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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혁진 Oct 19. 2022

씨젠 분식회계 사건 [2부]

꽤 길지만 읽어두면 무척 도움되는 이야기 - 매출 밀어내기

<감리 지적 및 재무제표 변동 사항>

1부에서 설명한 대로 씨젠은 매출 밀어내기, 개발비 자산화, 전환사채 조기상환청구권과 관련된 감리 지적을 받았다. 이중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부분은 매출 밀어내기와 개발비 자산화 이슈다. 기본적으로 투자자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재무상태보다 영업성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매출과 개발비 회계는 당기순이익과 직결되는 지표로 수익성을 판단하는 데 핵심적인 요소다. 이 중에서도 매출 문제가 더 큰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데, 기업의 고의성이 다분할 뿐더러 대리점과의 관계에서 도덕성 문제도 붉어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안의 경중에 의거해 매출 밀어내기-개발비 자산화-CB의 유동부채 미분류 순으로 설명하겠다. 더불어 각각의 사안에 대해 씨젠이 어떤 지점에서 부정을 저질렀고 기존 재무제표와 수정후 재무제표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이를 통해 씨젠의 고의성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겠다.


 

    1) 매출액 및 매출원가 과대계상

 증권선물위원회는 감리 지적 보고서를 통해 씨젠이 “국내외 대리점에 대하여 회사가 납품처, 품목, 수량 등을 지정하여 판매하도록 하고, 대리점의 미판매분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는 등 제품이 최종 수요처에 판매된 경우에만 수익을 인식해야 함에도, 실제 주문량을 초과하는 과도한 물량의 제품을 대리점으로 임의반출하고 이를 전부 매출로 인식함으로써 매출액, 매출원가 및 관련 자산 등을 과대 또는 과소 계상”했다고 밝혔다. 씨젠은 속칭 매출 ‘밀어내기’를 자행한 것인데, 매출액을 과대계상함으로써 매출원가가 과대 계상 되고 재고자산은 자연스럽게 과소계상 되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익 인식의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가득기준과 실현기준이다. 두 기준 모두 수요자와의 계약이 선결조건이 되는데, 씨젠은 수요자가 없는 상태에서 대리점에 제품을 단순 납품한 뒤 이를 매출로 인식한 것이다. 원칙대로라면 대리점을 통해 제품을 인도하거나 인도하겠다는 계약을 수요자와 맺은 후 현금이나 매출채권을 통해 이득이 실현되거나 실현가능성이 있을 때 비로소 수익을 인식 했어야 한다. 하지만 씨젠은 대리점이 떠안을 의사가 없는 제품을 재고로 두게끔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남양유업을 위시한 가공식품 업체들이 이와 같은 논란으로 이슈가 된 바 있다. 만일 의혹이 사실이라면 씨젠도 이들의 경우도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신제품 출시 때 대리점의 주문물량보다 더 많은 양을 강매하고, 제품 수요 증가 시 물량 공급을 보장하면서 인기 제품과 함께 비인기 제품을 함께 판매하는 등 전형적인 제조업체의 밀어내기 방식을 사용한 것이다.


하지만 씨젠 측에서는 제품의 반품 및 교환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고 해명했다. 구체적으로는 2011년 대리점에서 반품 요구가 들어왔을 때 반품 이후 매출액을 축소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2016년부터 과대 계상액이 점차 줄어든 것을 두고는 기존 제품인 씨플렉스를 개량된 새 제품 애니플렉스로 바꾸면서 발생할 수 있는 매출 증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니까 회계 부정에 대해 의도적으로 수치를 조정하여 이를 감추려 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씨젠의 매출액 과대 계상 연도별 현황>

(단위: 천 원)

위 표는 씨젠의 매출액 과대 계상 연도별 현황을 나타낸다. 순효과는 씨젠이 2019년 3분기 공시에서 제출한 과대(과소) 계상 수치다. 하지만 매출 밀어내기는 기본적으로 매출을 당겨서 잡는 개념이므로 진정한 당기 과대 수치를 구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정을 거쳐야 한다. 매출 밀어내기의 가장 큰 취약점은 종국에는 매출을 미리 인식한 만큼 손실을 기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건설사의 회계와 매우 닮았다. 회계 부정을 목적으로 전체 공정 원가를 낮게 잡을 경우 공정 진행률이 높아져 전체 대금 중 더 많은 부분을 수익으로 인식해 이익으로 계상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정이 완료될 즈음 받는 대금과 투입되는 원가는 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미리 수익을 인식한 만큼 손실을 보게 된다. 씨젠의 경우에는 13년에 더 판 것은 14년에 덜 팔리고, 14년에 더 판 것은 15년에 덜 팔린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 가령 2014년 순효과가 53억이라는 것은 2014년에 밀어낸 매출이 75억 원임을 뜻한다. 2014년에 판매한 21억 원은 이미 2013년에 판 것으로 매출로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75억 원을 밀어낸 결과 2015년에는 또 다시 75억 원이 과소하게 잡히게 된다. 이처럼 한번 매출을 밀어낼 경우 회사는 끝없이 같은 과정을 반복하게 된다.


<주요 제품 매출액 및 매출비중 (수정전)>

(단위: 천 원, %)


<주요 제품 매출액 및 매출비중 (수정전)>

(단위: 천 원, %)

 한 가지 주지할 만한 점은 2015년에서 2016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씨젠이 과대계상 규모를 더 이상 늘리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당 시점에서 과대 계상 규모가 더 커지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했거나 씨젠 측의 주장대로 ERP상 매출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로 그 이후에는 이전까지 밀어낸 매출 규모만 추가 계상한 것으로 드러난다. 2019년까지 매출 밀어내기는 지속되었는데 2019년 회계 부정이 인식되어 과대 계상 금액이 0이 된 것을 볼 수 있다. 때문에 수정후에는 2019년 매출이 130억 원가량 늘어났다. 원래대로라면 내년 1분기, 2분기에 팔았어야 하는 금액을 올해 당겨 잡은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매출 문제는 회사의 현금흐름과는 무관하지만, 소비자들이 참고하는 주요지표인 매출이 조정되었다는 점, 대리점을 대상으로 한 제품 강매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기업의 도덕성 문제와 직결된다. 이외에도 2019년 씨젠이 정정한 2018년 사업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수정 사항들이 담겨있다.


<연결포괄손익계산서상 중요한 오류의 수정>

(단위: 천 원)

위 매출 과대(과소) 계상 수치는 앞서 제시한 과대계상 순효과 수치와 동일하다. 매출을 과대계상 한 만큼 매출원가가 과대 계상되고, 과대계상 되는 만큼 법인세비용 또한 과대 계상되며 당기순손익도 부풀려짐을 확인할 수 있다. 2016년부터는 매출을 과소 계상함으로써 주주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당기손익 정보가 심하게 왜곡되었음을 알 수 있다.


<연결재무상태표상 중요한 오류의 수정>

(단위: 천 원)

다음은 연결재무상태표상 핵심적인 오류 사항이다. 매출에 비례해 매출채권이 늘어나고, 매출이 증가한 만큼 재고자산이 줄기 때문에 재고자산은 과소계상 된다. 연결손익계산서로부터 도출되는 당기순이익은 이익잉여금 계정으로 편입돼 자기자본을 부풀린다.


<전기 연결재무제표 재작성이 당기말 연결재무상태표에 미치는 영향>

(단위: 천 원)

2015년부터 2018년에 걸친 변화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2015년 이후로 수정후 매출액이 더 큰 이유는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씨젠이 과대 계상 금액을 축소했기 때문이다. 매출원가에는 큰 변화는 없었으나 당기순손익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영업손익의 경우 수정전 수치와 수정후 수치가 큰 차이를 보이는데, 경영성과 평가의 가장 핵심적인 지표라는 점에서 중대한 오류라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당기순손익은 배당 지급의 핵심이 되는 지표로 2016년부터 당기순손익이 과소계상됨으로써 보이지 않은 주주의 손실이 상당히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요 영업활동 지표 추이>

(단위: 백 만원(현금흐름), 억 원(매출액))

그렇다면 투자자 입장에서 이러한 분식의 조짐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명확하지는 않지만 분식을 의심할 만한 조짐을 한 가지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본래 매출이 증가하면 영업이익이 증가하고, 영업이익이 증가하면 영업현금흐름도 비슷한 추세로 증가하는 것이 정상이다. 본 자료에서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은 매우 일정한 흐름을 보여주지만 영업활동 현금흐름은 이와 무관하게 들쑥날쑥한 성적을 보여준다. 물론 이는 사후적인 분석일 뿐, 씨젠의 분식 회계 사실을 모른 상태에서 이 지표를 바라보고 분식 여부를 판단하기는 매우 어렵다.


씨젠과 같은 제조업체의 경우 매출이 증가하는 시기에 재고자산 또한 증가한다면 가공의 매출을 기록하는 것으로 의심할 수 있다. 실제로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해 허위계약서를 작성한 많은 회사들의 재무제표가 이런 경향을 보인다. 하지만 씨젠의 경우 재고자산이 매출과 반비례하게 움직였으므로 쉽사리 분식을 의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더군다나 분식 회계 기간 동안 국내 바이오 의료기기 산업이 빠르게 성장해 씨젠의 영업성과가 실제로 우수했으므로 주주들이 매출 수치를 의심하기 어려운 여건이었다. 하지만 만일 기업이 영업활동에서 창출된 현금이 아니라 재무활동에서 창출된 현금으로 투자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면 재무제표를 좀 더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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