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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앵커엄마 Dec 15. 2023

우울한 어제, 불안한 내일

그리고 평화로운 오늘의 나


우울하면 과거에 사는 것이고

불안하면 미래에 사는 것이며

마음이 평화롭다면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것이다.


-노자


인생은 신호등과 같다.  빨, 노, 초록. 3개의 신호 속에서 살아간다. 앞길이 늘 거침없는 초록 불이면 얼마나 좋겠느냐마는 도로 사정이 그렇지가 않다. 신나게 달리다가도 언제 그랬느냐는 듯 노란 불이 켜진다. 잠시 속도를 줄여 과거를 돌아보라는 뜻일까. 찰나였지만 과거를 다 보면 금세 빨간 불이 켜진다. 멈춰 서야만 한다. 남들은 다 가는데 나만 서버렸네. 내 앞에만 또 빨간 불이네. 오늘도 기어코 좌절라는 쓸개 같은 누런 맛을 보고야 만다.


노란 쓸개즙에 인상을 구기며 과거에 침잠할수록 아이러니하게도 다음 순서는 이글거리는 빨간 불, 불안이다. 우울하니까 불안하다. 당연한 수순이다. 남들이 초록 신호를 받아 앞으로 나아가는 사이, 내 앞에서 끊긴 신호를 원망하며 내가 갖지 못한 미래를 질투한다. 남들은 다 쉽게 이루는 것만 같다. 합격도 척척, 승진도 척척, 육아까지 척척. 왜 나만 제자리인가. 왜 내 앞에서만 정지 신호가 떨어지는가. 세상과의 밀당에서 늘 지는 기분, 온몸에 절은 패배감이 먹물처럼 번져 영혼을 잠식당하는 기분.


이런 불쾌하고 억울한 감정을 이겨내려면 남 탓을 하는 편이 그나마 수월하다.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세상 탓을 해본다. '아이고 내 팔자야.' 신세 한탄의 고전, 팔자 탓도 빠질 수 없지. '내 차가 람보르기니였다면, 1초 만에 달렸을 텐데.' 죄 없는 차 성능도 탓해본다. 제아무리 비싸고 잘 나간다는 롤스로이스가 와도 정지 신호는 꼭 받는 게 세상이다. 신호등 앞에서는 모두가 공평한데,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른 것뿐이다.


누구에게나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다.  지우개를 삼켜서라도 나의 실패를 지울 수만 있다면, 깊은 좌절로 늪에 빠져 허우적대던 과거의 나를 지울 수만 있다면, 기꺼이 그리 하겠다. '그때 그 일만 없었더라면...' 과거에 빠져 허우적거릴수록 우울의 늪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다. 과거는 언제나 질척거리는 법이니까. 


그런데 나만 매일 아픈 건 아니다. 밤하늘을 밝게 채우는 달도 사실은 아픈 손가락이 있다. 태양 주위를 빙빙 돌고 있어도, 영원히 햇빛이 닿지 않는 영구음영(永久陰影) 지역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희망의 옥토끼는 그곳에 살지 않는다. 그런데도 어찌 달은 염원의 대상이 된 것일까. 짐작건대, 초승달에서 보름달로 차오르는 기쁨도 맛보고, 다시 그믐달로 살이 깎이는 아픔도 맛보며 삶의 질곡을 견뎌내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어둡다고 해서 죄악인 것은 아니다. 빛이 돋보이려면 반드시 어둠을 동반해야 한다. 어둠 없는 밝음 없고, 과거 없는 미래도 없다. 누구에게나 감추고 싶은,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우울하지는 않다. 과거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요리하느냐에 따라 내 미래가 바뀐다. 초승달은 머지않아 그믐달이 될 것이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차오르길 마다하지 않는다. 그믐달이 지나면 다시 뽀얀 살이 차오를 거라는 희망이 있다. 차분히 기다려 초록 불을 맞이하는 것이다. 


시간은 공평하다. 누구에게나 24시간이 주어진다. 돈 많고 능력 있다고 30시간 주고, 가진 게 없다고 3시간 주지 않는다. 마음이 가난하지, 시간이 가난하겠는가. 초록 불 신호를 받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빨간 불을 견디면 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가로막아도 스쳐 지나도록 잠시 놔두어라. 노란 불에 가버릴 걸, 후회해 봤자 신호 위반 밖에 더 되겠느냐 말이다. 불안에 사로잡힌 나머지 딱지 떼이고 벌금 무는 것처럼 손해인 것이 없다. 잠시 한숨 돌리고 차분히 다음 신호를 기다리면 된다. 빨간 불 다음은 반드시 초록 불이 켜진다.


우리에겐 세 종류의 시간이 있다고 한다.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그중 우리는 오직 하나의 시간만 살 수 있다. 바로 '지금'이다. 과거는 아무리 용을 써도 다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그 누가 와도 시간을 앞으로 돌릴 수 없다. 우리는 오직 '오늘'만 살 수 있다. 노자가 말하는 '마음이 평화로운'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한다.


우울하고 불안한 청춘에 함께 '오늘'을 살아가자고 권하고 싶다. 치열한 오늘을 살다 보면 내가 밟고 지나온 길이 후회될 리 없고, 가질 수 없는 미래를 꿈꾸며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지금 하는 것처럼 계속 나아가다 보면 그 길이 결국 내가 꿈꾸는 미래로 이어진다. 과거를 돌아보며 우울해하지 말고,  묵묵히 평화로운 마음을 꿈꾸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오늘만 살아보려 한다. 열심히, 평온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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