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슥슥슥

by ACCIGRAPHY




스스로에게 하는 당부


중요하다고 생각될수록

그냥 슥슥 하기로 해놓고

또 까먹고 열심히 하다가

심장에 불나는 줄도 모르고

눈머는 줄도 모르고


대흉근에 가해진 지속적 긴장으로 인한

방사통인지 연관통인지

열흘간 죽다 살아남


내 일이 중요하다 생각되는 순간

몸에 힘이 들어가고

딱딱한 근육이 전투복 되어

누군가는 해를 입는다


세상엔 중요한 일이랄 게 없거나

온통 중요한 일들 뿐이므로


호흡이 가늘고 길게 드나드는지

턱관절 승모근 대흉근이 이완되어 있는지

너무 오래 앉아있지 않았는지

그런 거나 이따금 느껴주고


몸에 좋은 거 먹고 운동하고

하루 종일 내 리듬에 맞게 살다가

힘 좀 넘치는 날은 사람들 만나 놀고


며칠 전 오랜만에 힘이 남아돌길래

사람들 바글바글한 곳에 갔어

좋아하는 목사님 이임식이었지


가기 전부터 왠지 바빠질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가자마자 마이크를 쥐어 줘

통역 좀 해달래


또 잘해야겠다는 마음이 올라오네


자의식 과잉

퍼포먼스 저하

대흉근 손상으로 이어지는 몹쓸 그 마음은

호흡으로 후후 날려버렸어


목사님은 슥슥슥 목회하는 사람

기도할 때가 특히 인상적이었는데

평소 말투랑 기도 톤이 똑같애

나 그런 사람 좋아




일단 좀 웃기고 봐야 하는 이유


하루는 산책을 하는데

부케다발처럼 생긴 아기자기한 꽃이 빨갛게 있길래

세상에 너무 오밀조밀 예쁘네 이러고

한참 보다가 지나갔어


근데 얼마 안 가서 또 색깔만 다른

부케다발 그 꽃이 흐드러져 있는 거야

어머머 이번엔 보라색이네 이러고 또 한참 보다가


집에 거의 다 와서 이번엔

같은 꽃이 무지개 버전으로 있네?

아니 같은 꽃을 뭐 하러 이렇게 다양하게 쓸데없이

누가 만들었는지 진짜 이 정도면 나 웃길려고

작정한 거 아니냐며


그랬더니 맞데

웃길려고 만들었데

재밌어서 만들었데

ㅋㅋㅋㅋㅋㅋㅋㅋ


웃김의 바닥에는 감탄이 있고

그게 생을 굴러가게 한다는 거야


그러면서 자기 닮은 존재들은

다 가볍고 웃기다는 거야


자기처럼 재밌어서 뭔가를 자꾸

슥슥 만들어보라는 거야


뭔가가 너에게 재밌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크나큰 우주적 사건이고


의미 같은 건 이미 내가 다 만들어놨으니까

너는 그냥 그렇게 존재만 하라는 거야


네가 나니까 의미 따위 알고자 하면

언제든지 알 수 있으니

조급해 말라는 거야


아찌가 외교부 통역을 오래 했잖아

정부로부터 초청받는 해외인사들의 공통점이 있었어

자기 분야에 정통할수록 가볍고 웃기다는 거


그렇다고 웃긴 사람 되어야지 결심하면 그건

정말이지 너무 슬픈 일이고


뭔가가 재밌어서 그걸 오래 한 사람

혹은 스스로를 오래 좋아한 사람은

대부분 안 웃길 수가 없는 것 같아


그 사람은 웃길 의도가 없지만

존재 자체가 웃겨 그 알록달록 부케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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