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왔다. 내가 있던 곳으로. 짐은 떠나기 전 지냈던 장로님의 집에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모두 타지로 일하러 떠나 있었다. 전에 머물던 권사님 댁에서 다시 지내며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했다.
이제 워홀 1년 중에 반년정도 남은 기한. 뭘 하기 조금 애매한 기간이었다. 대개 이쯤이면 사람들은 세컨비자를 받기 위한 일을 알아보곤 했다. 3달(정확히는 공휴일을 제외하고 88일)을 일해야 세컨비자를 신청할 수 있기 때문에 서둘러 알아보고 움직여야 했다. 순수 날수로는 3달이지만 주 5일 일한다고 쳐도 4달이 넘기 때문이다. 세컨비자를 발급받기 위한 일자리는 대개 농장일과 축산업이었다.
교회에서 알아본 바로는 서호주의 수도 퍼스 인근의 치킨공장에서 뼈를 바르는 보닝일을 하는 사람들이 몇 있었지만 다들 남자였고 자동차가 필수였다. 그 외의 농장일들은 각종 과일, 야채들을 따는 계절별, 기간제 일들인데 구인사이트에 올라온 소개글을 보고 연락해 찾아가야 했다. 이 역시 대중교통 따위 없는 외딴곳이라 차가 필수였고 아니면 아는 사람들끼리 모이거나 구인사이트에 글을 올려 함께 차를 타고 갈 인원을 모으곤 했다.
대중교통이 흔하지 않은 곳에서 다니려면 차는 필수인 듯해서 셰어에 전에 살았다는 언니에게 중고차를 헐값에 구매했다. (1500불, 헐값이라기엔 큰돈이었지만 영업으로 그나마 조금 돈을 모아 쓸 수 있는 돈이었다.) 나이가 20살은 넘은 흰색 도요타였다. 사실상 움직인다는 게 의심스러울 만한 모습이었지만 싸게 굴릴 차가 필요했다. 면허를 한국에서 따긴 했지만 직접 차를 몰진 않았던 터라 사실상 거의 첫 운전이었다. 차를 넘기는 언니가 내 첫 도로주행까지 도와주었다. 언니가 가보라는 대로 오른쪽 운전석에 처음 앉아 어리바리한 채로 벌벌 기듯 겨우 도로를 한 바퀴 돌았고 언니는 불안한 눈빛으로 키를 나에게 넘겼다.
기름값이 아까워 잘 운전도 하지 않은 채 별 소득 없이 시간만 보내며 있었다. 이력서는 수없이 보내도 연락 한번 없었고 농장일도 잘 나오지 않았다. 어느 날 교회에서 만난 동생이 농장에 갈 거라며 같이 갈 생각이 있냐 물었다. 정확히는 농장에 데려다줄 차편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뭐라도 해보자 싶은 생각에 함께 가기로 하고 동행 한 명을 더 구해 기름값을 각출했다. 2시간 가까이 들어가야 했는데 생각보다 외진 곳에 숙소가 대충 봐도 엉망이었다. 작은 오두막에 한방에 10명이 넘는 인원들이 들어가서 거의 30여 명이 같이 지내야 하는 상황이다. 혹시나 미리 식자재를 장 봐 오긴 했지만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쉽지 않아 보였다. 우선은 간단히 빵을 발라 저녁을 먹고 다음날 일을 하기로 컨트랙터랑 이야기를 마쳤다.
다음날 햇빛을 단단히 가릴 수 있는 모자와 팔토시를 챙겨 나섰다. 오렌지농장이었는데 1 상자당 21불의 임금을 받는다고 했다. 빠른 사람은 5 상자 넘게도 담는다길래 만만하게 봤는데 막상 가보니 상자가 생각했던 귤상자 크기가 아니었다. 트랙터로 옮길만한 가로, 세로, 높이 1m 정도가 되는 크레이트가 1 상자였다. 크기에 압도되었지만 더위와 싸우며 가시와 싸우며 하루종일 정신없이 오렌지를 따고 보니 2 상자가 다였다.
머릿속으로 계산기가 빠르게 돌아갔다. 이걸 하루에 5 상자를 딴다고? 아무리 손에 익는다고 해도 쉽게 될만한 일이 아니었다. 조금 더 해서 3 상자쯤이라고 치고 하루에 63불, 거기에서 숙소비가 하루에 18불. 하루 수입이 45불 밖에 안 되는데 비가 오거나 흐린 날은 일을 못한 채 숙소비만 나갈 터였다. 그나마도 일이 손에 익었을 때의 말이고 2 상자를 채우는 정도로는 수입이 24불이 고작이다. 농장에서 5달을 있어도 세컨비자 일수를 다 채우지 못할 거란 생각이 드니 있을수록 손해란 생각이 바로 들었다. 그래서 그날 일한 급여를 받지 않고 바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같이 왔던 동생은 더 있어 보겠다 말하는데 그 친구에게 그럼 내 남은 급여를 네가 챙기든 알아서 하라며 맡기고 바로 차를 끌고 나왔다. 기름값이 아깝긴 해도 지금 나가야 손해가 적다는 건 자명해 보였다.
실제로 농장일은 능력제가 아닌 시급제로 받는 편이 좋다고 하는데 지출을 줄이려는 농장주들이 많아서 환경은 열악하고 일은 엄청 고됐다. 거의 제로썸인 상태로 돌아 나오는 사람도 꽤 많았다. 한참만에 다시 만난 그 동생도 제대로 일을 못한 채 빚을 지고 어렵게 나왔다고 했다.
시간은 하루하루 지나가는데 아무 일도 구해지지 않아서 점점 초조해지고 있었다.
이미지출처: Unsplash의Nico Sm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