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시원 Aug 13. 2023

'직위 보상'에 신중해야 하는 이유

논공행상과 후광효과의 부작용


초왕 항우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유방은 한(漢)나라를 건국한 후 대대적인 논공행상을 실시했다. 명단의 최상단에는 유방이 가장 총애하는 이름들이 올라 있었다. 우리에게 익숙한 장량, 한신, 소하가 그 주인공들이다.


군주가 공이 있는 신하들에게 상을 내리는 것은 성과와 공헌에 대한 당연한 보답이자, 배신과 이탈을 막기 위한 방편이다. 내부 경쟁을 유도하여 더 많은 성과와 충성심을 유인하기 위한 목적도 있다.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이 있다 해도,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주군과 조직을 위해 헌신하기는 쉽지 않다. 다만, 충분한 보상이 보장된다면 가능한 일이다. 로마가 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중 하나는 우수한 인재들에게 끊임없이, 그리고 노골적으로 탐욕을 자극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역사는 영광의 주인공들 모두에게 해피엔딩을 보장하지 않는다. 통상 비극은 논공행상이 끝난 후부터 시작된다.


원인 중 하나로 보상의 종류를 지목할 수 있다. 보상의 종류에는 현물(돈, 물건, 토지, 식읍 등)과 직위로 나눌 수 있는데,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직위 보상'이다. 직위가 위험한 이유는 군주와 경쟁자들의 견제와 의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능력에 맞지 않는 자리는 자신과 대중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뛰어난 책사 장량(장자방)은 유방의 목숨까지 구한 일등 공신이었지만, 유방이 하사한 왕위와 엄청난 식읍을 사양하고 일부 영토만을 받은 후 미련 없이 낙향했다. 창업에는 탁월한 능력을 보였지만, 전쟁이 끝난 후 수성에는 자신의 역할이 없다는 것을 미리 간파했던 것이다. 더 큰 이유는 권력에 욕심이 없다는 것을 주군에게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덕분에 장량은 고향 땅에서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


이에 반해, 천재 장수 한신은 주군의 시기를 살 만큼 뛰어난 능력과 보상으로 받은 직위(초왕에 봉해졌다가 회음후로 강등) 때문에 중국 역사상 3대 악녀 중 하나로 불리는 여후(한고조 황후)의 의해 살해당하고 말았다. 전장을 호령하던 호랑이에서 사냥 후 끓는 물에 삶겨 죽임을 당한 토끼 신세가 되었다(토사구팽).


세 번째는 뛰어난 두뇌에 처세술의 대가인 소하다. 소하는  유방으로부터 가장 많은 식읍을 하사 받았으며(물론, 사양하지 않았다), 조정에서 끝까지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다. 유방에게 한신을 천거한 인물이 소하이며, 병상에 누워있는 유방에게 한신의 목을 바친 인물도 소하였다. 드물게 창업과 수성, 두 가지 영역에서 모두 성공한 인물이다.



공헌과 성과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보상이 있어야 성공한 조직을 만들 수 있다. 다만, 조직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군과 소수의 권력자들만을 위한 충성의 결과물이어서는 곤란하다. 또한, 보상의 종류가 현물과 직위 중 어떤 것이 조직을 위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조직과 당사자 모두의 엄격한 검증과 현명한 판단이 필요하다.


보상에 대한 이슈는 오늘날 기업을 경영하는 리더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과제이기도 하다. 성과와 보상 시스템은 기업별로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연봉 인상, 보너스, 승진, 연수 등의 혜택이 주어진다. 다만, 승진(특히, 높은 직위)에 대해서는 조직에 따라 상반된 결과와 파급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다.


성과가 많다고 해서 리더의 자질이 충분하다는 인식에는 상당한 리스크가 따른다. 그동안의 성과 만으로 중요한 자리에 섣불리 앉혔다가 조직을 위기로 몰고 간 사례들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인사검증을 엄격하게 하지 못한 결과이며, 과거 지향적 인사의 부작용이다. 성과는 있되 리더의 자질이 없는 구성원에게는 연봉 인상과 보너스 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왕조시대와 기업체의 인사 특징은 임명직이다. 군주와 오너의 판단에 전적으로 맡겨야 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 새로운 인물로 교체할 수 있다.

하지만, 선출직은 조건이 크게 다르다. 검증의 과정이 자칫 인기투표가 되어 과거의 이름값만으로 판단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더군다나 그 리더에게는 다른 높은 자리들을 임명할 권한까지 주어진다.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꾸지도 못한다.


후진국가들이나 유교문화권에 속한 나라들일수록 과거의 명성으로 리더를 선택하고,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과거의 유명한 사람들이 모두 무능력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더 적합한 인물들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피해와 고통은 고스란히 대중들의 몫이다.


하나를 잘하면 다른 일들도 잘할 것이라는 이러한 선입견은 후광 효과(Halo 효과)의 역기능이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교실에서는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주로 반장을 맡겼다. 어느 정도는 맞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공부에 재능이 없는 학생들에게도 기회를 줬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수도 있다.

현역시절 출중한 기량으로 대단한 성적을 거둔 운동선수들 중에 스포츠 지도자로 변신하여 성공한 사례가 그렇지 많지 않은 이유도 이러한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리더의 자리에는 보상과 권한보다 책임과 의무가 더 많이 따른다. 조직과 대중을 위해서 봉사하는 자리여야 한다. 과거의 명성으로 더 많은 것들을 챙기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는 자리가 아니다. 자질을 갖춘 경우라면 과거의 경험과 명성이 리더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강력한 무기가 되겠지만, 자질이 되지 않는 리더가 선출된다면 과거의 명성은 조직과 대중들에게 흉기가 될 수도 있다.


공헌은 많은데 리더의 자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현물 보상으로 끝내야 한다. 조직을 이끌 공적인 자리에 얼씬 거릴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두둑하게 챙겨주는 것다.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생계형 리더가 많다는 사실에 명심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본인의 한계를 알고 배가 어느 정도 불렀다 싶으면 조직과 대중을 위해 더 능력 있는 사람에게 자리를 양보하거나 물려주는 것이다. 쉽지 않은 일이다.


지지(知止 : 멈출 때를 안다)와 성공불거(成功不居 : 성공한 곳에는 머무르지 않는다), 장량의 사당 내 기념품에 새겨져 있는 문장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인구감소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