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요리다운 요리는 어렵고 조리정도만 하는 나로서는 매 끼니 식사를 챙기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아이야 스팸,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이면 마냥 좋아하지만 레토르트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다. (채소를 제대로 못 챙겨 먹이면 양심상의 문제도 있다.) 그런 내게는 재료를 몽땅 넣고 와르르 끓이기만 하는 찌개, 전골류는 헤어날 수 없는 마성의 식단과도 같다. 이런 때에 만난 마라탕은 그저 사랑이다.
마라탕을 처음 접한 건 아직 마라탕 배달이 흔하지 않던 6~7년 전쯤 친한 언니들과 였다. 워낙 새로운 음식에 호기심이 강한 나는 인근 대학가 앞에 중국인이 차렸다는 마라탕가게가 무척 궁금했는데 남편이나 갓난아이를 데려가 먹기엔 왠지 적합해 보이지 않아서 함께 가줄 친구가 필요했다. 언니들은 나의 제안에 흔쾌히 동행해 주었는데, 피차 처음 먹는 음식이었지만 다들 꽤나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매콤한 국물에 고기와 채소 듬뿍, 찬으로 나온 튀긴 땅콩도 맛있었고, 볶음밥까지 해치우고 나자 만족감으로 가득해서 즐겁게 나설 수 있었다. 첫인상이 얼마나 강렬했던지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마라탕이 먹고 싶어졌는데 얼마나 노래를 불렀는지 이번엔 남편이 함께 했다. 아이는 볶음밥을 먹이든지 아님 맨밥에 김 싸 먹일 요량으로 김 한 봉지를 챙겨 들고 말이다. 그리고 이 방문에서 남편도 마라탕의 매력으로 끌어들이고 말았다.
마라탕麻辣燙
한자를 그대로 읽으면 마랄탕?이나 마날탕?이 되겠지만 한어 병음을 그대로 가져와 마라탕으로 읽는다. 마라탕은 중국 쓰촨지방(사천지방)에서 시작되었다고 알려졌는데 1인용 훠궈인 마오차이가 그 기원이라 한다. 麻(마)는 혀가 마비된 것 같은 얼얼한 맛을 뜻하고 辣(라)는 불을 삼킨 것 같은 뜨거운 맛을 나타내는데 한마디로 극한의 매운맛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쓰촨지역의 대표적인 향신료 화자오와 건고추의 맛이다. 화자오의 영문명이 쓰촨 페퍼로 쓰촨지역이 원산지인데 우리말로는 초피라고 부른다. 강이 4개나 지나가는 쓰촨지역은 산맥으로 둘러 싸인 분지지역으로 여름이면 덥고 습했다. 음식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소금에 절이거나 향신료를 뿌린 음식이 발달했는데 이것이 화자오와 건고추를 많이 사용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이렇게 쓰촨지방의 매운 음식이 널리 알려지면서 중국 내에서도 쓰촨의 마라탕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쓰촨사람들은 마라탕을 쓰촨지역 음식으로 인정 안 한다나.
중국에는 "마라탕 국물까지 마실 놈"이라는 욕이 있는데 어느 중년 여성이 가난한 남자친구와 결혼하려는 딸을 말리는 영상이 인터넷에 돌면서 퍼진 것이라고 한다. 마라탕 국물에 대한 중국인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한국식 마라탕은 국물을 마실 수 있도록 개량되어 사골육수나 우유를 베이스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에 굳이 말릴 필요는 없다. 본디 건더기만 건져 먹는 훠궈류에서 유래했고, 높은 염도와 조미료, 고추기름,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서 건강에 안 좋다는 인식이 많아서 그런 것이라 한다. 현지식 마라탕은 국물이 더 새빨갛고 기름도 훨씬 가득해서 한눈에 봐도 국물을 먹을만한 인상이 아니긴 하다. 마라탕의 탕燙은 일반적인 국, 국물과 같이 끓인 물을 뜻하는 탕湯과 의미가 다르다. 마라탕의 탕燙은 데우다 혹은 씻다는 뜻을 가지고 있어서 식재료를 잠깐 담가서 씻어 먹는? 데워 먹는? 의미 그대로인 듯하다.
의외로 마라탕이 10대와 초등학생들에게까지 두루 인기 있는 음식으로 꼽히는데 20대 남성들에게는 민트초코 수준의 호불호 음식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그럼에도 마라 치킨, 마라떡볶이, 마라라면, 마라 족발 등 다양한 음식의 변주가 멈추지 않는 걸 보니 아직 인기가 식으려면 멀었나 싶다.
마라탕은 넉넉히 두른 기름에 각종 향신료(초피, 팔각, 정향, 회향, 큐민, 육두구 등)를 넣고 끓여 향을 낸 다음 고춧가루를 넣어 고추향을 넣고 체에 걸러 마라유를 만드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여기에 두반장을 넣어 볶은 것이 마라소스다. 시판 마라소스를 산다면 이전 과정은 다 필요 없고 육수에 소스를 넣고 손질한 청경채, 배추, 버섯, 푸주, 넓적 당면 등 취향에 맞는 재료를 넣고 끓이면 끝이다. 마라소스만 있으면 10분 완성인 마라탕인데 마라소스를 쟁여놓은 채 자꾸 배달만 시켜 먹는 건 게으름일까? 남편이 내 솜씨를 꺼리는 까닭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