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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창 May 09. 2023

외갓집 식구들

단편소설


<외갓집 식구들>


 어쩌면 저렇게 다들 자기 걱정을 먼저 하는 걸까? 추석명절을 맞아 생에 최초로 찾은 서산 외갓집 에서의 마지막 날, 외갓집 뒷산 너머에 살고 있는 엄마의 당고모가 간밤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갑자기 죽었다는데도, 외갓집 식구들은 슬퍼 하기는커녕 말만 안 했지 하나같이 귀찮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큰외삼촌과 엄마, 막내외삼촌은 명절 끝자락에 돌아가신 당고모할머니의 장례와 매장 절차에 관해 능숙하게 곤란해하고 있었다.


 “야 미영이 하고 상일이가 먼저 당고모네 가서 거시기해라, 저거는 내가 이장이랑 해서 다 말해뒀으니까 문제없을겨, 미자는 냘 저녁에나 온댜.”   

큰외삼촌이 엄마와 막내 외삼촌에게 ‘거시기’와 ‘저거’를 시켰다. 아마도 대충 그 집 자식들 대신 먼저 장의사를 부르고 마을 청년회와 부녀회를 소집해서 천막을 치고 솥을 걸어 국을 끓이라는 주문이었을 것이다.


 “형님 나는 옷이 이래 가지고 되것남?”

막내외삼촌이 합기도도장 트레이닝복을 쑥스러운 듯 매만지며 말했다. 당진에서 합기도도장을 운영하는 막내 외삼촌은 그 트레이닝복이 명함이자 예복이었을 것인데, 상복은 될 수 없었나 보다.


 “야 인마 차에 양복도 없는겨? 처가에도 그 꼴로 가려고?”

전화기 옆에 앉아있던 큰외삼촌이 못마땅하다는 듯 멜빵을 튕기며 말했다.


 “왜 또 그랴, 이게 다 영업이여.”

막내외삼촌은 앉은 자세에서 순식간에 몸을 일으키더니, 오른쪽 허벅다리를 쭉 뻗어 샛노란 자수를 보이며 말했다.


 “으이구 이......”

큰외삼촌은 먼지라도 날려 보내는 듯 손을 몇 번 휘젓더니 몸을 돌려 앉은 채로 자개장롱을 열어 옷을 골랐다.


 작은 외삼촌은 큰외삼촌이 건네준 품이 크고 팔은 짧은 양복상의를 입으면서 군소리 몇 마디를 늘어놓고 먼저 집을 나섰다. 막내외숙모는 별안간 벌어진 시댁어른 초상에 어린 사촌동생을 포대기에 싸서 등에 업고 큰 외숙모와 함께 막 명절음식을 갈무리한 부엌에서 장례음식을 만들기 시작했다. 큰 외숙모와 막내외숙모는 입 대신 칼질 소리로 대화하는 듯했다.


 “선숙아 너 먼저 인천 올라갈래?”

엄마는 어디서 났는지 모를 검은색 나일론 한복을 입고 있던 옷 위에 겹쳐 입으며 내게 말했다. 혼자 인천으로 가봐야 하기 싫은 체력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혼자 가라는 말은 엄마의 친구인 정현이 아줌마네 집에서 지내야 한다는 말인데, 아줌마는 엄마 앞에서나 웃지 나와 있을 때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냥 남겠다며 고개를 저었다.


 사촌언니와 나는 어른들이 채비를 하는 동안 자전거를 끌고 집 바로 뒤에 있는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갔다. 두 해 전 언니가 다닐 적만 해도 전교생 오백 명이 넘었다던 학교는 이제 겨우 그 절반을 넘기는 정도라고 했다. 내가 다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이천 명이 넘었고, 저학년 아이들은 교실이 부족해서 오전에는 1반부터 4반이, 오후에는 5반부터 8반이 수업을 하는 오후반이라는 것도 있었는데, 언니가 다니던 학교와 내가 다니고 있는 학교의 크기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나는 커튼이 쳐진 그 교실 안을 상상해 봤다. 간격은 띄엄띄엄 벌려 앉아서 아이들의 숨소리는 멀게 들리고, 해가 바뀌어도 절반 가까이가 같은 교실을 계속 쓰는 편안한 풍경. 운동장도 같은 흙바닥이었지만 이곳의 점심시간에는 모래바람이 일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그 운동장에서 번갈아가며 자전거의 앞과 뒤에 앉아 페달을 구르고 서로의 등을 감싸 안았다.


 “언니, 당고모할머니는 몇 살이야?”

나는 페달을 밟으며 등 뒤에 매달린 언니에게 물었다. 언니는 별안간 생긴 두 살 터울 사촌동생이 사랑스러웠는지 사흘 내내 틈만 나면 나를 끌어안았는데, 나도 그런 포옹이 좋았다. 다만 그때는 자전거를 타느라 땀이 나고 있었던 터라, 내 땀 냄새 때문에 언니가 나를 싫어할까 봐 잠시 걱정했다.    

 “글쎄? 나 중학교 가기 전에도 나이는 많았는데...... 아마 한 예순 살쯤 되지 않았을까?”

사촌언니는 예쁘장한 얼굴에 총기 있는 눈빛과는 달리, 어딘지 약간 맹한 구석이 있었다. 당고모할머니가 아직 살아있었던 바로 그제만 하더라도 함께 곶감을 먹으며 내년 칠순잔치에 대한 대화를 나눴었는데 말이다.


 “언니, 언니 자식들도 내가 죽으면 저럴까?”

운동장 세 바퀴를 다 돌아 언니와 자리를 교대하려고 자전거를 멈춰 세우면서 말했다.

 “뭐가? 초상?”

언니가 목덜미에 흐르는 땀을 티셔츠로 닦아대며 고요하게 말했다. 어째선지 ‘초상’이라고 말할 때만 낮고 조용한 어투로. 언니는 자전거 스탠드를 세워두고 잠시 맹한 표정으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그런가? 촌수가......  엄마 아빠의 사촌...... 그러지 않을까?”

일반적이지 않았다. 사촌의 장례식에 가는 사람은 많이 봤어도 사촌의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 사촌 간도 그런데, 사촌의 자식들이 대신 장례를 치르는 것은 더더욱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다.

 “근데 언니, 당고모 할머니는 왜 자식들이 없어?”

사실 그게 가장 궁금했다. 자식이 없지 않고서야 장례를 치를 사람이 없다는 것이 말이 안 됐으므로.

 “없기는, 서울 사는 딸이 있어. 아들도 둘이나 있었는데, 나 돌 지났을 때 죽었어.”

언니는 또 ‘죽었어’라는 단어를 말할 때만 조용히 말했다. 언니가 페달을 밟았다. 언니의 등에도 땀이 흘러 얇은 티셔츠가 땀에 젖기 시작했다. 언니는 땀을 내고 말리기를 반복하며 계속해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바람 없는 운동장에서 우리는 내달리며 바람을 느꼈다. 언니는 공기를 가쁜 숨을 내뱉으며 당고모할머니의 두 아들과 남편, 내 외할아버지와 둘째 외삼촌이 모두 한날한시에 죽은 일을 조용히 말했다. 여행을 떠났다가 함께 돌아가셨다고 했다. 언니는 ‘죽었어’와 ‘돌아가셨어’를 섞어서 말했는데, 숨을 헉헉 거리면서도 그 두 단어를 말할 때면 다시 목소리가 작아졌다.


 “교통사고 같은 거였어?”

내가 물었다. 여행이 죽음으로 이어지는 것은 교통사고가 일반적이었으므로.

 “아니, 배가 바다에 가라앉았어.”

배를 타고 나갔다가 죽는 것 또한 내가 살던 동네에서도 흔하지는 않지만 종종 죽음의 이유가 되기도 했기에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언니는 페달을 밟다가 멈춰 서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언니, 왜?”

나는 언니가 까치발로 겨우 세워둔 자전거 뒷자리에 앉아, 균형을 잡느라 몸을 흔들었다.

 “선숙아, 너희 아빠는 교통사교였어?”

언니가‘교통사고’라는 단어를 또박또박 느리게 말했다.

 “글쎄, 차 안에 있었으니까 교통사고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아빠는 차 안에서 발견됐다. 그건 사실이었으니 달리 할 말이 없었다.

 “근데, 바다에 빠진 거잖아.”

언니는 또 ‘바다’와 ‘빠진’이라는 낱말을 마치 입술로만 말하는 듯 작게 말했다.

 “글쎄...... 경찰아저씨가 나한테 그랬어, 도로 끝을 못 봐서 그렇게 된 것 같다고.”

벌써 1년이 넘었지만 그 말을 나는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새벽녘 한통의 전화를 받고 달려간 경찰서에서 젊은 경찰관이 내게 따듯한 율무차를 건네며 했던 말.

 “그래......”

언니는 다시 흙바닥을 박차고 안장에서 엉덩이를 들어 페달을 밟았다.    



*


 “선숙아, 너는 큰삼촌 가게 문 닫으면 언니랑 같이 삼촌 차 타고 와. 알았지?”

엄마는 막내외삼촌의 노란색 합기도 봉고차를 타고 먼저 산 너머로 향했다. 한바탕 자전거를 타고 왔더니 갈증과 허기가 밀려든 탓에 언니와 나는 엄마와 막내삼촌에게 고작 손 한 번을 흔들고는, 곧바로 부엌으로 들어갔다.


 “뭐가 예쁘다고 대신 장례 준비를 한댜, 작은 도련님도 그렇고 아버님도 다 잡아먹은 집구석이 뭐가 예쁘다고......”

큰 외숙모가 말라서 아무렇게나 말려있는 가오리를 방망이로 두드리며 말했다. 두드린다는 표현보다는 팬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퍽 퍽 하는 소리가 났다.


 “고정하셔유 형님, 어! 선숙아 고모, 아니 엄마 봤어? 방금 나가셨는데.”

막내외숙모가 부엌으로 들어서던 나와 언니를 보고는 엄한 간장통을 열었다 닫으며 말했다.

 “네 인사했어요. 엄마, 우리 식혜 마셔도 돼?”

사촌언니가 큰 외숙모의 허리를 끌어안고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  

 “알아서 꺼냐. 떡이랑 유과도 챙겨서 선숙이랑 건너 방에 가있어. 이따가 밤에 당고모 댁에 갈 거니까.”

큰 외숙모는 그렇게 말하고는 엉덩이를 튕겨 언니를 밀어내고 방망이질을 계속했다.

 “엄마, 밥 먹고 갈 겨?”

언니는 냉장고를 뒤져 간식을 챙기면서도 저녁걱정을 하고 있었다.

 “그거나 먹어 지지배야. 저녁밥은 언넝 산 너머 가서 먹어야지.”

몽둥이찜질을 당하고 있던 마른가오리는 평평해지는가 싶더니 점점 부풀어갔다.


 사촌언니는 두해 전 대학에 진학한 사촌오빠의 방을 물려받아 쓰고 있었다. 방 안에 대부분은 오빠가 쓰던 물건들을 물려받아 쓰고 있어서 사내 방에 가까웠지만, 플라스틱 옷장 문에 걸린 치마교복과 선반 위에 반듯하게 정리된 순정만화 몇 권이 겨우 여자아이 방이라는 것을 알리는 그런 방. 자기 물건이 적고 취향이 채워지지 않은 그런 방일지라도 자기 방이 있다는 것이 나는 부러웠다. 벽에 걸린 사진 속 태권도 도복을 입고 있는 앳된 얼굴이 언니와 닮아서 처음에는 언니라고 생각했는데, 허리춤에 동여맨 띠에 수 놓인 이름이 달랐다. 나는 언니의 방만큼이나 언니에게 오빠가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오빠야?”

내가 태권소년 사진을 보면서 언니에게 물었다.

 “어, 우리 오빠 초등학교 때.”

 “오빠 있으면 좋아?”

 “좋은 것 같기도 한데 나는 잘 모르지, 혼자였던 적이 없으니까. 가끔 혼나거나 그럴 때는 없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막상 집에 없으니까 가끔 보고 싶어.”

언니는 유리그릇에 담긴 식혜를 빙글빙글 돌리며 말했다. 내가 둘의 삶을 모르듯 언니도 하나의 삶을 모르는 듯했지만, 나는 적어도 둘의 삶이 조금은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혼자는 충분히 경험했으므로, 적어도 나처럼 쓸쓸하지는 않을 거라고, 그렇게 짐작했다.


 “오빠는 왜 안 와?”

 “군대 갔어.”

 “어? 아...... 군대.”

군대를 가야만 하는 삶. 그 또한 나와는 다른 삶이기에 머릿속으로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 갔다는 사촌오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은 태권도장에서 찍은 승단기념사진이 전부였다. 그 소년이 군대에 갔다는 사실이 좀처럼 믿어지지 않았다. 자꾸만 얼룩덜룩한 군복 위에 태권소년의 얼굴이 포개져서 혼자 피식 웃었다.

 외갓집, 정확하게는 큰외삼촌 집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작년 5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하기 직전 우리 아빠가 죽고, 뒤 이어 올봄에 외할머니가 죽고 난 뒤에야, 나와 엄마는 외갓집 식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선숙아.”

 “어? 왜 언니?”

 “아빠 죽었을 때 어땠어?”

 “어......  슬프고...... 어...... 잠자는 거 불편하고...... 여러 가지로 힘들었지.”

 “그래? 나도 슬플 것 같은데, 할머니 죽었을 때도 많이 슬펐거든, 근데 어른들은 별로 슬프지 않은 것 같아. 오늘도 봐, 당고모할머니 죽었다는데 우는 사람이 하나도 없잖아.”

 “우리 아빠 장례식 때도 그랬어.”

 “우는 사람이 없었어?”

 “나랑 엄마는 울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울지 않았어.” “우리 엄마랑 아빠도?”

 “외삼촌이랑 외숙모는 나중에 버스에서만 봐서 잘 모르겠어. 화장터 가는 버스에만 같이 탔었거든.”

 “작은아버지도?”

 “응.”

 “나는 너랑 고모 얼굴도 몰랐지만 엄청 슬퍼서 혼자 집에서 울었는데.”

나는 언니의 그 말이 진짜라고 믿었다. 마냥 믿고 싶을 만큼 따듯한 말. 언니는 말뿐만이 아니라는 듯 눈시울을 붉혔다.

 “고마워 언니, 근데 우리 엄마가 어디서 읽었는데 원래 그런 거래. 남겨진 사람들만 우는 거래, 남겨진 자기 자신이 불쌍해서.”

그 말을 다시 곱씹어보니, 과연 아빠의 장례기간 중 내가 흘린 눈물은 나를 위한 거였다. 아빠가 없이 살아야 하는 나를 위한. 어차피 죽은 아빠는 내 눈물을 보지 못할 테니까.

 “고모는 그런 글을 어디서 읽었댜?”

 “잡지에서 읽었다는데, 외국에 어떤 랍비가 한 말 이래.”

 “랍비?”

 “성직자 같은 거.”

 “성직자?”

 “목사 비슷한 거래.”

언니는 다시 멍해져서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유과 하나를 집어서 내게 건넸다. 언니는 멍한 와중에도 상냥했다.

 “고모부는 좋은 곳에 계실 거야.”

언니가 달콤한 엿기름과 조청을 녹이던 상냥한 입으로 말했다.

“자기 혼자서만?”

나는 달콤한 유과를 입에 넣으며 쓰디쓴 말을 내뱉었다.



*


 카세트테이프 몇 개를 듣고 만화책과 잡지도 여러 권을 봤지만 낮은 더디게 흘러갔다. 방에는 고작 책가방만 한 창문 하나밖에 없었는데, 형광등을 밝히지 않고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아직 밖은 밝았다. 언니는 연신 따분하다는 듯 한숨 섞인 하품을 했다.


 “선숙아, 우리 걸어서 산 너머에 갈래?”

언니가 내게 바짝 몸을 붙여 말했다.

 “가까워?”

 “걸어서 한 40분?”

 “해가 지지 않을까?”

 “후래쉬 하나 가져가지 뭐.”

언니는 공중부양이라도 할 기세로 몸을 일으켜서 식혜를 담았던 유리그릇과 접시를 쟁반에 담아 마루로 나갔다. 나는 카세트 플레이어를 끄고 언니를 따라 방문을 나섰다.


 “아빠! 선숙이랑 걸어서 갈게.”

언니가 맨발로 운동화를 꺾어 신으며 마당에서 철제선반을 조립하던 큰외삼촌의 등 뒤에 소리쳤다.   

 “어딜? 산 너머에?”

 “어, 심심해서.”

 “지지배야 이따가 같이 가지 뭐가 급하다고 그랴!”

큰외삼촌은 마당에서 철로 된 선반을 만들고 있었다. 작은 건강원과 앵글집을 같이 운영하던 큰외삼촌은, 명절이 지나면 문을 열 동네 슈퍼마켓에 납품할 진열대를 오늘까지 마무리 짓고 초상을 치르러 가야 했기에 오후 내내 분주했다.

 “앵글 짜는 거 끝나려면 멀었자녀, 가다가 밤도 좀 줍고, 간다.”

언니는 현관에 걸려있는 손전등을 집어 들고 쏜살같이 문 밖으로 나가서 내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딴 데로 새지 말고 곧장 가야 혀.”

 “알았슈!”

 “선숙아, 언니 잘 따라가라잉.”

 “네, 외삼촌."

큰외삼촌은 입으로는 우리를 걱정하면서도 나사와 합판에서 눈을 떼지는 않았다.


 언니는 날이 훤한데도 손전등을 켜서 골목 곳곳에 성급하게 내려앉은 어둠을 들쑤시며 걸어갔다. 이발소 옆 주유기 두 대가 벽돌건물 안에 설치된 이상한 주유소를 끼고 돌아서니 초등학교와 담을 맞댄 양조장이 있었다. 언니는 양조장에서 얻어온 술지게미를 맛보고 골아떨어졌던 무용담을 늘어놓더니, 술에 취한 듯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양조장 끄트머리에서 이어진 산길로 앞장섰다. 초록색 페인트가 칠해진 차단봉에 ‘외부인 출입금지’라는 푯말이 붙어있었는데, 누구나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문은 쉽게 열렸다. 시멘트로 포장된 2차로 산길은 한가운데 칠해진 주황색 차선 때문에 2차로로 보였지만 4차선이 되고도 남을 정도로 폭이 넓었다. 사실 산길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언덕을 가로지르는 포장도로라고 해야 될 정도로 산은 완만하고 길은 잘 닦여있었다. 인천에 있는 우리 집까지 올라가는 길이 더 산길에 가까울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다만 우리 집으로 오르는 비탈길에는 허물어져가는 연립주택이, 이 길에는 굵고 커다란 밤나무와 붉은 소나무가 들어찬 숲이 있다는 차이가 있었다. 나무들은 어른 몸통보다 굵고 4층 연립주택 보다 높았다. 하늘을 뒤덮은 나뭇잎과 가지들 때문에 길은 푸르게 어두웠다. 그 어두운 시멘트 포장도로를 운동화로 밟을 때마다 얇은 얼음이 갈라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나무들 사이로 튕겨서 되돌아왔다. 가끔 그 소리에 놀란 산짐승들이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산 까치가 푸드덕 거리는 소리에 놀란 내가 바짝 긴장해서 언니의 팔을 잡았다.


 “숲 속에서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언니가 손전등을 제 턱에 붙여 얼굴에 불빛을 쏘며 말했다. 보통이라면 그 거꾸로 생긴 그림자가 얼굴을 기이하거나 웃기게 보이게 할 테지만, 언니는 그 와중에도 예뻤다.

 “음...... 늑대?”

숲이라면 역시 늑대였기에 나는 그렇게 대답했다.

 “에이, 늑대가 왜 나오는겨, 땡!”

언니가 ‘땡’하고 외치자 그 소리에 놀란 산짐승이 숲을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뱀?”

나는 뱀이라는 말만 해도 소름이 끼쳤다.

 “어...... 뱀도 무섭기는 하지, 근데 뱀은 저 건들지 않으면 해코지하지 않아. 땡!”

언니는 뱀에 대한 면역력이라도 있는 듯 보였다.

 “음...... 유령? 귀신?”

 “땡! 땡!”

언니가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연신 ‘땡’하는 소리를 외치자 숲 저편에서 그 땡 소리가 메아리쳤다.

 “뭐야? 뭐가 제일 무서운데?”

나는 대답을 기다리면서도 무서웠기에 언니의 팔을 더 꽉 잡았다.

 “사람, 사람이래. 아무도 없는 숲 속에서 가장 무서운 건 사람이래.”

언니의 말을 듣고 보니 나는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숲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듬성듬성한 나무들 사이에 있는 넓고 밝은 터마다 자리한 무덤과 석상들이었다. 거의 자동차만 한 거북이 모양 석상 위에 올려진 커다란 비석과 갑옷을 입고 칼과 창으로 무장한 채 무덤을 지키는 양과 토끼석상, 그 주변으로 갓난아이 머리카락 같은 무덤 위에 풀들이 흔들리는 모습. 죽은 자들을 지키고 있는 그 모습들은 어쩌면 숲에서 맞닥뜨릴지도 모를 죽거나 산 사람의 모습보다 더 무섭게 느껴졌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무덤이 즐비한 이 숲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내가 손을 너무 꽉 쥐어서였을까? 언니는 내 공포감을 덜기 위해 내 어깨를 보듬었다.

 “저기 무덤들 다 우리 조상님들이야.”

언니가 아무렇게나 손을 뻗어 손전등을 비추는 곳마다 무덤이 있었다.

 “조상님?”

나는 그 말을 실감할 수 없었다. 아빠가 살아있을 적에는 외갓집에 올 수 없었고 아빠는 외톨이였으므로, 내게 조상이란 명절에 차례 상 위에 올려진 위폐가 전부였다. 아빠도 무덤이 아니라 대리석 아파트 같은 납골당에 있었으므로 나는 무덤과 조상이라는 단어를 연결 짓는 게 어색했다.

 “저기 보이는 무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무덤이래, 고조할아버지.”

나는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기에, 그 할아버지에게 할아버지가 있었다는 사실이 언니가 말한 조상님이라는 단어만큼이나 멀게 느껴졌다.

 “말 그대로 조상님이네......”

내가 말했다. 언니는 내 손을 꼭 잡고 계속 앞으로 걸었다. 걸을 때마다 숲 속에서 다른 무덤들이 겹겹이 쌓여있는 부활절 달걀 포장(원색의 셀로판포장지)이 벗겨지듯 드러났다.

 “저기는 할아버지랑 할머니.”

언니가 걸음을 멈추고 손전등 불빛으로 무덤가를 밝혔다. 아직 때가 덜 낀 묘비 앞에는 돌로 만든 꽃병에 조화가 끼워져 있었다.

 “근데 언니, 왜 무덤이 하나야?”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무덤은 낮은 담이 둘러져 있었는데, 봉긋하게 솟은 무덤은 하나뿐이었다.

 “할머니는 작년에 할아버지 무덤 옆에 작게 구멍을 파서 함께 묻었어. 할머니는 화장했거든.”

죽어서 남편과 한 무덤에 묻히는 기분은 어떤 것일까? 나는 나만의 무덤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아빠처럼 납골당에 들어간대도 내 납골당. 아직 내 방도 없었지만, 죽는다면 적어도 죽어서라도 내 방을 갖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니 왼쪽 잔디만 조금 다르게 보였다. 그 부분만 숱이 조금 빠진 머리카락 같이.

 “너는 할머니 안 좋아하지?”

언니가 물었다.

 “응.”

언니는 내가 망설임 없이 대답하자 가던 걸음을 멈추고 조금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코를 찡긋 움직였다.  

 “할머니는 사실 좋은 사람이었어, 너랑 고모걱정 많이 했었는데......”

 “그래? 사실 나는 할머니 한 번도 보지 못해서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 잘 몰라. 하지만 아빠랑 엄마 결혼 반대했잖아. 아빠 죽고 난 후에도 엄마랑 나를 찾지도 않았고.”

나는 서운한 마음에 빠르고 날카롭게 말해버렸다.

 “그래도...... 나한테는 가끔 너랑 고모 보고 싶다고 말했었어. 작년에 돌아가시기 조금 전에 병원에서도......”

언니가 내 어깨를 토닥거리며 말했다.

 “직접 말하셨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외할머니가 묻혀있다는 그 작은 구멍이 있던 곳을 한 번 더 바라봤다. 비석을 보니 외할머니는 전주 이씨 였다. 나는 아직 한자 7급 정도 수준이어서 그 아래 적힌 한문의 음 훈은 알 수 없었다.

 “할머니는 내 이름 알았을까?”

언니는 대답 대신 나를 꼭 안았다. 아무도 없는 숲길에서 부둥켜안은 우리의 옆 어딘가에서 산새들이 울었다. 시멘트 포장도로 위로 밤송이 몇 개가 떨어져서 굴렀다.     

 “선숙아, 밤 주워봤어?”

밤 한 송이가 시멘트 길 위에 떨어져 벌어진 틈 사이로 아직 밝은 속살을 내보였다.

 “이거 그냥 주워가도 돼?”

숲 속에 있다고 해서 주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으므로 나는 괜히 걱정이 앞섰다.

 “따지만 않으면 문제없어, 그리고 여기 산 거의 다 집안 땅 이래.”

 “집안?”

 “그래서 무덤도 다 여기에 있잖아. 선산이야. 원래는 무덤이 있는 곳만 선산이라고 부른 댔는데, 여기저기 다 김 씨 무덤이니까, 그냥 여기가 다 우리 선산이래.”

언니는 슬리퍼 바닥으로 밤송이를 밟아 알밤을 꺼내며 말했다.

 “그럼 우리도 죽으면 여기에 묻혀?”

나는 언니를 따라 운동화 바닥으로 밤을 까면서 물었다.

 “아닐걸? 할머니처럼 남편 옆에 묻히지 않을까?”

나는 아직 남편도 없었는데, 언니의 말에 밤송이를 까던 발에 가시라도 찔린 듯 얼굴이 찌푸려졌다. 언니는 밤을 줍다가 내 얼굴을 보고는 같이 얼굴을 찌푸렸다. 언니는 그 찌푸린 얼굴마저도 예뻤다.



*


 나는 학교에 가지 않는 것이 좋았지만, 어른들은 일터에 나가지 않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외갓집 식구들이 모두 엄마의 당고모, 그러니까 내 외할아버지의 사촌누이의 장례식을 치르는 이틀 동안 정작 당고모할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그 집 딸은 발인을 하루 앞둔 오늘 까지도 도착하지 않았다. 공휴일이 끝난 오늘, 이른 아침부터 큰외삼촌은 추석연휴 동안 만든 진열장을 납품하느라 가게에 갔고, 언니는 학교에 등교했다. 막내외삼촌은 합기도 도장 학부형들에게 오늘과 내일 문을 열지 못한다는 공지전화를 돌리느라 병풍 뒤에서 백 년은 더 돼 보이는 회전다이얼식 전화기를 붙잡고 벌써 한 시간 넘게 통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문상객이 도착할 때마다 막내외삼촌을 부르러 그 병풍을 열어젖혔다. 나는 막내 외숙모와 아기를 보며 안방에서 아침방송을 틀어놓고 소고기뭇국에 밥을 말아 아침식사를 먹고 있었다.

 “외숙모, 사촌 자식들이 장례를 해주는 게, 어 그러니까...... 이거 원래 맞는 거예요?”

나는 장미꽃이 그려져 있는 국그릇에서 소고기를 건져 올리며, 한 손에는 숟가락을 한 손에는 아기를 부여잡은 막내외숙모에게 물었다. 막내외숙모는 답을 찾는지 한참을 국물만 남은 그릇 속을 휘젓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음...... 가족이니까? 조금 먼 가족이지만, 선숙이 엄마랑 돌아가신 당고모는 가족이니까.”

막내외숙모는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쓸어 넘기며 졸린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내가 원하던 대답은 아니었다. 하물며 가족이라는 단어는 나에게 그다지 와닿지도 않았다. 불과 몇 달 전, 외할머니가 죽기 전까지 세상에 내 가족은 엄마뿐이었다. 아빠가 죽었을 때도 외갓집 식구들은 문상을 오지 않았다. 화장터에서 아파트 같은 그 납골당에 가던 버스, 그제야 도착한 큰외삼촌과 막내외삼촌을 처음 본건 그 버스 안이었다. 엄마와 남매지간이라는 사실도 나중에 집에 도착한 후에 내가 엄마에게 묻지 않았다면 몰랐을 터였다. 여동생의 남편, 누나의 남편, 딸의 남편, 아빠의 장례식에 외할머니와 삼촌들은 오지 않았다. 그런 어른들이 외할아버지의 형제도 아니고 사촌형제의 장례 치르는 모습은 나에게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일이었다.

 당고모할머니가 살아서 잠을 자고 티브이를 보던 안방 미닫이 문 위에는 커다란 액자 속에 작은 사진들 여러 개가 들어차 있었다. 흑백결혼사진과 나만한 아이들의 사진, 그 아이들이 자라난 후 찍은 컬러 사진들이 함께 있었는데, 누군가의 환갑 기념사진,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과일과 한과 사이로 집에서 봤던 어린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그 옆에는 엄마와 닮은 어린 외삼촌들의 모습이 있었는데, 둘이 아닌 셋이었다. 젊은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당고모할머니와 콧대가 날카로운 남자의 사진, 그 둘을 닮은 아이 셋이 엄마와 외삼촌들과 대칭을 이루듯 잔칫상 가득한 과일과 음식들 사이에 서있었다.

 “당고모할머니 자식들이에요?”

나는 사진을 가리키며 막내외숙모에게 물었다.

 “어, 증조할아버지 환갑잔치 사진이랴.”

막내외숙모는 사진을 보지도 않고 밥상을 정리하며 대답했다.

“그럼 오고 있다는 딸 말고 옆에 있는 아들 둘은 왜 안 와요?”

나는 어째서 사촌의 자식들인 엄마와 외삼촌들이 이 초상을 치르고 있는지 궁금했기에 계속해서 질문을 던졌다. 막내외숙모는 교자상을 들다가 말고 나를 향해 작게 미소 짓더니 치마를 곱게 모아 자리에 앉아 말했다.

 “선숙아, 니 삼촌들은 원래 셋이었거든.”

 “셋이요? 그럼 여기 큰 외삼촌 옆에?”

내가 손가락으로 내 또래의 까까머리 소년을 가리키자 막내외숙모는 고개를 끄덕였다.

 “작은 아주버님, 그러니까 선숙이 작은 외삼촌이랑 당고모 아들 둘, 그리고 외할아버지랑 당고모부 모두 같은 날 돌아가셨댜.”

 “왜요? 배 때문에?”

나는 언니에게 들었던 배사고가 떠올랐다.

 “외할아버지랑 당고모네 식구들은 가차웁게 살기도 했지만 유일한 가족들이었댜. 선숙이 6.25 전쟁 알지? 전쟁 때 다른 형제들과 사촌들은 다 돌아가셨는데, 선숙이 외할아버지랑, 음, 그러니까 선숙이 외증조할아버지, 외할아버지, 당고모 이렇게만 살아남아서 남매처럼 가깝게 지냈댜.”

 “티브이에서 그런 드라마 본 것 같아요.”

아빠가 살아있을 때 밤마다 보던 드라마에는 대충 그런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전쟁, 이산가족, 가난, 대가족. 뭐가 재밌는지 아빠는 매일 밤 그런 구질구질한 드라마를 틀어놨었다.

 “그래 티브이드라마처럼. 선숙이 태어나기 전에 당고모네 식구들이랑 우리 집 식구들이랑 같이 섬으로 여행을 가다가 그랬댜. 외할머니랑 당고모, 큰 외삼촌은 일 마치고 가느라고 밤에 출발하는 배를 타기로 했고. 선숙이 엄마랑 막내외삼촌, 당고모 딸은 학교 때문에 대전에 계셨었거든, 그래서 그때 그 배에 탔던 사람들만 돌아가셔서, 그래서 그랴. 당고모는 아들이 없고, 삼촌들은 당고모가 친 고모 같고...... 음 또......”

막내외숙모의 말을 듣고 있자니 큰외삼촌이 왜 이 장례를 치르며 울지도 않았는지, 엄마랑 막내외삼촌은 왜 또 군소리 한마디 없이 상복을 입었는지 조금 알 것도 같았다.  


 점심시간이 다가오자 입학식 날 처음 입은 커다란 교복처럼 맞지도 않는 양복을 입고 이상한 단어가 쓰여 있는 모자를 쓴 노인 한 무더기가 경운기와 오토바이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왔다. 마당에 자리한 노인들을 위해 나는 엄마와 막내외숙모를 도와 음식과 술을 날랐다. 일을 마치고 온 큰외삼촌이 요리사나 쓸 것 같은 커다란 모자를 쓰고 커다란 장대지팡이를 손에 든 채 마루에서 노인들을 맞았다.

 “야가 미영이 딸인가벼? 똑 닮았네.”

‘마그마’라고 쓰인 모자를 쓰고 있는 노인이 머리고기와 새우젓을 내려놓던 나를 보며 말했다. 야외부엌 가마솥에서 소고기뭇국을 퍼 담던 엄마가 ‘마그마’ 모자를 쓴 노인에게 인사하며 나를 소개했다.  

 “네 맞아요, 선숙아 인사드려 엄마친구 아버지야.”

나는 목은 숙이고 머리는 올린 채 노인들을 보며 인사했다.

 “그려? 정훈이 딸이구먼, 미영아 정훈이는? 같이 안 왔남?”

‘마그마’ 노인 옆에서 ‘고추왕’이라고 쓰인 모자를 쓴 노인이 말했다. 엄마는 대답대신 ‘고추왕’ 노인의 빈 종이컵에 막걸리를 가득 부었다.

 노인들은 엄마와 아빠를 잘 알고 있는 듯했지만, 아빠의 죽음은 모르는 것 같았다. 12년 동안의 시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노인들은 한동안 엄마에게 이런저런 말을 건넸다. ‘싹쓸이’라고 쓰여 있는 모자를 쓴 눈가가 붉은 노인이 나를 불러서 꼬깃꼬깃한 오천 원 권 지폐를 손에 쥐여 줬다. ‘풍농’이라고 쓰여 있는 밝은 모자에 하늘색 양복을 입은 노인이 뒤이어 붉은색 천 원 권 몇 장을 꺼내 그 위에 얹자, ‘마그마’와 ‘고추왕’ 노인도 주머니를 뒤져 붉은색과 푸른색 지폐 몇 장을 포갰다.  

 “그려, 미영이 딸이 엄마 닮아서 똘똘하것네, 공부 열심히 하고 엄마 아빠한테 효도해야혀.”

‘싹쓸이’ 노인도 아빠의 죽음은 모르는 듯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마른풀과 담배, 막걸리냄새가 진동하는 노인들에게 대충 인사를 하고 엄마 뒤에 숨어 있다가 마루로 돌아갔다. 얼마쯤 지나자 모자를 쓴 노인들은 넷에서 열댓으로 늘어났고, 막걸리와 소주박스는 해가 지기도 전에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막걸리가 동이 날 즈음, 언니가 교복차림으로 막걸리 두 박스를 작은 손수레에 싣고 마당으로 들어왔다.

 “얌마, 왜 혼자와? 니 엄니는?”

큰외삼촌이 손부채질로 땀을 말리던 언니에게 물었다.

 “엄마? 저기 장에 간댔는디?”

 “그려? 뭘 또 더한다고 그랴......”

큰외삼촌은 언니의 말을 듣더니 마루에서 내려와 고무신을 구겨 신고 부엌으로 갔다.  

 “야 미영아, 뭐가 읍써? 뭐 더 사 와야 혀?”

부엌 이곳저곳에 있는 소쿠리 안에 가득한 전과 떡을 들춰보던 큰외삼촌이 엄마에게 물었다.

 “아니요, 내일 상여꾼들 먹일 고기랑 전도 아침에 새언니랑 다 해뒀는데. 뭐 빠뜨렸나?”

엄마는 큰아버지가 들춰댄 소쿠리 위에 달력들을 다시 정렬했다.

 “이 여편네가 뭐가 또 씅질이 나서 해전 오지도 않고 장을 보러 다니고 그런댜......”

 큰외삼촌은 못마땅하다는 듯 한 소리를 내뱉더니, 버섯 전 하나를 집어 물고 모자를 쓴 노인들 틈에 섞여 막걸리를 따르고 받았다.


 노인들은 해가지고 아홉 시가 다 돼서 제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마당에는 당고모할머니 이웃 몇과 갓을 쓴 노인 둘이 남아 천막기둥에 연결한 백열전구 불빛 밑에서 엄마와 내가 차린 음식에 술과 밥을 먹고 있었다.

 담 너머에서 커다란 버스가 쉭 쉭 대는 소리가 들렸다. 병풍 앞에서 꾸벅꾸벅 졸던 막내외삼촌이 버스가 도착하자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고 버스를 타고 온 문상객을 맞이했다.

 “누이, 냅두고 그냥 앉아계셔 알아서 꺼내 먹으면 되니까.”

막내외삼촌은 음식을 준비하려고 몸을 일으키던 엄마와 막내외숙모를 막아섰다. 합기도도장을 차리기 전 다녔다던 공장 사람들이라는데, 거의 백여 명의 남자들이 순식간에 마당에 들어섰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앉힐만한 상과 돗자리가 부족했는데, 그이들은 마치 문상이 직업이라도 되는 양, 타고 온 버스 짐칸에서 상과 깔개, 맥주박스를 꺼내서 마당 한편에 저희들끼리 자리를 잡았다. 마루에 올라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사람은 댓 명 정도였고 나머지 대부분은 저희들이 가져온 캔 맥주와 마른오징어 따위를 씹으며 화투와 카드를 꺼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놀기 시작했다.      


 “어른들 정말 너무하지 않냐?”

언니가 화투 패를 쥐는 시늉을 하면서 말했다.

 “어쩜 저럴 수 있지? 술 마시고 놀음하러 온 사람들 같아. 우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언니의 말이 초가을 밤바람처럼 쓸쓸하게 다가왔다.

 “선숙아.”

언니가 대뜸 부르더니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우리가 울어줄까?”

울어주자는 언니의 표정은 더없이 밝았다.

 “우리가?”

나는 언니의 웃는 낯에 혼란스러워서 되물었다.

 “그래, 우리가 울어주자. 장례식 끝날 때까지 우는 어른이 없으면, 우리가 대신 울어주자.”

언니는 예쁘게 웃으며 울 것을 제안했다. 나는 그 웃음에 저항할 수 없어서 함께 울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죽어서 알아주지도 못할 텐데 울어주는 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었지만, 울어주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역시나 쓸쓸한 일이었기에, 나는 언니의 말에 아빠의 장례식장 풍경이 겹쳐져서 결국 울어주는 수밖에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빠가 죽던 날은 바다도 얼 정도로 추웠다. 아빠는 유빙이 떠내려 오는 부두에서 차디찬 바다에 빠져 죽었다. 아빠에게는 엄마와 나뿐이었고 외갓집 식구들과는 그때까지 왕래가 없었다. 아빠가 죽던 날부터 시작된 폭설로 아빠와 엄마가 일하던 공장에는 비상이 걸려 장례식장을 찾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스노우 체인을 만들던 공장이었기에 그만한 눈에는 다들 스노우 체인을 끼고 올만 하리라 생각했는데, 내가 본 바로는 회사사람은 두 명 밖에 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의 동창생 몇 명과 아랫집 아저씨, 내 담임선생님이 눈길을 뚫고 겨우 장례식장을 찾았는데, 돌아갈 길이 걱정인지 우는 어른은 없었다. 결국 아빠의 관은 장례식장 직원들이 들었다. 엄마는 다른 사람들 몫까지 울기라도 하는 듯 사흘밤낮을 울었는데, 내 눈물은 엄마의 것에 비교한다면 어항 속 금붕어 똥만큼 가벼운 것이었다. 엄마는 무겁고 길게 울었다.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엄마의 눈은 사막처럼 메말라 있었다.

 엄마의 눈물과 아빠를 생각하니 코끝이 저릿했다. 나는 찔끔 배어 나온 눈물을 씻고 달아오른 볼을 식히려고 마당 밖으로 향했다.


 “야이 시절아! 왜 그러는겨! 내일이 발인인데 뭘 또 그렇게 짊어지고 와!”

내가 현관을 향해 걸어갈 때 현관에 걸린 등불에 큰 외숙모 모습이 드러났다. 그 모습을 보던 큰외삼촌이 양손 가득 장바구니를 들고 오는 큰 외숙모를 향해 나무라듯 소리쳤다.

 “내가 왜 시절이여! 전화는 누가 국 끓여 먹었댜? 왜 해전 전화를 안 받는 겨?”

큰 외숙모가 장바구니를 마당에 내려놓고 큰외삼촌 보다 큰 소리로 말했다.  



 큰 외숙모는 낮에 당고모할머니 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고 장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막내외삼촌이 종일 합기도 도장 휴원 안내전화를 돌리느라 전화기가 계속 통화 중이었기에 당고모할머니의 딸이 큰외삼촌 집으로 전화를 했는데, 하루면 도착한다던 당고모할머니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딸은 시댁식구들과의 제주도 여행에서 폭풍우 때문에 여태 발이 묶여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고속 훼린가 뭐는 오늘 출발한다는데......”

큰 외숙모가 그 말을 덧붙이자 큰외삼촌이 단호한 말투로 막아섰다.

 “배는 절대로 안 댜.”

 “안 그랴도 내가 단칼에 배는 안 된다고 했슈. 오일장으로 바꾸자고 그 말도 고모한테 했슈. 상여꾼들이랑 묘지기들 일정 바꾸라고 거시기 해야 하는데 당체 화를 받아야 말이지...... ”

큰 외숙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큰외삼촌은 전화통을 붙잡고 전화를 돌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큰 외숙모와 막내외숙모를 도와 커다란 가마솥에 무와 대파, 쇠고기와 생강을 넣어 국을 끓이고, 휴대용 버너를 꺼내 호박과 두부를 부쳤다. 막내외삼촌은 한동안 침울한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 있다가 벌떡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더니 화투를 치던 무리에 섞여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부엌문 사이로 그 모습을 보던 막내외숙모가 아기를 등에 업고 뛰쳐나가 술잔을 빼앗으려 했지만 막내외삼촌은 막무가내로 술을 들이켰다.

 “왜 또 이래유.”

 “냅둬, 왜 술도 못 마시게 그랴!”

막내외삼촌은 잔뜩 골이 난 아이 같았다.

 “정학이 아부지 왜 또 그런대유, 시방 술 마시면 큰일 치러유. 의사선생이 뭐랬슈!”

막내외숙모의 늘어지는 발음이 꼭 울음소리 같았다.

 “야, 다 절단 났어. 도장 망할 판인데 술도 못 마시게 하는겨!”

막내외삼촌이 숙모의 팔을 뿌리치고 언성을 높이자, 화투와 포커를 치던 남자들이 일어나 막내삼촌을 부여잡고 막아섰다. 남자들에게 둘러싸인 막내외삼촌은 분한 듯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렸다.

 “안 망해유! 냘 아침부터 전화 잘 돌려봐유, 집안 어른 초상을 치르는데 매정하게 딱 끊고 그러겠슈.”

막내외숙모는 나와 얘기할 때와는 달리 발음은 늘어지고 말의 속도는 빨랐다. 소동은 막내외숙모의 눈물과 함께 끝을 맺었다.


 “엄마, 우리도 더 있어야겠지?”

엄마는 내 옆구리를 감싸 안으며 고생스럽겠지만 주말까지 서산에 더 있자고 했다. 나는 학교를 가지 않는 것이 내심 좋았다. 언니는 그런 나를 부러워했다.   



 “으유 시절아. 그러면 처음부터 오일장으로 준비했을 거 아녀.”

그날 밤 큰외삼촌은 당고모할머니의 딸과 통화하는지 수화기에 대고 언성을 높였다가 달래기를 번갈아 하고 있었다.  


 “엄마, 근데 시절이가 뭐야?”

나는 그 단어를 번역할 수 없어서 엄마에게 물었다.

 “좋은 말 아니야.”

엄마는 그 말이 대단한 욕이라도 되는 양 가르쳐주지 않았다. 나중에 언니에게 물어봤더니 바보천치라는 뜻이라고 했다. 나이가 들면 더 심한 욕을 하던데 바보천치라니, 티브이 드라마 속 사랑싸움 하는 주인공들이나 쓸법한 단어 아닌가. 나는 어째선지 그 말이 싱겁고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


 하루 새 기온이 곤두박질쳐서 난방을 해야 했는데 보일러를 켜는 방법을 몰라 밤새 외삼촌들은 번갈아가며 문상객을 맞으며 보일러실을 들락거렸다. 결국 보일러는 못 고치고 새벽에 큰외삼촌이 가게에서 쓰던 등유난로와 전기장판을 가져와서 온 식구들이 안방에 모여 잠을 잤다. 아기가 울어서 나는 중간중간 잠에서 깼는데, 언니와 큰 외숙모는 용케도 새근새근 잠을 잤다. 아이는 슬픔이나 죽음과는 조금도 관계가 없다는 듯 기저귀가 축축하거나 배가 고플 때만 울었다.

 언니는 도시락 통 가득 호박전과 머리고기를 싸서 학교에 갔다. 엄마와 막내외삼촌은 언니가 학교에 간 후부터 마당 한편에 자리를 만들었다. 정오 무렵 돗자리와 양철교자상이 치워진 맨바닥에 용달차에 실려 온 상여가마가 내려졌다. 동네사람 대여섯 명이 상여가마를 보고 운구 행렬에 동참하고자 검은색 저고리를 입고 마당에 들어왔다가 큰외삼촌의 설명을 듣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각목에 합판으로 만든 작은 상여 가마에는 종이로 만든 꽃들이 붙어있었다. 어른들은 새벽이슬에 상여가 젖을까 봐 비닐하우스용 비닐을 풀어서 가마를 감쌌다. 언니가 학교에서 돌아오고 다시 일어나서 학교에 가는 동안 문상객 열댓 명이 향을 피우고 막걸리를 마셨다. 나흘이 지나니 언제까지나 장례가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면 소고기뭇국에 아침을 먹고, 깨어서는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르고 내가 미영이의 딸임을 말해야 하는. 하교 길에 언니가 가져오는 만화책 표지의 숫자가 아니었다면 어제와 오늘을 구분하는 것이 어렵게 느껴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해가 질 무렵, 원래라면 어제 가마를 들어야 했을 상여꾼 몇이 늘어난 장례일정을 놓고 큰외삼촌과 실랑이를 벌였다. 큰외삼촌은 마루 장식장에 있던 인삼주와 만원 자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상여꾼들을 달랬다. 코가 비뚤어지도록 취한 상여꾼들이 돌아간 후 해가 질 무렵까지 한참 동안 문상객들은 오지 않았다. 큰 외숙모와 언니가 건강원에 있는 약재를 정리하고 개와 염소의 먹이를 챙기러 자리를 비우고 막내외삼촌이 아기의 기저귀를 사기 위해 읍내 연쇄점에 나간 사이 나와 엄마, 큰외삼촌이 초상집을 지켰다. 큰외삼촌은 합기도 봉고차가 떠나자마자 수화기를 들어 짜장면과 우동을 주문했다. 부엌 가득한 음식을 놔두고 짜장면을 시킨 사실을 들키면 분명 큰 외숙모에게 혼날 처지였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큰일도 아닌데 큰외삼촌은 마치 커다란 음모를 꾸미는 양 진지하고 초조한 표정으로 배달이 오길 기다렸다. 나흘 동안 줄기차제 먹었던 장례식 음식에 질려있던 엄마와 나는, 큰외삼촌과 공모자가 되어 목이 빠지게 배달을 기다렸다. 사륜구동 트럭 조수석에 실려 온 철가방에서 초록색 그릇이 빠져나와 양은교자상에 올랐다. 우리 셋은 마당 멍석 위에 앉아 짜장을 비비고 우동국물을 들이켰다.

 “엄니가 이 집 우동을 참 잘 잡쉈는데.”

큰외삼촌이 우동국물을 들이마시며 말했다. 우동국물이 몇 방울 양은교자상 위에 후드득 쏟아졌는데 엄마 눈에서도 눈물이 따라 흘렀다. 엄마는 눈물과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짜장면을 먹었다. 엄마는 끝끝내 결혼을 인정하지 않았던 외할머니가 미워서, 눈물이 날 정도로 미워서 운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달래려고 엄마의 등을 계속 토닥였다. 겨우 울음을 그친 엄마는 남은 짜장에 찬밥을 비벼먹었다. 내게도 한입 먹여줬는데 밥알사이에 들어찬 돼지기름 가득한 짜장은 고소하고 달았다. 엄마는 이다음에 엄마가 죽으면 장례식장에서 꼭 짜장밥을 해두라고 얘기했다. 평소 같았다면 엄마가 그런 말을 할 일도, 내가 그런 말을 가만히 받아넘길 일도 없었겠지만, 나는 짜장밥에 우동국물까지 준비하겠다면 너스레를 떨었다. 엄마는 울던 낯으로 웃었다.


 엄마를 도와 짜장면 그릇을 설거지하는데 마당이 소란스러웠다. 엄마와 나는 문상객을 맞으러 쟁반을 챙겨 부엌문을 나섰다.

 “야이 반푼아 진즉 말했으면 거시기를, 어, 다, 저기 했을 거 아녀.”

큰외삼촌이 마당에 선 또래 여인에게 말까지 더듬으며 언성을 높여 핀잔을 늘어놓고 있었다.

 “엄니는 죽었는데 제주도 있다고 혀봐...... 얼마나 그랴...... 낸들 이렇게 될 줄 알았것슈. 미안해 오빠. 고생 많았슈.”

그렇게 말하면서 겸연쩍게 웃고 있는 여인은 안방 문틀 위 액자 속에서 봤던 당고모할머니의 하나 남은 자식이었다. 여행용 가방에 면세점 쇼핑봉투를 들고 있는 남자와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언니 한 명과 오빠 한 명이 여인의 뒤를 따라서 건너 방으로 들어가 불을 켜고 짐을 풀었다. 일행이 온 지 30분 만에 집안에는 온기가 돌았다. 상복으로 갈아입은 여인은 엄마의 손을 잡고 한참 동안 소곤소곤 조용히 대화를 주고받았다.

 “네가 선숙이구나, 예쁘게 잘 컷 구나.  고마워, 힘들었을 텐데, 우리가 많이 늦었지?”

여인은 어수선한 미소를 지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고 하와이에서 만들었다는 초콜릿 상자를 내게 건넸다. 언니와 같이 먹으려 했는데 하나쯤은 괜찮을 것 같았다. 나는 마당 구석에서 초콜릿 하나를 빼내 입에 물었다. 혀로 초콜릿으로 녹여보니 안에 오도독하고 씹히는 고소한 맛의 견과류가 들어 있었다. 견과류가 입 안에서 부서지는 소리가 턱을 타고 골을 울렸다. 그 소리에 다소 묻히기는 했지만 마루에서 엄마와 당고모할머니의 딸, 큰외삼촌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문상객은 없었다.

 결국 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처음에는 언니와 약속한 대로 과연 울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는데, 마루에서 명랑하게 웃고 있는 엄마와 엄마의 가족을 보고 있자니 쉽게 눈물방울이 흘러나왔다. 천천히 한 두 방울씩 흐르던 눈물은 이내 펑펑 쏟아졌다. 나는 내친김에 티브이 드라마에서 본 대로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도 흉내 내며 울었다. 갑작스러운 곡소리에 놀란 상주들이 마당으로 달려 나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달랬다. 계속 달래도 내가 울음을 그치지 않자 큰외삼촌은 버럭 화를 냈다. 큰 소리를 들으니 다른 눈물샘에서 맛이 다른 눈물이 솟아났다. 만화책 한 꾸러미와 손전등을 들고 현관문을 넘어오던 언니가 울고 있는 나를 보고는 내 옆에 앉았다. 언니는 약속한 대로 함께 울었다. 명랑하고 명랑하게. 펑펑.  



2022

장 창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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