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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O낙 Oct 13. 2022

5. 애를 제일 팔고 싶어한 사람은 나였나봐.

고레에다 히로카즈 <브로커(Broker), 2021>

 여성청소년과의 형사 ‘수진’은 오랜 시간이 걸쳐 신생아를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범을 잡기 위해 잠복해왔다. 그런 수진의 수사망에 잡힌 것은 아이를 베이비박스 앞에 버리고 간 어린 엄마 ‘소영’이다. “아이를 버리는 엄마는 무책임하다”는 등의 대사로 말미암아 수진은 인신매매를 주도하는 상현이 아닌 아이를 버리고 간 소영을 더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가는 듯하다. 버리는 사람이 있으니 되파는 사람이 있다는 동수의 대사처럼 말이다. 수진은 영화의 시점에서 동거하는 상대가 있지만 모종의 이유로 결혼을 바라지 않는다. 이는 “엄마”의 역할과 연관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수진은 모름지기 엄마라면 자신의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고 키워내야 하는 헌신적인 인물로 표상하고 있는 듯하다. 수진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는 아마 여기에 있었을 것이다. 소영을 이해하고자 하는 이 형사와는 다르게 수진은 그녀를 그토록 매몰차게 비난한다. 그녀에게는 자신이 생각하는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않는 소영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영화 <브로커>는 다양한 이유로 가족을 만들지 못하는 사람의 이야기이다(여기서 “가족”이라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정상성’을 띠고 있는 형태를 말한다). 상현에게 아이를 사러 오는 사람들도 비슷하다. 동성이라는 이유로 합법적으로 아이를 입양하지 못하는 부부,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못하게 된 부부처럼 말이다. 보육원에서는 6살까지의 아이만 입양이 되고 그 이후로는 더 이상 입양 문의가 오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다. 이에 상현은 그들과 자신을 “거절 당한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다. 보육원에, 그리고 사회에 남겨진 사람들. 가족이 되기를 거절당한 사람들은 그렇게 개개인으로 남는다. 상현의 무리는 아이를 팔기 위해 부산부터 서울까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게 된다. 한 자동차 아래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시행착오를 겪어온 그들은 마치 가족이 된 듯한 감정을 느낀다. 인물들은 외부의 사람을 만날 때 자연스레 가족 내부의 역할을 하나씩 정한다. 다섯 명은 서로가 서로의 친척이 되기도 하고, 자식이 되기도 하며, 부부가 되기도 한다. 이는 단순한 소속감의 문제가 아니다. 그들은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한 구성원의 역할을 맡게 되는 것이다.허상으로 만들어진 가족일지라도 여기서는 나도 구성원의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리라면 새로 만들어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기대를 하게 된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기대를 뒤로한 채 (가짜) 가족을 와해시킨다. 영화의 막바지, 상현은 그들에게 자기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대사를 남기고 불현듯 종적을 감추게 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상현이 영화의 등장인물 중 유일하게 진짜 가족을 이뤄봤던 인물이라는 것이다. 기차 안에서의 대화에서 가족과의 여행이 그다지 즐겁지는 않았다는 얘기를 꺼내는 걸로 보아 마냥 행복한 가족만은 아니었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상현은 파칭코를 다니다가 모종의 이유로 본인의 가족에서 쫓겨난 인물로 묘사가 된다. 그에게 있어서 가족이란 본인의 손으로 무너뜨린 공동체이기도 하다. 또한 가족에서의 그의 역할이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인물이다. 상현은 본인의 종적을 감추면서 또 한 번 가족공동체를 붕괴시킨다. 그는 역할로써의 가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상현과 비슷하게 본인의 손으로 가족을 만들지 않는 인물이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수진이다. 수진 또한 영화의 러닝타임 내내 끊임없이 가족과 성별의 역할에 대해 고민한다. 그러나 수진이 선택한 미래는 상현과 다르다. 수진은 소영을 대신해 그녀의 아이를 맡아서 키우게 된다. 소영이 출소한 후, 그녀와 주변 인물들에게 연락을 돌린다. 그리고 아이를 키우기 위한 방법을 함께 물색해보자고 말한다. 한 아이를 몇년 간 대신 키워본 수진은 그제서야 소영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런 소영을 돕기 위해, 그녀는 새로운 가족을 찾아 나선다. 한 지붕 아래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집단으로 그 범위를 넓혀가고자 한다.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옛말이 있다. 아주 작은 가족이라는 집단을 지나,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사회적 제도와 복지 안에서 사람은 성장한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동체라는 건 한 사람을 지켜내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큰 가족일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공평하게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으며 살기 위해, 영화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 달라고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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