私淑
좋은 글은 나를 헹군다. 매일 몸에 때가 끼듯 정신에도 때가 끼는데, 그게 어느 정도 헹궈진다. 갑자기 고백하나 하자면 나는 뭐든 과하게 헹구는 편이다. 설거지, 샤워, 손빨래, 한 번은 내가 왜 이런가, 결벽증인가 싶어서 걱정한 적도 있는데 그저 헹구는 행위를 좋아할 뿐임을 알게 되었다.
물 관련 스포츠도 좋아하고 하루종일 물도 엄청 마신다. 물은 눈으로 보거나 만지거나 마시거나 빠져들거나 그 어떤 행위로든 정화를 일으킨다.
요즘은 맹자 진심장을 보는데 맹자는 정말 맹자가 되어버린 사람 같아서 커다란 헹굼이 일어났다. 맹자 전에는 왕양명에 또 한동안 빠져 있었다. 웃긴 소리지만 전습록을 보면서 달리기와 턱걸이를 지금처럼 꾸준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결국 자기가 되어버린 용맹한 인간들을 사랑하고 사숙한다. 그러면서 혹여나 내 꼬라지대로 못살고 죽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나는 뭔가에 전전긍긍 안 하게 생겨가지고, 사실 굉장히 몰래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전전긍긍을 해야 내 세계에 갇히는 형벌을 면할 수 있다. 나는 내 세계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 때, 개성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뭔가에 잘 빠지는 성정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정상 몰입 지점을 지나 과몰입으로 빠진다. 영감이 피로감으로 변질된다. 요 며칠 평소보다 고요와 기쁨이 줄고, 불안과 산만이 상승하길래 가만히 눈을 감고 나한테 물어봤더니, 달리기랑 턱걸이에 빠져서 정신이 헹궈질 겨를이 잘 없었단다. 가끔은 '뭐지?' 묻자마자 답을 눈앞에 들이대서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꾸 씻겨야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물론 각자 자기가 되는 길이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둥, 남의 글을 보지 말라는 둥의 접근은 믿지 않는다.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그 어떤 순간에도 혼자일 수 없다는 것. 죽는 순간에도 나는 내 죽음을 알아차리는 자와 함께라는 것.
어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달리기를 하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지언정 들이쉬고 내쉬고 내 숨만 계속 쉴 수 있다면 평생도 달려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지구력이나 근력과는 무관한, 지금 이렇게 적어놓으니까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엔 생생한 감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