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LIKE YOU VERY MUCH
선셋대로에 있는 빌보드. 대기업 광고가 있을법한 자리에 도대체 누가 저런 귀여운 짓을 했나 싶어서 알아본 결과 조던 브롬리(jordan bromley)라는 사람으로 밝혀짐. 법조계와 예술계를 넘나들며 재밌게 사는 분 같음.
달리기 할 때 빈손이라 맨날 혼자 보고 피식 웃다가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주섬주섬 핸드폰 들고나가서 찍어왔어요. 백 년 전부터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오늘에서야 이 숙원사업을 마무리 짓습니다.
말대가리
말대가리를 한 오십 개쯤 그렸나 봐요. 내년이 붉은말의 해라서 곧 있을 새해 대붓 퍼포먼스에 그려 넣을 예정이거든요. 그린다기보다는 한 획으로 말대가리를 표현해야 해서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해보려고요.
예전의 제가 '말의 해라고 굳이 말을 그려 넣을 필요가 있냐'는 사람이었다면 요즘은 '좀 그려 넣으면 어때'의 흐름에 있기에 2026년의 2가 말대가리로 변모할 예정이고요, 6은 말꼬리로 휘리릭 갈길 생각입니다. 이쯤 되면 짐작하시겠지만 02는 무난하게 몸통을 맡기로 했어요.
이제 한 달 남았으니까 말대가리 한 천 개쯤 그리다 보면 행사날 우발적이고 자연스러운 말대가리가 나오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하는 가운데 오십 개째 그리는 순간 점점 말대가리가 미꾸라지를 닮아가고 있음을 감지했어요. 매몰이 시작된 것이죠. 살포시 붓을 내려놓고 달리러 나갔습니다.
실내에서 정적인 작업을 하다가 밖에 나가서 해를 온몸으로 맞으니 두 발에 절로 시동이 부릉부릉- 그래도 오버하면 안 돼 처음엔 살살 달려야지 하면서 설설설 가다 보니 글씨 쓰느라 잠자코 있던 생각들이 여기저기서 두더지게임하듯 솟아납니다 (달리기 할 때 나오는 두더지들은 천진난만, 고단한 하루 끝의 두더지는 리를빗 다크함)
그중 천진난만한 두더지가 마이크를 잡더니 아니 세상에 나는 글씨를 쓰는 게 재밌을 뿐 아니라 일정량 글씨를 써 줘야 생명이 원활히 굴러가는 사람인데(https://brunch.co.kr/@acci-graphy/73) 이렇게 자꾸 글씨 쓸 기회가 주어진다는 게 너무나 감사하고 사람들 앞에서 글씨 쓰면 나는 신나고 보는 사람도 신나고 이게 내 직업이라니 뭐 이런 게 다 있나 싶은 거야
물론
노력했지
스트레스 마이 받았지
그치만 극뽁했다 이말이야
어떻게?
그냥 극복할라고 노력했지
극복 안 하고 있는 게 더 괴로우니까
극복하믄 극락이고
자꾸자꾸 극복하고 극락가고
재밌잖아
재밌으면 잘하게 되고
잘하면 더 재밌어지고
그런 순환의 앞고리든 뒷고리든 얻어걸리면
상팔자 예약이다 이거야
상팔자는
내가 원하는 삶을 향한 노력이
긴 호흡으로 꾸준히 이루어지는 삶
그래서 저는 이 밍숭맹숭 아직 니맛도 내맛도 없는
오늘자 말대가리를 굳이 브런치에 올려봅니다.
자꾸 하다 보면 내 안의 진정한 말대가리가
어느 날 툭하고 나오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