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장을 다녀온 아이가 여러 겹 접은 종이 뭉치를 들고는 여기저기 꾹꾹 눌러 보이며 자랑했다.
-엄청 단단하지?
-그러네
그런데 이 종이는 또 어디서 가져온 걸까? 살짝 신경이 쓰인다.
-엄마 그런데 이걸 펴면... 짜자잔!
아... 두꺼운 종이를 어디서 가져왔나 했더니 꼬깃꼬깃 접은 상장이다. 구겨지지 말라고 담아갈 파일까지 챙겨주셨는데 한사코 열심히 접어왔구나.
매해 이맘때쯤이면 전국 각 지역에서는 태권도대회가 열린다. 대회라기보다는 축제 같은 거지만. 코로나시기를 제외하고 항상 열렸던 대회인지라 대부분의 도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기량을 뽐내고 태권도에 대한 흥미를 증진시키기 위해 참가한다. 품새, 겨루기, 스피드 발차기 세 종목이 있고 태권도시범단의 축하시범공연도 대대적으로 한다. 참가비를 내고 참가하면 금, 은, 동메달 중 하나는 받게 되는 거라 그냥 메달을 사는 느낌이지만 아이들에겐 제대로 동기부여인지 빠지겠단 말은 1도 없다. 아이가 참가신청서를 가져왔기에 나갈 거냐 물었더니 당연한 소리를 한다는 얼굴로 바라봤다. 꽤나 중요한 행사인가?
아이는 품새 개인종목으로 출전했다. 미리 책자의 대진표를 확인해 보니 B리그 4조라고 되어있고 상대선수의 도장과 이름도 다 기재되어 있다. 대회 당일 행사가 열리는 경기장으로 가보니 각 도장에서 온 많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설레는 표정으로 연습을 하고 시합을 준비하고 있다. 아이도 또래들과 함께 도장 누나의 통솔 아래 몇 번 연습을 하고 들어왔다. 제 차례가 될 때까지 기다림의 시간은 길고 아이는 몸을 베베 비틀며 빨리 하고 가고 싶다며 노래를 부르지만 다들 분주한 가운데 순서는 빨리 돌아오지 않았다. 한참만에 도장 친구가 먼저 심사자리에 서서 품새를 선보이고 박수를 받았다. 두 명이 청색, 적색 자리에서 시연하는데 동작의 정확도, 절도 등을 보고 마주 앉은 세명의 심사위원이 청색, 적색 깃발을 들어 승자를 가린다. 첫 심사에서 떨어지면 동메달이다. 아쉽게도 친구는 동메달이다.
아이의 차례가 되자 도장 선생님과 선배 누나들이 아이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을 한다. 여기 좀 보라고 애타게 부르지만 아이는 제 이름이 도통 들리지 않는지 여기저기 주변을 기웃대며 장난을 치다가 대기석에 앉았고 제 차례에 맞춰 앞으로 나선다. 아이는 제법 노련한 몸짓으로 절도 있게 태극 3장을 해 보이고 제 할 것을 마치자 얼른 돌아서 심사석에 인사를 꾸벅한다. 세명의 심사위원이 모두 아이가 자리한 청색깃발을 들었다. 그러면 잠시 다른 조의 결과를 기다렸다가 올라온 선수와 다시 한번 겨뤄서 금, 은을 가린다. 이번엔 태극 6장이다. 나름 한 번의 우승을 거두고 올라온 상대는 아이보다 덩치도 크고 동작도 꽤나 절도가 있다. 청색 깃발 둘에 적색 깃발 하나. 이번엔 적색이었던 아이는 판정패해 은메달이다. 조금 아쉽지만 충분히 잘했다.
-엄마, 나 저번엔 금메달 땄고 이번엔 은메달이야. 다음엔 동메달 따서 색깔별로 다 모을 거야.
아이의 생각은 남다르다. 그래. 너한텐 이런 메달의 색깔이나 상장이 중요치 않지. 알면서도 새삼 너를 보며 놀라곤 한다.
-엄마는 금, 은, 동 중에 무슨 색이 좋아?
-엄마는 이름에 은이 들어가니까 은이 좋아.
-어? 나는 이 씨인데 2등 했어. 엄마 좋아하는 은도 있고 내 이도 있으니까 딱 맞네.
그래. 남들이 세우는 줄에 좌우되지 말고 너만의 의미를 찾아가길. 나 또한 너를 보며 굳은 머리에 새로움을 배워갈 테니. Love wins all이라던가? 편견 없는 아이를 보자면 포용 wins all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