵커엄마 Mar 01. 2023

'왁싱'인지, '드레싱'인지

트라우마극복기 4

"너 이 새끼, 저게 얼마나 아픈 줄 알아? 쟤가 네 화풀이 대상이야? 저 조그만 애가?"


회진 때마다 환히 웃어주고, 예뻐해 주시던 선생님이 돌연 몸을 돌려 '꼬마 선생님'께 버럭 화를 내셨습니다. 전설의 '조인트 까기'! 구둣발로 정강이가 까이는 장면을 눈앞에서 처음 봤습니다. 저는 붕어처럼 입만 벙긋. 병실은 순식간에 얼어붙었습니다. 


'조인트'의 원인은 드레싱에 있었습니다. 매일 아침 수술한 상처를 소독하고, 붕대를 새로 감는 일을 반복했는데요, 상처 바로 위에 덧댄 거즈가 문제였습니다. 상처에서 나오는 고름이 엉겨 붙어 거즈를 살살 떼어내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거든요. 더군다나, 7살 아이는 고통을 참는 법에 서툴렀답니다. 드레싱을 할 때마다 얼마나 울어댔겠어요? 


대부분의 날에는 호~호~불어가며 상처에 들러붙은 거즈를 살살 떼어주셨지만, 언제부터인가 거칠게 붕대를 풀어낸 후, 거즈를 확 떼어내시더라고요. 마치 왁싱하듯이 쫘악. 거즈를 떼는 손길은 시원했을지 모르나, 제 다리의 상처는 보란 듯이 터져버렸고, 피가 철철 흘렀습니다. 당연히 저는 자지러졌고요. 상처가 아물만하면 쫘악. 또다시 아물면 쫘악. 왁싱 같은 드레싱은 한동안 이어졌고, 저는 드레싱이 있는 회진 때만 되면 문이 열리자마자, 흰 가운이 보이자마자 울기 바빴습니다. 


문제의 그날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네요. 정. 말. 아팠거든요. 저도 발악하듯 울어댔습니다. 침대에 묶인 신세나 다름없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반항은 눈물이었습니다. 때마침 우는 소리를 들었던 담당 선생님이 병실에 오셨고, 상처를 들여다보시곤 불처럼 화를 내셨습니다. 정강이를 가격 당했던 꼬마선생님은 다음날 따로 오셔서 저와 엄마께 사과하고 가셨습니다.


이제와 생각하면 일면 이해도 됩니다. 꼬마선생님은 늘 피곤에 절어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전날 당직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잠 못 자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이제는 이해합니다. 매일 아침 귓가를 때리는 째지는 울음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제가 어렸을 때부터 한 목청 하기도 했으니, 힘드실 법도 하죠. 어쩌면 하필 그날따라 너무 피곤하셨을지도, 그날따라 기분이 좋지 않은 일이 있으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공포가 각인됐나 봅니다. 저는 아직도 드레싱 도구를 보면 손이 덜덜 떨립니다. 몇 해 전, 다리에 종양이 생겨 제거 수술을 했는데, 그때도 드레싱을 할 때 심장이 벌렁거려 눈을 감지 안고서는 진정이 안 되더라고요. 병원에 대한 트라우마는 현재진행형입니다만, 이겨내려고 노력 중입니다. 제 인생의 남은 날들 중에 아마 오늘이 제일 긴장하는 날이겠거니... 오래된 기억 속 아픔을 바라보는 시선은, 오늘보다는 내일 더 의연하겠거니... 스스로를 다독여 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다리, 어디 있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