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천망 Dec 03. 2024

취향과 배려를 꾹꾹 눌러담아

김밥

아이는 어려서부터 식감과 맛에 예민해서 채소를 싫어했다. 둔한 엄마에 비해 입이 예민하다 보니 이유식도 먹다 뱉는 일이 잦아 속상한 적도 많았다. 한 번씩 잘 먹어주면 얼마나 고마운지. 솜씨는 없지만 골고루 먹이려 여러 가지 애를 쓰다가 겨우 찾은 아이의 취향은 나물 몇 가지와 김밥 정도였다.



그래서 요즘에도 아이에게 김밥을 자주 싸주곤 한다. 사실 말이 김밥이지 김에 밥을 싸기만 해도 김밥이 아닌가. 충무김밥도 맛있게 잘 먹는 아이는 평소에도 조미김만 있으면 한 끼 뚝딱이다. 아이는 한번 김밥에 대한 벽이 허물어지고 나니 김밥에 대한 편견이 없어서 뭐가 들어가든 대체적으로 잘 먹어주는 편이다. 삼겹살이 들어가든, 떡갈비든, 돈까스든, 치킨이든, 진미채든, 멸치볶음이든, 볶음김치든 말이다. 물론 그럼에도 기본은 햄, 소세지이고 가끔 어묵이나 참치가 들어간다. 항상 먹는 김밥이다 보니 단무지는 매번 사 오기도 귀찮고 첨가물 걱정도 돼서 집에서 한 병 담가 놓고 수시로 꺼내 싼다. 채소는 대개 볶은 당근이나 깻잎, 상추지만 파프리카, 오이 같은 생 채소나 나물들이 되기도 한다. 물론 채소들이 아이의 기준보다 많다 싶으면 한 번씩 투정을 부리긴 하지만 말이다.



최근 SNS에서 오이김밥이 유행하기에 싸본 적이 있었다. 김과 밥, 생오이 밖에 안 들어가는 통오이김밥이다. 한입크기로 썰어서 위에 쌈장을 조금씩 올려주면 끝인데 생각보다 아삭하고 신선한 맛이 기분까지 상쾌하게 해 줘서 모양만 보고 싫어하던 남편도 꽤나 마음에 들어 했다. 아이도 맛을 보긴 하지만 한 줄을 통째로 먹기엔 부담이었는지 더 이상은 먹을 수 없단 표현을 명확히 했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인기를 끌면서 김밥이 한창 유행했다. SNS를 보며 접어먹는 김밥도 따라 해봤는데 재료들과 맞닿는 김의 면적이 늘어나면서 김이 눅눅하게 질겨지는 식감이었다. 그 찔깃한 식감이 먹기 불편했던 탓에 다시 해먹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미국에선 냉동김밥이 유행이라는 이야기도 봤다. 미국인들에겐 익숙지 않은 참기름냄새(미국 공원에서 흔하게 접하는 스컹크 냄새와 유사하다고 한다)를 제거하고 냉동, 해동 시 품질 유지를 위해 고기대신 유부를 쓴 비건 김밥이라고 한다. 비건음식이라 건강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찾는다며 레인지에 데워 먹어도 일반 김밥처럼 맛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집에서 만드는 김밥은 냉동을 안 해서 인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딱딱해져서 계란옷을 입혀 구워 먹거나 하는데 이건 데워도 그대로라니 먹어보고 싶단 궁금증이 든다.



계란김밥, 유부김밥, 다시마김밥, 갓김치김밥, 박고지김밥, 탕수육김밥, 아보카도김밥, 훈제오리김밥, 명란김밥, 양배추김밥 등등 요즘 김밥은 먹어본 것보다 안 먹어본 것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다.

김밥은 소풍이나 운동회날에나 먹는 음식이었던 적도 있는데 언제 이렇게까지 달라졌나 새삼스럽다. 끼니 챙길 시간 없는 직장인들의 한 끼자 등산 가는 길에 사들고 가는 음식이기도 했는데 말이다. 고열량이다 어쩐다 말이 많지만 어쨌든 간편하면서도 건강하고 든든하게 골고루 챙겨 먹는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물론 먹는 사람의 간편함이지만 말이다. 준비하는 손길은 그렇게 간편해지질 않으니.



초등학생 때 외이모고모할머니(?)댁에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엄마의 고모였다. 어릴 때부터 외가가 따로 없었는데 엄마가 의지하며 자랐던 유일한 친척어른이랄까. 해외로 가시면서 오래 연락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진 거였는데 이국적이면서도 무척 세련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가 우리가 음식이 안 맞아서 제대로 못 먹을까 봐 챙겨주신 게 김밥이었다. 당근과 시금치가 들어간 보통 김밥이었는데 할머니의 킥이 있었다. 바로 땡초간장. 김밥만 먹으면 심심하고 느끼했는지 땡초를 다져 넣은 간장에 김밥을 찍어드시곤 했는데 이게 정말 별미였다. 초등학생이던 나도 그 땡초간장의 매콤함이 맛있어서 항상 찍어먹곤 했다. 김밥을 간장에다 찍어먹는다고 나트륨 섭취가 많다 할지 모르겠지만 문득 그 맛이 생각나곤 한다.



김밥이 다양해지는 까닭은 어쩌면 상대의 취향을 배려하는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정성으로 준비한 갖은 재료를 꾹꾹 눌러 담아 만든 음식이자, 한입에 쏙 챙겨 넣어주는 다정함의 산물 아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