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Ep.1
나의 우울과 불안을 기록하기로 했다
나의 우울과 불안을 기록하기로 했다
감정의 씨앗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최소한으로, 나의 가치는 최대한으로.' 사회가 제시한 틀에 잘 맞추어 자란다면 멋진 어른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나는 모두를 예쁘고 멋진 틀 안에서 사회적 기계로 열심히 찍어내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고 사회로 내던져졌다. 돌아보니 나는 틀에 박힌 어른이 되어있었다. 10대의 내가 배웠던 것처럼 '내가 느끼는 감정은 최소한으로, 나의 가치는 최대한으로'를 되내었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결국 나는 내가 나를 컨트롤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나조차도 모르는 사이에 억눌렸던 감정들을 좋지 않은 방향으로 표출하기 시작했다. 건강하다고 생각했던 내가 이유 없이 몸이 아팠다. 사람이 많은 장소를 피하고, 정체를 알 수 없는 공포에 시달리며 눈물을 삼켰다. 잘 감추어 두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의 씨앗이, 결국에는 싹을 틔워낸 것이었다.
애초에 감정이라는 것은 내가 '사람'이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는 지난 20년 간 이 감정을 드러내서는 안 된다고 학습해왔다. 내가 내 감정을 드러내면 잘 굴러가던 상황이 진창에 빠지고, 원치 않는 싸움이 발생해 평화가 깨졌기 때문이다. 내가 지더라도 모두가 행복할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행복한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감정의 씨앗이 자리를 잡은 채 싹을 틔우고, 가지를 틔워, 뽑아낼 수 없을 정도까지 자라나 버린 것을 올려다보며, 나는 이 나무를 더 이상 감출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무는 더 넓은 곳을 향해 자라길 원했고 그 증상들이 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몸의 이상 징후들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 증상들을 하나씩 겪으며 나는 나의 내부가 곪아 썩어버렸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愛(애) 그리고 憎(증)
하지만 나의 마음이 곪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해서 바뀌는 것은 없었다. 오히려 사회는 '모두가 그렇게 살아간다'라는 말로 마음이 곪아버린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런 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나는 또다시 비난의 화살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로 돌리기 시작했다. 내 감정에 충실하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 잘 해왔던 것처럼 내가 나 자신을 잘 모른 척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나는 내가 느끼는 모든 증상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받아들이기를 반복할수록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것이 느껴졌다. 결국 나는 제정신으로 사회에 발을 붙일 자신이 사라졌고, 이런 나라면 사회에서 사라지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나는 나를 가장 사랑하며, 동시에 나를 가장 증오했다. 사랑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아이러니한 관계를 어디서부터 풀어내야 할지 알 수 없다면 끊어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으로 나의 결말을 스스로 내려고 다짐했던 그때였다.
"병원에 가보는 건 어때요?"
나는 지인으로부터 정신과를 내원해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사실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처음으로 느꼈던 감정은 '의아'였다. 나는 사회가 원하는 틀에 맞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모두를 충족시킬 수 없는 결함품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폐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결함을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었다. 내가 나를 드러내지 않는 것은 지난 20년 간 스스로 학습해왔기에 당연한 것이었는데,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해 줄 수단이 생긴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결말을 스스로 만들어내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볼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정신건강의학과 내원을 결심했다.
감정, 르포르타주
2022년 3월을 시작으로 나는 꾸준히 정신건강의학과에 내원하고 있다. 2주에 한 번, 빠르면 1주에 한 번씩 선생님을 만나며 나를 가두고 있던 틀을 하나씩 깨는 연습을 하고 있다. 처음으로 소리 내어 울어보기도 하고,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을 아니라고 말해보기도 하고, 사회가 아닌 '나'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6개월의 시간을 선생님과 함께 보내며, 나는 내 결말이 다르게 쓰일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지난 상담에서 나는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질문을 받았다.
"15살의 본인을 만나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해주고 싶나요?"
나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없었다. 6개월 간의 상담만으로는 아직 과거의 나를 직시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원을 나오는 길, 그 질문 하나를 곱씹으며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분명 세상에는 15살의 나와 같은 사람들이 수두룩 할 텐데. 내가 그랬던 것처럼, 분명 이 일련의 과정이 쉽지만은 않지만 적어도 도전해보기엔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면 좋을 텐데. 그것이 내 감정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첫 번째 이유다.
6개월 간의 나는 분명 성장했다. 처음 내원했을 당시에만 해도 나는 의사가 하는 모든 질문에 로봇처럼 수동적으로 대답했었지만, 적어도 6개월 뒤의 나는 내 감정을 느끼고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타인이 보기엔 미미한 변화일 수 있지만 나에게는 이 미미한 변화가 기적처럼 느껴진다. 나는 작은 물결들이 결국 바다의 높은 파도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결말은 아직 알 수 없지만 그 파도의 순간순간들을 기록하는 것은 아직 제대로 마주하지 못한 '15살의 나'를 바라보려 노력하는 나와 같은 사람들, 그리고 결국 과거의 나를 마주하게 될 나 자신에게도 분명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내 감정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두 번째 이유다.
내원을 결심한 기점으로부터 현재까지는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앞으로 마주하게 될 시간은 그보다 더 길고 깊은 시간들이 될 것이다. 내가 6개월 전의 나를 되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이 있듯이, 미래의 나도 분명 지금 이 시간을 되돌아보며 느끼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타인이 보기엔 아무것도 아닌 것들. 하지만 나만이 느끼는 사소한 변화, 작은 투쟁의 과정들의 나열은 결국 내가 '15살의 나'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감정을 기록하기로 결심한 마지막 이유다.
친애하는 내 감정의 파도에게
나는 완성되지 않은 사람이다. 여전히 결함으로 삐걱거리는 로봇에 가깝다. 하지만 수많은 파도가 해변의 아름다운 모래결과 둥근돌을 만들어내듯, 내 감정의 파도도 결국에는 내가 알지 못했던 아름다운 나 자신을 깨닫게 해주는 결정적 요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밀려오는 이 감정을 '친애'하고자 한다. 결코 사랑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련의 과정들을 사랑하려 노력하는 시간의 기록은 분명 충분한 가치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