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카리 Dec 26. 2023

요즘 고등학교 담임교사의 하루

 교사가 되면 수업만 잘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 사실은 수업 준비가 가장 뒷전이라는 사실. 국제교류가 활발했던 A학교에서는 여행사 직원이 되어 외국 학생들의 한국 체재 중의 스케줄을 짜고, 공항을 들락날락거렸다. 덕분에 경복궁, 전쟁기념관, DMZ투어, 남산서울타워 등 한국의 관광명소를 열심히 다녔었더랬다. 가이드로서의 일정을 마치면 저녁에는 통역사가 되어 선생님들의 식사 타임의 원활한 소통을 위해 헌신했다. 통역사가 제대로 밥은 먹는지 배려 따위는 없기에 연차가 쌓이며 스스로 밥도 음미할 수 있는 통역사로 업그레이드되어 있었다.    

 다른 학교에 비해 유난히 공문서 처리에 깐깐했던 B학교에서는 안 그래도 학생들이 등교시간 8시에서 1초만 늦어도 지각처리를 하고 학부모 서명까지 받아 출결신고서를 제출했어야 해서 안 그래도 월말마다 출결처리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 코로나 시국이라는 특수한 상황까지 더해져서 업무가 늘어났었다. 그중 하나는 코로나 관련 결석은 인정 결석으로 처리하는데, 이것은 출석부에 △(세모)로 표시를 한다.

최근에는 독감으로 인한 인정결석이 잦았다.

 그때 당시 코로나 백신 접종을 하면 3일간 출석을 인정 처리할 수 있었는데, 많은 학생들이 너도나도 약속이나 한 듯이 월요일이나 수요일에 접종을 하여 직장인들이 연차를 쓰듯이 연속으로 월, 화, 수 또는 수, 목, 금 이렇게 주말을 껴서 결석을 했더랬다. 마치 맡겨둔 연차를 빼서 쓰는 것처럼 당당히 수업에 빠지는 태도에 언짢기도 했고 수많은 세모 그리기 과제는 자괴감에 들게 만들었다.   

세모 귀신 "여긴 어디? 나는 누구?"

 C학교에서는 생활지도와 상담, 행정업무로 인해 수업 준비가 가장 뒷전이다. 내공이 부족해서도 그럴 테고, 또 기대치가 높아서 그런지 거의 매일 학생들에게 화를 내는 것 같다(부끄럽지만). 2학기가 되면서는 이제는 아침 조회하러 교실에 들어가면서 학생들이 인사할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혼자서 허공에 대고 씩씩하게 인사하며 교실로 들어간다. 반 구성원에 따라 다르지만 올해 우리 반에서는 두 명 정도가 인사를 해준다. 눈물 나게 고마워 생활기록부에 '담임교사에게 힘이 되어주는 학생임'을 반드시 기록해 줄 것을 아침마다 다짐한다. 아이들의 대화에서는 3초마다 욕이 들린다. 귀가 썩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도저히 듣고 있을 수가 없어, "너희들끼리 있을 때는 상관없지만 선생님이 계시는 교실에서는 좀 조심해 보는 건 어떨까?"하고 다정하게 미소를 지으며 제안을 해보니 "왜요?"라는 답이 돌아온다.


 상대방이 호의를 베풀어 줬을 때는 고맙다고 표현을 한다든지,      

 자신이 맡은 사소한 일을 책임감 있게 수행한다든지,      

 자신이 맡은 일이 아니어도 필요한 상황에서 흔쾌히 협조를 한다든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친구들을 위해 친절을 베푼다든지,      

 스마트폰을 자제할 줄 안다든지,      

 학교 수업 시간에 수업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던지,   


다 큰 고등학생 오빠들이 맞나 싶을 때가 참 많다.  


 학급에서 정한 등교시간에 거의 매일 늦는 학생들이 있다. 우리 반에서는 1학기 초에 학급 규칙으로 지각자는 그날 청소하는 것으로 정했기 때문에, 이 상습범들이 우리 반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데, 담임으로서 일단 지각하는 아이가 있으면 화가 난다. 지각생들의 생사를 확인하느라 1교시 전부터 분주하고 싶지 않아서 조금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이라도 해주면 그나마 낫다. 3일 연속 지각하면 부모님께 연락드린다고 하니 그건 또 싫은지 며칠은 늦지 않게 온다. 그러면 매일 일찍 오는 애들은 못 받는 우쭈쭈 우쭈쭈를 받기까지 하지만, 이내 곧 부모님과 통화를 하게 되는 상황이 오고 만다. 이런 일로 학교 전화를 받는 것이 학부모 입장에서는 매우 싫을 게 뻔해 주저하게 되지만, 나도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원활한 학급 운영을 위해서는 액션을 취해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청소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면, 이런 학생들은 청소도 못한다. 못하는 건지 안 하는 건지는 미궁 속이지만. 네모난 교실을 동그랗게 청소하는 아이들에게 시범을 보여주면 조금이라도 나아질까 싶어서 같이 빗자루를 들고 친절하게 쓸어 보이지만 효과는 다이어트 약을 먹으면서 야식을 먹는 것과 같다. 정말 신기한 것은 성적이 좋은 학생들은 청소도 잘한다는 것이다. 마음에 쏙 들게 구석구석 꼼꼼히도 빗자루를 쓴다. 똑똑한 아이들은 인성도 좋고 청소하는 법도 어디서 배워오나 보다. 어머님이 누구니? 도대체 어떻게 너를 키우셨니?

 

 오늘 아침, 내년도 신입생들의 학급 수가 2개나 줄어든다는 비보가 들려왔다. 아이쿠, 학생들이 있기에 가능한 직업. 오늘도 우리 아가들한테 잘해줘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간제가 뭐 어때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