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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Jun 14. 2024

Ⅱ부-2. 수능을 겪는 고3 아이들 이야기 3)

3) ‘문희’ 이야기: 저널을 제대로 쓰지 못하다

2011년 수능 직전 저널테라피를 함께한 아이들 이야기 중 세번째 이야기이다. 문희를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저널테라피 경험을 정리했다. 문희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름은 가명이다.  




그만 둘까 고민하다가 처음에는 별 부담 없이 저널테라피를 하려고 왔다. 20분씩 일주일에 두 번 정도라면 해볼 만했다. 갑자기 학교 행사가 연달아 생기자 20분도 시간 내기가 어려워졌다. 몇 번이나 선생님께 빠지겠다고 말씀드릴까 고민했지만, 그만 두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몇 차례 했던 저널테라피 덕분에 마음이 안정 되고 수능에 대해서 담담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요즈음 내 마음은 수능이 걱정된다. 수능 날까지 이제 한 달 남았는데 오늘 선생님들께서 어제 본 모의고사 통계 이야기 해주는 거 듣고 허무했고 걱정되었다. 나도 열심히 한다고 한 것 같긴 한데 이제야 많이 부족했다고 느끼게 되었다. 해도 오를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감도 들고 내가 대학 가서 뭐 해야 하나 생각도 들고 마음이 싱숭생숭하다. (나의 1회기 저널 중)      


수능과 진로에 대한 걱정으로 심란한 상태였는데 저널을 쓰면서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게 되었다. 5회기 수능과의 대화를 하면서는 수능에 대해서 생각하는 마음이 조금은 편해진 것 같았다. 수능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지금 당장은 인생의 전부인 것 같고 이것으로 미래가 결정될 것 같지만 수능은 내 인생의 극히 일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수능 준비를 소홀히 하지는 않겠지만 12년 동안의 노력을 보여주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하니 부담이 덜어지는 느낌이었다.     

 

수능에게 : 이제 널 만나기까지 딱 2주가 남았어. 한편으로는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지만 또 한편으로는 널 만나고 나서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무섭다.

 나에게 : 지금까지 날 위해 노력해 준 너에게 분명 좋은 결과가 있을 테니까 두려워하지 말고 남은 2주 동안도 열심히 노력해 주길 바래.

수능에게 가뜩이나 너가 예전보다 난이도가 낮게 나온다고 해서 걱정이 많다. 실수 잘하는 나한테는 그날 컨디션에 따라 엄청 좌우될 거 같다.

 나에게 잘 자고 잘 먹고 남은 2주 동안 너무 무리하지 말고 조절하면 실수 없이 잘 끝낼 수 있을 거야.

수능에게 그래! 그럼 너의 말을 믿고 남은 2주 동안 최선을 다 할게. (나의 5회기 저널)  

   

진로미결정 그동안 나의 내면에 대해서도 미래에 대해서도 생각해 본 적이 거의 없어서 저널 쓰기가 버거웠다. 지금 당장 닥친 대학에 대한 목표만 있었지 내가 정작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하면 행복할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일단 수능 보고 나서 생각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저널에 무엇을 써야 할지 손도 못 대고 망설일 때가 많았다. 진로를 위해 입시를 치르는 것인데 나는 입시 너머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동안 꿈도 없이 살아온 자신이 한심했다. 하고 싶은 일을 과연 찾을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7회기의 미래 일기는 제대로 쓸 수가 없었다. 내가 채우지 못한 넓은 여백에 선생님은 내 글의 4배쯤 되는 긴 글을 쓰셨다. 7회기 저널에 쓰인 ‘자책감’이라는 단어 때문에 선생님께서는 더 속상하신 것 같다. 사실 ‘자책감’이라기보다는 ‘걱정’이었다. 하긴 ‘걱정’이라고 썼어도 선생님은 속상해 하셨을 것이다. 수능을 앞두고 이 저널이 내게 걱정을 키워줬다고 생각하셨을 테니까. 하지만 7회기를 계기로 수능 후 미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겠다는 중요한 다짐을 하게 되었다. 이런 다짐은 8회기를 하면서 더욱 단단해졌다. 8회기는 자신의 소망목록 10개를 쓰고 소망선언문을 적어 보는 것이었는데 5개밖에 쓰지 못했다. 나머지 5개의 빈 칸을 보면서 다짐했다. 수능이 끝나면 꼭 내게 맞는 진로를 찾아 나머지 5개를 채우겠다고.      


수능 후 다시 저널 속으로 부모님께서 수능일에 내 걱정을 많이 하셨다. 나는 사소한 것에도 긴장을 잘하고 대담하지 못한 성격이었다. 그동안 저널테라피를 통해 자신감이 생겼다. 저널을 통해 수능은 그냥 내 인생에서 극히 일부분이라는 생각을 하게 돼서 부담이 줄었다. 떨지 않고 담대하게 수능을 마쳤다. 수능 후 다시 저널 속으로 돌아가 보았다. 꿈이 없어서 머뭇거리며 제대로 쓰지 못했던 저널들... 저널을 쓰며 끙끙대던 기억이 꿈을 찾아 가도록 나를 이끌어 주었다. 부모님과 진로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솔직하게 나누었다. 저널을 쓰면서 고민했던 경험이 없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진로에 대해 탐색하지 못했을 것이다. 수능 점수에 적당히 맞춰서 대학도 전공도 선택했을지 모른다. 이제는 그럴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책임감을 충분히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아? 고민하는 것이 쉽지 않지만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저널을 쓰며 깨달았다. 이 저널 쓰기에 감사하다.    


 나:  저어~ ○대 무역학과 갔어요.

     <중략>

선생님: 과는 어떻게 정했어?

나:  제가 전공을 못 정했었잖아요. 제가 언어를 배우는 데 관심이 많아요. 외국어 공부도 많이 하고 싶고 세계로 뻗어 나가고 싶어서... 

선생님: 아! 그랬구나. 어떤 언어에 관심이 많아?

나:  우선 영어 회화를 잘하고 싶고... 스페인어에도 관심 있어요.

선생님: 우와! 멋있다. 영어도 스페인어도 잘하는 세계적 무역가가 되겠네!.  

나: 예, 꿈이 생기니까 저도 좋아요.

                                           (2012년 3월 4일, 선생님과 통화 내용 중)

 

이제는 꿈이 생겼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역학과에 진학했다. 저널 쓰기는 내 꿈을 찾게 한 첫걸음이 되었다.     


덧붙이는 이야기

문희는 처음 신청자 중 불참자가 생기는 바람에 우연히 참여하게 되었다. 이 우연이 문희에게 크롬볼츠의 ‘계획된 우연’이 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문희는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학생이었다. 그런데 미래에 대한 계획이 없었다. 꼭 되고 싶은 것도, 가장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상위권 대학교에 진학하는 목표만 생각하며 공부했다. 과연 저널테라피를 통해 문희는 무엇을 경험하게 될까? 과연 미래를 향한 문을 열 수 있을까? 이런 기대감으로 문희의 저널을 지켜 보았다. 문희는 저널을 쓸 때마다 항상 가장 늦게 시작하였다. 무엇을 써야할지 망설이는 시간이 길어서 신경이 쓰였다. 10년 후를 상상하는 7회기 저널에 쓰지 못하겠다는 하소연을 낙서처럼 끄적여 놓았다. 그런 자신에게 자책감이 든다고 써놓았다. 그 저널을 본 순간 나는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문희를 도와주려다가 자책감을 유도하다니...... 이렇게 문희는 8회기를 마쳤다. 문희는 내면을 들여다 본 적도 미래를 구체적으로 그려본 적도 없었다고 했다. 그 한 번도 없었던 경험을 저널테라피를 통해서 하느라 힘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수능 후 자신의 저널 덕분에 꿈을 찾아낼 수 있었다며 감사하다고 했다. 문희는 미래에 대해 한 줄도 쓰지 못하고 자책하던  경험 덕분에 앞으로 가야할 길의 방향을 찾아 나서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우연히 만난 저널테라피가 문희에게 의미있는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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