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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카리 Nov 10. 2023

학부모님이 겁나 무섭다고요

어머니, 달달하게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우리 반 1등 민수(가명) 어머님이 학부모 상담 신청 문자를 보내오셨다. 집중상담기간이 끝나고 담임선생님들끼리 서로 고생했다며 격려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내고 있었는데, 일주일 후쯤 연락이 온 것이다. 3월 초 학부모 총회 시 상담 기간 상관없이 연락을 주시고 언제든지 오시라며 대단히도 외향인인 척 열린 교사인 척을 했지만, 사실 학부모 상담이 무서워서 담임을 맡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달력에 체크해 놓은 상담 날짜를 보며 일주일 동안 긴장하며 지냈다. 학급에 아무 일 없이 평범하게 하루가 끝나면 온 세상이 평화롭고, 학생들의 적극적인 반응에 신이 나서 수업을 하고 나오면 불끈불끈 힘이 나다가도 상담만 생각하면 살짝 마음 한편이 무거워지곤 했다. 다행히도 민수는 문제가 있거나 따로 말씀드릴 필요가 없는 인성도 성적도 운동신경도 훌륭한 학생이라서 어색한 학부모님과의 시간을 칭찬 폭격 작전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내가 학부모로서 우리 아들 담임선생님과 상담할 때 “선생님, 우리 아들의 장점은 나름 제가 잘 알고 있으니 선생님께서 보신 부족한 점을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했다가 상담이 끝난 후 기분이 매우 나빠진 적이 있었기에, 학부모님들이 찾아오시면 웬만하면 칭찬을 하는 편이다. 아들이 얼마나 학교에서 잘하고 있고 담임선생님께도 사랑받고 인정받고 있음을 확인하시고 어머님도 집에서의 자랑스러운 아들의 모습을 자랑하시며 화기애애하게 시간이 흘렀다.

 이제 슬슬 마무리할 때가 된 것 같은데 이만 가보시라고는 차마 못하겠고 더 이상은 할 말이 없어 어색한 침묵을 못 견디고 급하게 고3인 민수형까지도 칭찬을 하기 시작한다. 눈치만 보고 있는데, 미묘한 표정을 갑자기 지으시며 가방을 만지신다. 당해 학년도 생활기록부는 출력이 불가능한데, 혹시나 그걸 부탁하시는 건 아닌지 어떤 답변을 드려야 잘 넘어갈 수 있을지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는데, 가방 안에서 초콜릿을 꺼내신다. 맙소사. 생각지도 못한 공격이다. 학교에서 이런 선물은 절대 받으면 안 된다. 김영란법이 없었던 시절, 상담 기간만 되면 교무실에 먹을 것이 가득해서 진심으로 행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기에 웃으며 “어머님. 저 이런 거 받으면 안 돼요~ 저 잘려요~ 못 받습니다~”라고 정중히 말씀드렸다. 어머님은 선물 받은 초콜릿이 집에 하도 많아서 하나 가져온 거고 약소해서 미안하다며 제발 받아달라고 하신다. 리본도 제대로 안 묶인 선물포장도 안 되어 있는 정말 집에서 가져오신 것 같은 것처럼 보이긴 했다. (지금 글을 쓰다 보니 곧 수능을 앞둔 고3 형 때문에 초콜릿 선물이 많이 들어왔다는 말이 사실임을 확신하게 됐다) 다섯 번도 넘게 못 받겠다고 거절한 것 같은데, 내가 학부모로서 어린이집 선생님께 애들 돌보시느라 정말 고생 많으시죠, 당 채우시면서 파이팅 하세요라는 감사의 마음으로 스승에 날이나 상담하러 갈 때 작은 선물을 챙겨가기도 했는데, 준비한 입장에서는 감사해서 순수한 마음으로 드리는 데 거절하시면 좀 섭섭한 마음이 들 때도 있었던 거 같아서 너무 거절해도 실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결국, 아이고, 어머님 감사합니다. 그럼 학생들과 나눠 먹겠습니다.라고 하니, 아니라고 꼭 집에 가져가서 아이들 주라고 하신다. 그렇게 상담이 끝나고 종례를 하러 교실로 올라갔다.      

 청소 지도 후 학생 한 명이랑 상담하고 교무실로 내려오니 다른 선생님들은 퇴근하신 후였다. 비가 내리는 것 같았는데, 책상 서랍 안에 있을 줄 알았던 여분 우산이 없다. 밖에 나가보니 그새 비가 엄청 쏟아지고 있었다. 어쩌나. 우연히도 학교 시설 관리하시는 분이 지나가신다. 고장 난 우산, 버려진 우산을 분리수거장에서 언뜻 본 거 같아서 그거라도 상관없으니 빌리고 싶었다. 혹시 우산이 없는지 여쭤보니 좀 기다려보라고 하신다. 그때 마침 민수가 학교 건물 1층으로 나와서 우산이 없는지 난감해하는 듯했다.

 “민수도 우산이 없구나. 샘도 없어서 지금 기사님께 혹시 있는지 여쭤보고 기다리는 중이야. 넌 어떻게 할 거야?” 하니 편의점에서 살 거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때 기사님이 우산을 두 개 들고 뛰어오신다. 아마 하나는 본인이 쓰시려고 가져오신 것 같았지만, 나 혼자서 우산을 쓰고 학생을 버리고 갈 수 없기에, 하나 더 있는지 여쭤보니 그냥 가지고 오신 우산을 모두 주셨다. 괜히 뿌듯했다. “이야~ 너, 담임 잘 만나서 비도 안 맞고! 좋지!?” 생색을 냈다. 사실 남학생들은 비를 맞고도 잘 다니더라. 하지만 엄마(여선생님) 마음은 안 그런 거다. 민수와 헤어지고 혼자서 망상을 시작한다. 민수 어머님이 뿌듯하시겠지? 이렇게 비가 많이 오는데 선생님이 우산을 그것도 새 우산까지 챙겨줘서 아들이 비를 안 맞았으니. 아...... 그 초콜릿 때문에 내가 민수 우산 챙겨줬다고 생각하시는 거 아니야? 어머님은 역시 초콜릿을 주니 효과가 있네라고 생각하는 거 아닐까?      

 온 우주의 찝찝함이 내 마음에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고. 실수했다. 왜 그놈의 초콜릿을 받아버렸을까. 단거 좋아하는 내 새끼한테 비싼 초콜릿 먹여보려고 순간 판단이 흐려져 내 가방에 넣고 퇴근하던 중이었다. 빨리 다음 날이 돼서 학교로 가고 싶었다. 빨리 이것을 해치우고 싶었다. 초콜릿은 상자 안에 작은 거 20개가 들어있었다. 4개가 부족하다. 출근하면서 편의점에 들러 킨더조이를 4개 사서 24개를 채워 조회를 하러 교실로 올라갔다. 조회 시간에 반 아이들에게 초콜릿 먹을 사람~을 외치니 하나 둘씩 나온다. 이거 비싼 거라며 좋아하는 학생도 있었고 종류가 여러 개여서 뭘 먹을지 한참 고르다가 입에 넣는 모습을 놓치지 않고 사진으로 찍었다. 미션 컴플리트. 민수 어머님께 반 아이들과 달달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사진과 함께 메시지를 보낸다. 어머님은 신경 쓰이게 해서 송구하다고 하셨지만 전혀요 어머니, 덕분에 제가 아이들에게 생색도 내고 무엇보다 코끼리만큼 무거웠던 제 마음이 깃털만큼 가벼워졌답니다. 이제 상담이 없거든요.     

우리 아들 상담하러 학교에 갈 때는 선물 안 가져가리라 생각하게 되었던 소소한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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