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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Aug 31. 2024

게으른 사람의

달리기, 그리고 사랑




달리기와 사랑에 빠진 나를 보고 남편은 신기하다는 듯 웃었다. 땀에 흠뻑 젖어 숨을 몰아쉬며 현관문을 들어설 때마다 암만 봐도 나랑 안 어울리는데 계속하는 게 용하고, 장하고, 뭔가 말 못 할 감동이 있는 모양이다.


나도 안다. 달리기란 자고로 20대 때부터 꾸준히 달려온, 착실한 메트로놈 같은 남편에게나 걸맞는 액티비티라는 걸. 그래서 나는 남편이 말이라도 붙일세라 쌩-하고 지나쳐 욕실로 입장하기 바쁘다.


"당신 스마트워치 사줄까? 달리기 할 때 편해."


"아니."


"왜?! 가벼운 것도 많아."


"싫어. 가벼운 것도 무거워. 나는 내 달리기 수치화하고 싶지 않아."


"수치화해야 돼. 그래야 더 건강하게 할 수 있어. 앞으로 본격적으로 하려면 필요할걸?"


"본격적으로 안 할 거야."




본.격.적. 

이보다 더 산통 깨는 표현이 있을까. 나는 달리기를 건강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다. 그냥 어쩌다 사랑에 빠진 거다. 이런 건 로또처럼 얻어걸리는 거라서 그냥 그 흐름이 다 할 때까지 재밌게 타면 된다. 내 인생 테마는 최대한 자주 사랑에 빠지는 일이지 본격적으로 뭘 하는 데 있지 않다.


물론 남편은 '본격적'인 방식으로 사랑하는 인간이라 누가 맞고 틀리고 따질 일은 아니지만 일단 내 취향은 아니다. 정말 아주 가끔은 우리가 부부라는 게 내 인생 최대의 농담, 이걸 능가할 농담은 없다는 확신에 사로잡힌다. 이를테면 나는 재미와 사랑의 감정을 잘 구분 못 하는 사람이라서 가끔 진지하게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남편을 사랑하는가. 어쩜 이렇게 재미없을 수가 있는가.'


그러다 문득 아주 선명한 느낌으로,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걸 깨닫는다. 마치 신이 나처럼 재미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찌야, 너는 재미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으니 이 사람을 니 인생에 보내주마. 재미없는 사랑도 사랑이다, 알 때까지 알려주마.‘ 뭐 이 정도로 작정했다 싶을 정도로 반복되는? 나쁘다는 말은 아니고, 자연 상태의 내 성향에 꾸준히 반하는 방향으로의 사랑? 몰라. 도저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압도적인 무언가가 작동하고 있다는 정도만 가늠되는.




어찌 됐든,

사랑에 빠진 상태에서는 내가 없어진다. 그래서 나는 육아하는 내 친구들, 각자의 분야에서 사랑에 빠져 빛나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고 짜릿하다. 이런 인간들은 아무렇지 않게 위험을 감수하고, 지쳐 보이지만 누구보다 살아있다. 그렇게 사랑에서 나온 것들은 뭐라 한마디로 하기 어렵지만 일단 가까이 가고 싶게 생겼고, 함께 뭔가를 도모하고픈 충동을 자아낸다.


최근에 그런 인간들과 여행을 했다. 동부에 살아서 자주 못 보는 친구들인데 둘 다 나이에 비해 깊고 가볍다. 말과 침묵 사이 리듬이 우아한 다이버들의 몸짓 같다가도, 날리는 족족 펀치라인인 스탠드업 코미디언 같기도 하여, 같이 있는 내내 잔잔한 고양감이 흘렀다. 이런 인간들이 세상에 더 많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헤어질 때 아주 초큼 눈물이 맺혔다.




요세미티까지 따라간 달성공원 돗자리. 컵라면 맛있게 먹어보겠다고 세상 진지하게 바람 막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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