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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CI Sep 04. 2024

헹구는 시간

私淑




좋은 글은 나를 헹군다. 매일 몸에 때가 끼듯 정신에도 때가 끼는데, 그게 어느 정도 헹궈진다. 갑자기 고백하나 하자면 나는 뭐든 과하게 헹구는 편이다. 설거지, 샤워, 손빨래, 한 번은 내가 왜 이런가, 결벽증인가 싶어서 걱정한 적도 있는데 그저 헹구는 행위를 좋아할 뿐임을 알게 되었다.


물 관련 스포츠도 좋아하고 하루종일 물도 엄청 마신다. 물은 눈으로 보거나 만지거나 마시거나 빠져들거나 그 어떤 행위로든 정화를 일으킨다.


요즘은 맹자 진심장을 보는데 맹자는 정말 맹자가 되어버린 사람 같아서 커다란 헹굼이 일어났다. 맹자 전에는 왕양명에 또 한동안 빠져 있었다. 웃긴 소리지만 전습록을 보면서 달리기와 턱걸이를 지금처럼 꾸준히 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결국 자기가 되어버린 용맹한 인간들을 사랑하고 사숙한다. 그러면서 혹여나 내 꼬라지대로 못살고 죽을까 봐 전전긍긍한다.


나는 뭔가에 전전긍긍 안 하게 생겨가지고, 사실 굉장히 몰래 전전긍긍하는 사람이다. 전전긍긍을 해야 내 세계에 갇히는 형벌을 면할 수 있다. 나는 내 세계에 갇혔다는 느낌이 들 때, 개성이 사라지는 걸 느낀다. 이런 일이 종종 있다.


뭔가에 잘 빠지는 성정을 타고났기 때문이다. 정상 몰입 지점을 지나 과몰입으로 빠진다. 영감이 피로감으로 변질된다. 요 며칠 평소보다 고요와 기쁨이 줄고, 불안과 산만이 상승하길래 가만히 눈을 감고 나한테 물어봤더니, 달리기랑 턱걸이에 빠져서 정신이 헹궈질 겨를이 잘 없었단다. 가끔은 '뭐지?' 묻자마자 답을 눈앞에 들이대서 좀 웃기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자꾸 씻겨야 나는 내가 될 수 있다. 물론 각자 자기가 되는 길이 다르겠지만 나는 인간은 결국 혼자라는 둥, 남의 글을 보지 말라는 둥의 접근은 믿지 않는다. 


언젠가 아무렇지 않게 알게 된 사실은, 인간은 그 어떤 순간에도 혼자일 수 없다는 것. 죽는 순간에도 나는 내 죽음을 알아차리는 자와 함께라는 것.


어제는 이런 생각을 하면서 매달리기를 하는데 팔이 떨어져 나갈지언정 들이쉬고 내쉬고 내 숨만 계속 쉴 수 있다면 평생도 달려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지구력이나 근력과는 무관한, 지금 이렇게 적어놓으니까 나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데, 그 순간엔 생생한 감정이었다.




명명덕(나비체), 2000 X 1000px, Procreate 작업, ACCI CALLIGRAPHY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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