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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라란 Nov 21. 2023

겨울은 따뜻해

 차갑고 단단해지는 공기에서 가을이 깊어져 감을 온몸으로 느낀다. 나는 매년 가을과 겨울에 좀 더 기분이 좋고 바이오리듬이 안정되는 느낌을 받는다. 겨울이 좋은 건, 역설적이게도 따뜻함이 좋아서다. 추운 날 마시는 따뜻한 커피, 길거리 붕어빵과 따끈한 어묵국물, 포근한 수면바지, 안정감을 느끼게 하는 포동포동한 패딩과 옷의 털 장식, 연말연시에 서로 나누는 따뜻한 마음까지. 항상 쿨한 것보다는 따뜻한 것이 좋았다. 여름은 따뜻함을 즐기기에는 너무 덥다.     


 고등학생 때 살던 집은 언덕 위에 있는 빌라였는데, 겨울에 외풍이 심했다. 그렇다고 난방을 펑펑 틀고 살 수는 없는 가난한 형편이었기에 우리 가족은 전기장판에 의지하고 살았다. 잘 때면 전기장판을 뜨뜻하게 틀어 놓고 이불을 꼭 덮고 온 가족이 함께 잤다. 밤새 틀어놓은 전기장판은 아침에 일어날 때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뜨끈했다.  땀을 흠뻑 흘리고 일어나면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었더랬다. 한날은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는데, 그날도 당연하게 전기장판 위에서  귤도 까먹고 놀다가 함께 잤다. 그날의 기억이 아직도 진하게 남아있는 것은 친구의 놀림 덕이다.

 "나는 그날 정말 타 죽는 줄 알았어. 진짜 깜짝 놀랐다니까."

 친구는 만날 때마다 그날을 기억하며 웃었다. 그전에는 모든 집이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는데 친구 덕에 우리 집이 특이하다는 걸 알게 됐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남향집이라 겨울에 해가 깊이 들어오고 외풍도 심하지 않아 겨울에 특별한 난방 기구를 사용하지 않았다. 난방을 틀어 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낀 데다 남편은 전기장판 같은 것을 질색하는, 몸이 뜨거운 사람이라 결혼 이후 전기장판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조금의 아쉬움은 있었지만 폭닥한 이불이라든지 수면 바지, 수면 양말 같은 것으로 따뜻함을 향한 열망을 다독이며 살았다.     


 몸이 찬 나를 잘 알고 있는 친정 엄마는 늘 겨울마다 우리 집의 온도를 걱정하셨다. 우리 집은 실내 온도가 겨울에도 25도 정도라 전혀 춥지 않은데 엄마가 왜 그리 나를 걱정하시는지 나는 이해가 잘 안 갔다. 그런데 이번 추석 연휴 엄마가 1인용 전기장판을 깜짝 선물해 주셨다. 그래서 침대 한편에 전기장판을 설치하고 자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 걸, 전기장판을 켜고 자면 낮잠도 밤잠도 그렇게 달콤할 수가 없었다. 새벽에 자주 깨던 내가 덜 깨고 깊이 자게 되었고, 낮잠 한 시간에도 컨디션이 쉬 회복되는 것이었다. 몸 안에 쌓여 있던 스트레스와 고단이 전기장판 위에서는 모두 녹아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친정 엄마로 말하자면, 취미가 숯가마에 가서 불을 쬐는 것일 정도로 따뜻함을 즐기는 사람이다. 매주 토요일이면 숯가마에 가서 가장 뜨거운 온도로 몸을 지지고 와야 한 주를 잘 살 수 있다고 말하는, 불 쬐기의 베테랑! 그런 엄마는 늘 나에게 숯가마에 같이 가자고 말했지만 나는 그 정도의 뜨거움은 반갑지가 않아 한 번도 같이 간 적은 없다. 그런데 엄마는 당신을 닮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었나 보다.     


 그래, 역시 겨울은 따뜻하다. 온갖 따뜻한 것을 곁에 둘 수 있어서 따뜻하다. 서로에게 전해주는 뜨끈한 마음이 있어서 따뜻하다. 요즘 매일 아침, 창을 열고 차가운 바람이 들어올 때면 조만간 내가 즐길 수 있는 따뜻함들이 떠올라 행복해진다. 올 여름은 유난히 더웠는데, 그러면 그 해에는 겨울이 유난히 춥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부디 내 주위 모든 사람들의 겨울이 따뜻하기를 마음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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