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스타 산의 가르침
평생 여행하며 살고 싶었던 나의 갈망은
남편을 만나고 사그라들었다
내가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남편은 이동이 삶 자체인 사람
심지어 태생도 아프리카
날렵한 발목에 튼튼한 다리, 아시안에 걸맞지 않은 두툼한 입술을 볼 때면 전생에 그가 아프리카 초원을 노닐던 모습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그런 남편을 둔 덕에, 이 정도면 형벌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여행이 잦다. 지금은 오레곤 주 어드매 작은 호텔 로비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글을 쓰는 중. 나 말고 참하고 평범한 - 이게 오히려 더 유니콘스럽긴 하다만 - 여성을 만났더라면 진즉에 혼자 나돌아 다니다 이혼당했을 게 뻔하다.
실은 나도 남편이 아니었더라면 누군가와 이렇게 오랜 시간을 함께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그도 나도 유년기부터 은둔자적 기질이 다분했고, 사람들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해 본 적 없었다. 둘 다 세상 일에 큰 관심 없는데 이왕 태어난 김에 캐릭터에 몰입해서 사는 중이랄까.
그러다 언젠가 세상사에 관심 없는 게 부끄러운 일임을 사무치게 깨달았다. 너무 늦지 않게 깨달아 다행스럽고 감사할 따름.
그리하여 우리의 여행은 호화로움이나 찬란함과는 거리가 멀다. 땀 냄새와 자연 풍광이 적절히 버무려진, 그저 자주 해도 무방한 무언가이고, 누군가는 일상에서 쉬이 얻음직한 영감을 불편을 감수하며 얻는 일이다.
가끔 정말 신비로운 국립공원을 입장할 때면, 신이 사사로이 멍 때릴 때 들어앉아 있을 법한 비밀 서재가 열리는 상상을 한다. 대자연의 살결을 가까이 매만지며, 삶의 정답으로 가득한 책장을 한 장 한 장 온 힘 다해 넘겨본다.
바람이 풀밭을 누르며 지나가는 모습, 칼데라호의 물이 움직이는 모양, 구름에 따라 낯빛을 달리하는 샤스타 만년설, 그 안에 퐁당 안겨있을 땐 조금 찬란할 때도 있고.
그래도 대부분의 시간은 고단하다.
안 하면 되지 않느냐고?
나는 내 삶에 개기지 않는다.
그렇게 안 생겼지만 고분고분한 사람인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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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스타 산에서 쓴 일기:
청춘을 다 쓰고 나서야 깨달았어요
내가 어릴 적 이끌렸던 영적 가르침들이
특별한 사람이어서 주어졌던 게 아니라
내가 욕심이 많아서
남들보다 더 공부해야
남들만큼이라도 겸손할 수 있고
거기서 뭐라도 시작된다는 걸 알려주려고
다른 사람들 인생은 몰라도
나는 그렇게 시작해야 한다고
삶이 나에게 그 모든 길을 꾸역꾸역 걷게 했음이
하나하나 알려주는 사랑이
너무 커서
한참을 흐느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