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stone
옐로스톤에 왔어. 근데 날씨가 말이야... 각오를 단단히 하고 왔는데도 상상 이상으로 추워서 진짜 깜짝 놀라는 중이야. 오죽했으면 간밤에 잘 자고 있는 남편 침낭을 열고 들어갔겠어. 남편이 열부자거든. 평소엔 그게 별로였는데 어제는 매력 포인트였어.
우린 여행할 때, 캠핑과 호텔을 적절히 오가며 자연과 문명 사이의 들락거림을 좋아하는데, 옐로스톤은 그럴 수가 없었어. 너무나도 전 세계적으로다가 사람들이 몰려오는 곳이라고 말만 들었는데 와 보니 정말 그래가지고, 며칠간 그냥 죽었다 생각하고 다 내려놨지. 그러면 추운 것도 웃기고, 그냥 다 재밌거든.
침낭 속은 남편이 지펴놓은 화기로 충만했어. 한껏 모아놓은 열기를 타자를 향해 흔쾌히 개방하는 남편이 마음에 들었어. 물론 나도 그를 위해 내 열기 모아 개방할 수 있지. 부부라서가 아니라 그냥 나는 열이 있는데 너는 없으면 좀 줄 수 있는 거야. 옐로스톤에서 배웠어. 열의 전도가 시각적으로 난무하는 곳이거든. 마그마 중심부에서 식은 마그마 층으로, 차차 다양한 암반대로 열이 전도되다가 바위틈 사이에서 덥혀진 뜨거운 암반수가 리듬에 맞게 팡팡 분출 돼.
지구는 정말 유머 감각 있는 별이야. 온천수의 냄새, 색, 모양이 얼마나 제멋대론지 진짜 웃겨 죽을 뻔했잖아. 신이 있다면 이거 보고 웃으라고 만든 게 틀림없어. 벌벌 떨면서 걷다가 간헐천에서 뿜어져 나오는 따뜻한 수증기가 얼굴을 스쳐 지날 때마다 한참을 가만 서서 맞았어. 속눈썹에 왕관 맺힐 때까지 그러고 있었어. 추운 데서 제대로 세수 못했다고 지구가 세수시켜줬어. 모공 하나하나에 새로운 물이 들어찼어.
특히 지구의 리듬감은 좀 미친 것 같아. 옐로스톤에서 가장 성실하게 미친 리듬의 소유자는 올드 페이스풀이라는 간헐천이야. Old Faithful. 때 되면 어김없이 분출하기에 원주민들이 동네 빨래를 모아서 거기 넣어놨데. 이런 식의 동네 빨래 너무 환상적이지 않아? 온도와 압력으로 세제도 필요 없는 거야. Old Faithful. 이름 듣고 눈물이 조금 맺혔어. 나는 성실한 것들에 울컥하거든. 성실한 해와 달의 움직임, 성실한 사계절, 성실한 융기와 침강과 풍화와 침식, 이런 게 왜 이렇게 좋은 지 모르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