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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는 시간에

night paddling

by ACCIGRAPHY




사막을 지나자 호수가 보인다.


물가에 바로 텐트를 칠 수 있는, 흔치 않은 캠핑장에 도착했다. 남편은 패들보드에 바람을 넣기 시작하고, 나는 곧 배가 고플 그를 위해 패티를 굽는다.


각자의 임무를 마치고 모여 앉은 우리는 송골송골한 땀을 훔치며 치아바타 위에 이글거리는 패티를 올린다. 집에서 미리 썰어 온 색색의 채소와 치즈도 착-착- 야무지게 한입 왕- 베어 문다. "맛있제?" "어, 맛있다." 굳이 안 해도 아는 말을 서로 주고받으며.


패들보드 5년 차가 넘어가니 이제 보드를 물에 띄워놓고 날아차기 하는 자세로 올라탈 수 있게 되었다. 햄버거 하나 먹는데 오랜 시간이 필요한 나는 어서 빨리 날아차기 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꼭꼭 씹느라 애를 먹었으나, 인고의 시간은 지나가게 마련이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물 위에 있었다.


잔잔하고 맑은 물에 수상식물이 크고 다양해서 구경하는 재미에 푹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탁 트인 공간과 미로 같은 풀숲이 조화로워, 지치면 돌아왔다가 다시 나가기를 반복했다.


금전적 수지타산이 삶의 중요한 가치인 남편은 내가 호수 속으로 사라질 때마다 흐뭇하게 웃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캠핑장이 하루에 15불 밖에 안 하는 데다 아내가 쉬지도 않고 패들링을 가니, 본전 뽑을 때 나오는 미소가 절로 흘렀다. 줄리아 로버츠처럼 입이 큰 남편은 미소도 커서 멀리서도 잘 보였다.


하루 종일 구석구석 다녔더니 호수의 생김새가 대충 파악되어, 처음으로 밤에 패들링을 해 봐야겠다는 결심에 이르게 되었다. 모험을 좋아하지만 겁도 많은 편이라 밤에는 해 본 적이 없었기에, 생각만으로도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별빛이 본격적으로 쏟아지는 밤 열 시. 선베드에 누운 남편은 헤드랜턴을 쓴 채 책을 보고 있다.


"당신 이마에 불 꺼도 글씨 보일 것 같지 않아? 별 봐."


"어, 진짜네."


"나 호수 위에 달빛은 본 적 있어도 별빛은 처음 봐. 호수가 너무 잔잔하니까 하늘이 그대로 물에 내려앉아서 두 개가 됐어. 아니, 그냥 더 큰 하나가 됐어. 몰라, 안 되겠다. 나 잠깐만 갔다 올게."


살며시 보드를 물에 띄우고 물고기들이 깨지 않게 무음으로 노를 젓기 시작했다. 점점 남편의 헤드랜턴이 멀어져 가고, 하늘과 물의 경계가 보이지 않는 별의 공간으로 빨려 들어갔다.


바람이 없으니 노를 한 번만 저어도 쭉쭉 나갔다. 그럴 때마다 보드의 뾰족한 머리는 찰랑이는 별들을 조용히 갈라놓았다. 짜릿함에 한참을 나아가면서 별들의 가르마를 내고 돌아다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도 모르게 손에서 힘이 스르륵 빠지면서 고개가 하늘로 향했다. 몸에는 우주복이 입혀지고 대기권 밖으로 순간 이동을 하더니 온통 캄캄한 우주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아름다움이 지나쳐 조금 무서웠다.


'무서워?'

'대체 뭐가?'

'이게 온통 너야. 무섭긴 뭐가 무서워?'


순간, 별똥별 하나가 쏙! 하고 떨어지면서, 그 자극으로 오감이 다시 입혀졌다. 우주복을 잃어버린 나는 아쉬움에 괜히 툴툴댔다.


'한참 좋았는데 뭐야… 게다가 소원 빌 틈도 안 주고 저렇게 빨리 떨어진다고?‘


미국에 처음 와서는 별똥별을 봤다는 사실에 흥분했으나, 흔치 않게 접하다 보니 별똥별에도 취향이 생겨버린 것. 언젠가 레드락주립공원에서 나는 세월아- 네월아- 떨어지는 별똥별을 본 적이 있었고, 그 후로 나는 느긋하게 죽어가는 별들을 편애하게 되었다.


그렇게 한참 하늘을 보다가

시선이 별이 아닌 빈 공간으로 향했다.


별을 별 되게 하는 텅 빈 칠흑은 한없이 포근했고,

온갖 새롭고 귀한 것들이 유출되는

궁극의 모성母性이었다.


그 모성에 빚지지 않기 위해

모든 순간에 눈을 반짝이며

더 빛나는 존재로 있기로 했다.




Night Paddling at Winterhaven, ACCI PHOTOGRAPHY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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