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씩 벗어나길
회사에서 친하게 지내는 또래 엔지니어 동료들과 점심을 먹었다.
겨울이니 냉면이 땡긴다며...역쉬 겨울엔 냉면이쥐~~
지난주에 약속을 깬 이유를 설명하다 아이의 입시 준비 때문에 그랬단 얘기를 하며 Fusion 360으로 그린 드론을 보여줬다. 입시생 엄마의 정성과 아직 죽지 않은 나의 소소한 능력을 자랑하려고 꺼냈는데
"뼈대 밖에 없네? 엔진은 어디 있어?"
"배터리도 없는데 어떻게 날아?"
엥? 그렇긴 하지만 그걸 보라는 건 아니잖아? 첨 써보는 소프트웨어로 2~3시간 만에 이만큼 그렸단 말이야. 그걸 봐달라고!
"우리 모두 정비실에서 CAD 한 번씩 다 사용한 사람들이야. 그 정도는 기본이지. 날지도 못하는 걸 왜 그렸어? 뭘 보라는 거야?"
아~~ 간과했다. 공대생이란 걸~
커피 마시며 전화기에 관한 얘기가 나왔다.
한 명이 최신 Apple 14 Pro로 바꿨다고 보여준다.
일단 정품 Apple 아이폰 맥세이프가 아니다.
"이 케이스는 무슨 역할을 해?"
"응? 케이스가 케이스 역할을 하지 뭘 해?"
"아니 다른 특수한 기능 같은 거 없어?"
디자인이 괜찮네, 예쁘네 같은 느낌은 뒤로 하고 바로 기능과 효율로 직진한다. 아이폰 맥세이프가 아닌 걸 샀으니 당연히 다른 특별한 기능 때문에 샀을거란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엔지니어들이란 백그라운드를 알고 있어서 이런 질문을 하는 건가? 순간 헷갈렸다. 다른 친구들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을까?
확실한, 건 진짜 케이스의 기능이 궁금했다는 거다.
아이들 근황을 묻다가 대학 간 얘기가 나오고 자연스레 우리 대학 다닐 때 얘기가 시작되었다.
우리 때는 공대가 좋았다, 취직이 너무 잘 되었다, 한강 이남의 최고 대학이었다, 요즘은 의대 한 바퀴 돌고 다른 데 간다더라, 체력장 빼고 학력고사 몇 점 맞았냐, 평균이 얼마였고 커트라인이 얼마였고, 국사만 잘했어도...
이거 기억나냐? Combination, Exponential, PN juction, sigma, conjugate 등등
각자 아는 용어 하나씩 꺼내 잊어버렸지만 들어 본 적은 있는 얘기로 점심 커피타임이 지나간다.
오랜 사회생활과 관심사의 이동으로 이 틀을 벗어난 줄 알았는데 여전히 갇혀있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이어서 공대를 간 건지 공대를 가서 이런 사람이 된 건지 불명확하다.
말로 주절이 주절이 떠드는 것보다 결과를 똭 보여주는 걸 좋아한다, 논란의 여지없이.
다른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포인트에 공감이 잘 되지 않는다. 저게 왜 문제가 되지?
해야되면 하고 아니면 안 하면 되잖아. 결과가 나오면 수용하면 되고 그 결과가 맘에 안들면 다시 하면 되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더 편향된다는데, 이런 무식함 때문에 주변인들이 좀 피곤해하는 것 같긴 하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회로가 작동하는 걸 어떡해.
쉽게 바뀔 것 같지는 않지만 노력은 해야겠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벗어나길 바라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