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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명희 Jun 15. 2024

Ⅱ부-2. 수능을 겪는 고3 아이들 이야기 5)

5) ‘주희’ 이야기, 성격도 꿈도 이상한데

2011년 수능 직전 저널테라피를 함께한 아이들 이야기 중 다섯번째 이야기이다. 주희를 1인칭 주인공으로 하여 저널테라피 경험을 정리했다. 주희의 동의를 받았으며 이름은 가명이다.       




마음 털어놓기 저널테라피를 시작하기 전, 10월 모의고사 결과가 좋아서 의욕만땅의 상태였다. 그런데 마음은 뭔가 탁하고 어두운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바탕색이 이렇게 칙칙한 색깔이니 아무리 밝은 선으로 희망적인 그림을 그리려 해도 표가 날 것 같지 않았다. 그즈음 친구에 대한 배신감으로 누가 말 걸기 전에는 먼저 입을 열지 않는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런 내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해결할 심리상담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공부할 시간을 쪼개는 게 좀 부담스러웠다. 이게 대학 가는 데 무슨 도움이 될까 싶어 그 효과도 의심스러웠다. 그런데 첫 시간부터 이상하게 속에 있는 말들이 솔직하게 쏟아져 나왔다. 선생님은 어차피 내가 모르는 사람이니까 마음을 털어놓아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떠오르는 대로 손아 가는 대로 다 썼다. 쓰는 것만으로 마음이 조금 풀렸다. 생각을 글로 쓰면서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게 되었다.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을 더 정확히 알게 되었다. 그러자 잡념이 줄어들었다.      


문제가 개성으로 반전(反轉)  1회기의 ‘자아이해’를 위한 문장 완성 저널에서 나에 대해 정리할 수 있었다. 나는 사람 때문에 힘들어 하고 나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게 문제가 있는 거라면 고치고 싶었다. 저널테라피를 하면서 내가 변화되길 원했다. . 그런데 1회기 피드백에서 선생님은, 나조차도 이건 정신적 장애고 왕따거리라고 생각하던 문제를 개성이라고 바꿔 말씀하셨다. 막무가내로 다른 사람들과는 안 맞아서 못 지내겠다는 내게 선생님은 그게 너의 개성이라고 하셨다. 그 ‘개성’은 바로 ‘나만의 시간과 공간이 소중한 사람’이라고 2회기 피드백에서 정리해 주셨다. 이것은 반전이었다. 내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존중해 주어야 할 개성이 있었다. 2회기를 하고나서 내가 그리 잘못된 게 아니라는 걸 비로소 느꼈다. 성격이 이상해서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며 자신을 구박했는데, 나 자신이 소중해졌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선생님은 내 마음을 스캔하듯이 정확히 읽어 내셨다.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준다는 사실만으로 이렇게 힘이 되는 줄 처음 알았다.      


누가 나를 건들지 않으면 내 생각대로 내 계획대로 일이 잘 풀리는데, 꼭 누군가 개입하면 일이 틀어지고, 자꾸 안 좋은 방향으로만 흐른다. 나도 남의 일 관심 갖고 싶지 않고 관심도 없다. 나를 가만히 냅두면 그냥 그저 행복할 텐데 자꾸 건들고 자기가 화낸다. 그래서 말 걸기도 싫고 괜히 관심 있는 척하기도 귀찮다. 근데 소리 지르고 싶지는 않다. 그냥 조용히 지내고 싶다.  (나의 2회기 저널 중)   

   

주희는 나만의 시간과 나만의 공간이 매우 소중한 사람인 것 같아. 그런데 사람들은 그것을 잘 모르고 주희의 시간과 공간에 침입자처럼 들어와서 주희를 흔들어 놓고 아무렇지도 않게 나가버리곤 하는 것 같아. 소리 지르지 않는 주희라서 주희가 얼마나 마음 상하는지도 모르는 채 말이야. 그래서 오히려 가까운 사람들이 주희를 외롭게 만드는구나. 혼자서도 외롭지 않은데 오히려 사람들이 주희를 외롭게 하나보다. 

                                                                                               (선생님의 2회기 피드백 중)     

다시 희망을  저널테라피를 한 회 한 회 하면서 학교생활이 즐거워졌다. 마음에 덧칠한 어두운 색깔들이 한 겹 한 겹 벗겨졌다. 다시 친구들과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집중력이 좋아져서 공부도 잘 되었다. 기분이 좋아지고 꿈꾸던 미래가 희망적으로 그려졌다. 6회기에서는 내가 얼마나 ‘물리학자’가 되고 싶은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참 많다. 그 중  인생을 걸고 하고 싶은 일은 ‘반물질 연구’이다. 이 일을 통해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 누구나 들으면 비웃던 반물질 연구의 꿈을 선생님께서는 믿어주셨다. 19살 우리는 아직 어리고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렇게 믿어주기만 하면 된다. 냉철하게 현실을 직시하라는 실용적인 충고보다는 믿어주는 것이 훨씬 도움이 된다. 나의 꿈에 대해 아무도 불가능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알겠는가? 설령 실패한다 할지라도 나를 존재하게 한 나의 꿈이기에 소중하다. 사람들은 미리부터 결론을 내려 주려고 한다. 빨리 포기하고 현실적인 꿈을 가지라고 한다. 그래서 내 꿈을 쉽게 말하려 들지 않았다. 꿈에 대해 7회기 저널을 쓰면서 누가 볼까봐 손바닥으로 종이를 가렸다. 허풍을 떤다고 할까봐 부끄러웠다. 별나고 이상한 상상을 한다고 할까봐 감추고 싶었다. 사람들의 비웃음 때문에 나조차도 내 꿈을 믿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하지만 7회기 인터뷰를 쓰면서 진로를 위해 어떤 준비를 해야할지 구체적으로 떠올랐다. 사차원적이라고 무시를 당하던 꿈이 현실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내 꿈이 자랑스러워졌다.     


두 마리 토끼 저널테라피를 시작할 즈음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 때인데 나는 몇 번이고 상담실 문 앞에서 서성이다 돌아섰다. 상담을 하고 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자신에게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너무 괴로웠다. 그러던 중 저널테라피는 내가 누구인지 분명하게 알려 주어 마음을 다스리게 하였다. 꿈에 대한 자부심을 갖게 하여 진로를 구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었다. 저널테라피를 하면서 심리상담과 진로상담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다. 시간이 짧아 너무 바삐 쓴 것과 수능이 코앞이라 더 길게 하지 못한 점이 아쉽지만, 수능 직전이라서 더 솔직하게 더 열심히 참여할 수 있었다. 19살 나의 저널, 여기에 쓴 대로 나의 꿈을 꼭 이룰 것이다. 20살, 30살, 40살이 되어서도 저널을 통해 19살 나의 아픔과 꿈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이야기

주희는 영특하고 냉철한 이성을 지닌 모습이었다. 이과 학생다운 모습이라고나 할까? 정서적인 문제로 흔들리지 않을 단단함이 안경 너머의 눈빛에서 느껴졌다. 그런데 주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힘들어 하며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여겼다. 그냥 다른 사람들과 좀 다를 뿐이지 틀린 게 아니라는 걸 주희가 깨달으면서 편안해졌다. 주희는 저널을 쓰면서 자신의 고유성을 인정하게 되었고 물리학자로서의 진로 계획을 좀 더 구체화하였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주희는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고 공부에 집중력도 더욱 향상되었던 것 같다. 주희는 진로상담과 심리상담의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고 했다. 나는 참여자들에게 진로상담이나 심리상담이라는 말을 언급한 적이 없는데, 주희는 저널테라피의 궁극적 목적을 꿰뚫고 있었다. 물리화학부에 진학한 주희는 물리학자가 되어 꿈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다.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불편해 하지 않는다. 자신을 문제 있는 아이로 만들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지 않게 되었다. 많은 이들과 자유롭게 소통하는 대학생활도 19살 저널이 준 선물이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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