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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슷 May 19. 2024

[쓰밤발오54]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

미취학 아동 시절 옆집 친구네 엄마가 팥죽을 하고 나랑 엄마를 초대했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낯설어서 먹고 싶지 않았다. “00 이는 잘 먹는데 먹어봐 너도” 호승심에 먹었다.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먹었다. 지금은 팥죽, 팥칼국수 다 좋아한다.


초등학교 5학년 친구네 집에 놀러 갔다. 친구네 어머님이 콩국수를 먹고 가라고 하셨다. 처음 보는 음식이었다. 처음 보는 탁하고 하얀 국물에 거부감부터 들었지만 거절은 예의가 아니라고 배워서 그냥 먹었다. 맛있다고 생각하면서 먹었다. 지금은 콩국수를 좋아한다.


잠투정은 있어도 밥투정이 없던 나는 그냥 일단 먹다 보면 맛있어진다는 걸 배웠다. 지금은 가리는 음식이 없다. 시도하지 않는 음식도 거의 없다. 아, 그냥 너는 이런 맛이구나. 먹는다. 대체로 다 좋다.


내가 무던하고 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왜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생각해야 해? 왜 그런 것까지 생각해야 해? 난 무던하고 쿨한데. 그렇게까지와 그런 것까지의 범위를 알고 있기에 던진 물음표라는 걸 외면하고 살았다. 이제야 크레이프 케이크 먹듯 한 층 한 층 벗겨보니 알겠다. 나는 상당히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이라는 걸. 먹성은 의도한 대로 생각한 대로 됐는데, 성향은 그렇지 못한가 보다. 정신력으로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믿었고 그 핑계로 자주 나를 괴롭혔다.


나는 아주 자기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무던하고 쿨해서 좋았다. 개뿔. 원래 자기 자신은 밑바닥을 알고 있기에 사랑하기 어렵다는데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다녔다. 그 시간들이 부끄럽고 애잔하다. 어쩐지. 이제야 밑바닥이라고 믿고 있던 바닥을 깨부수고 새로운 밑바닥을 응시한다. 뭐 이렇게 싫어하는 게 많아? 좋아하는 것도 많으니까 퉁치자고 어르고 달랜다.


또다시 시작이다. 어떤 여정이 될지 몰라도 다시 사랑해 보자. 나는 나로 평생 살아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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