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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07. 2024

[쓰밤발오42] 나도 할머니댁에 가야 돼? 왜?

우리 집엔 이제 어린이가 없으므로 어버이 연휴가 되었고, 친가에 다녀왔다. 다녀와서 기분이 별로다. 


어버이날이라 꽃을 사들고 갔다. 할머니는 재작년에 내가 사드린 꽃을 가리키며 동생이 사준 꽃을 아직 간직하고 있다고 하셨다. 착각하실 수도 있으니 정정해 드리는데, 올해 사온 꽃도 동생이 사 온 거냐면서 반기신다. 동생이 정정하는데 듣지 못하시는 건지, 안 들으시는 건지 알 수 없다. 후자의 마음엔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역사와 저 대화 외에 다른 대화는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논리적인 판단이 들어있다. 


점심 식사를 하고 나서부터도 내내 동생 이야기만 하신다. 할아버지가 동생을 엄청 좋아핬다느니, 너무 잘생기게 잘 낳았다느니. 할머니에 대한 내 마음을 타인이 보는 공간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이 아빠한테는 상처가 될 수 있으나 볼 일이 없어 적어보자면, 나도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없어서 처음엔 무시하려고 했다. 계속 반복되는 저 말에 어렸을 때부터의 기억까지 올라오고, 돈은 내가 썼는데 다 동생이 해줬다는 착각에 이제는 아예 동생만 보는 태도에서 짜증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애정 없는 것도 사실이고 아빠보고 꽃을 사다 드린 건데도 돈도 아까워졌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다. 그래도 이해해보려고 했다. 할머니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던 때 태어나신 분이니까 그럴 수 있고, 피차 애정이 없는 것 같으니 오히려 다행이라고 나를 설득했다. 설득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단 한 번도 설득되지 않았다는 걸 이제야 깨닫는다. 자존심이 상해서 속상하다고 어디에 말도 안 하고 혼자만 마음속에 숨겨뒀다. 이 글을 쓰는 와중에 마음속에 깊이 숨겨뒀는지 눈물이 차오른다. 자존심 상해. 대놓고 나를 안 챙기는 건 아니지만 어딜 가나 동생 이야기만 하는 것도 알고, 동생을 더 자랑스러워하는 것도 안다. 엄마아빠는 중간에서 할머니가 너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모른다고 늘 말하지만, 그건 당사자가 더 잘 안다. 굳이 나를 얼마나 예뻐했는지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 이유도 잘 알고. 더 억울해진다. 차라리 변명할 여지도 없는 차별대우면 좋겠다. 


오늘은 유난히 더 심했다. 할아버지가 동생을 엄청 좋아하셨다고 계속 말하니까 아빠가 할머니한테 둘 다 좋아했지 무슨 소리냐고 했다. 차라리 대놓고 티 내라고 생각했던 과거의 내가 민망하게 이렇게까지 티를 내니까 이제는 그 모습도 화가 났다. 그 자리에 있던 가족들 모두가 눈치채는 그 상황이 싫었다. 너무 화가 나서 처음으로 내 감정을 드러내며 난 이제 굳이 올 필요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더니 엄마는 동생을 더 오랜만에 봐서 그렇단다. 오늘의 일만으로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 마디 더 하려다가 엄마의 잘못은 아니니까 일단 삼켰다. 


다음에 갔을 때도 그러시면 내가 할머니댁에 계속 가야 할까? 어버이날을 굳이 챙겨야 할까? 그냥 엄마, 아빠한테 말하고 난 안 가고 싶다고 굳이 내 시간 들여서 가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말하고 싶다. 해결을 바란다기 보다 내 감정을 말하고 싶었던 것뿐인데 어떤 해결도 안 나고 서로 상처만 주고받고 끝이 날, 감정만 소모되는 모든 과정이 귀찮다. 어떻게 해소해야 하지? 모르겠다. 일단 지금은 엄마, 아빠, 고모는 알아줬으면 좋겠다. 매년 꽃을 사가는 이유는, 사면서도 내가 안중에도 없는 사람한테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하는 의문을 꺾는 이유는, 할머니를 향한 나의 최선은 결국 그들을 향한 사랑이란 것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잔인하지만 변명으로 서로를 위로하지 말고 그 환상에서 빠져나와 할머니와 나 사이에는 그만큼의 사랑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으면 좋겠다. 어떤 변명보다 위로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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