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2021)>
영화 초반, 서래는 본인이 중국사람임을 밝히면서 한국어 실력이 서툴다는 것을 먼저 얘기한다. 실제로 영화에서 서래가 상황에 맞지 않게 웃어넘기는 장면은 대부분 자신이 모르는 한국어를 들었을 경우이다. 서래는 드라마에서 나오는 대사를 통해서 한국어를 공부하는데, 해준과 대화할 때 그 문장들이 똑같이 사용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말은 단어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문장으로 이어가고, 문장은 상황과 분위기를 담아간다. 해준은 단 한 번도 서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 적이 없지만, 서래는 그의 문장에서 그의 마음을 읽는다. "깊은 바다에 던져버려요. 아무도 못 찾게." 서래가 해준에게 배운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의 표현이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영화는 총 2부에 걸쳐서 진행이 된다. 첫 번째는 해준이 서래에게 감정을 느끼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 즉 해준의 헤어질 결심이고 두 번째는 서래가 해준에 대한 감정을 깨닫고 헤어지기까지의 과정, 즉 서래의 헤어질 결심일 것이다. 영화의 두 부분은 형식적으로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해준이 그 단서를 찾으면서 서래를 만나게 되는 과정이다. 그러나 그 주체가 다르다. 첫 번째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해준은 서래의 뒤를 쫓으며 그 단서를 찾고자 한다. 그 과정에서 서래에게 감정을 느끼고 다가가지만 결국엔 관계에서 도망가 멀고 안개 낀 이포에 다다르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살인사건은 이포에서 벌어지게 된다. 이는 서래가 해준이 있는 곳으로 직접 찾아간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데 영화에서는 그저 인기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찾아온 것으로 묘사가 된다. 해준을 만난 서래는 마음을 표현하지만 이미 도망친 해준에게 있어서 둘은 경찰과 피의자의 관계이다. 이를 눈치챈 서래는 해준에게서 멀어지기를 결심하고, 영화는 결말 부분에 다다르게 된다.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파도처럼 표현된다. 마음이 간조일 때는 파도가 밀려 그 사람을 볼 수 있지만 마음이 만조일 때는 파도가 덮쳐 그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파도와 모래성이 서로를 만나는 순간은 모래성이 조금씩 깎여 결국에는 무너지고 만다. 서래는 해준이 그랬던 것처럼 휴대폰을 돌려줌으로써 해준이 "붕괴"되기 이전으로 돌아갈 것을 부탁한다. 해준이 사랑을 표현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다. 그러나 이미 무너진 모래성은 같은 모양으로 돌아갈 수 없다. 파도는 만조와 간조를 반복하며 돌아오겠지만 사라져 버린 모래성은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해준의 마음에는 앞으로도 수없이 많은 파도가 일 것이다. 자신에게 묻힌 모래성을 미처 발견하지도 못한 채, 모래성을 찾으러 몇 번이고 만조와 간조를 반복해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