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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정민 Jun 23. 2024

기대를 안하면 감동만 와요

기대가 많은 강화도 여행이었다. 우리나라 아픈 역사의 흔적들을 찾아보고 공감함으로서 어쩌면 최근 우울한 내 마음을 달래고 분위기 전환의 기회로 삼고자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극심해진 코로나 감염병 때문에 유적지 출입이 제한되어 일정에 차질이 생겼다. 뜨거운 날씨 또한 움직임을 더 어렵게 했다. 1일차 일정을 대충 마무리하고 인내하는 마음으로 숙소로 돌아와 2일차 일정을 재계획해야 했다. 너무 더워서 야외 유적지 위주의 짧은 관람과 잠시 더위를 식혀줄 수 있는 장소를 찾다가 평소 독립서점에 관심이 있어서 강화지역 독립서점들을 찾게 되었다.   


<책방 국자와 주걱> 익숙한 단어의 조합이지만 책방 이름으로는 독창적이구나 정도의 느낌이랄까 싶었는데, 국자와 주걱의 역할이 남들에게 퍼주는 것이라 그렇게 지었다니 주인 선생님 공유 정신의 뜻에 감탄이 나온다. 작은 공간이지만 잘 정돈된 책들을 보면서 어슬렁 거리고 있는데 단아한 차림의 선생님이 '안녕하세요, 에어컨 좀 틀어야 겠네요' 하면서 맞아 주신다. 선생님은 외모는 작지만 왠지 삶의 컨텐츠는 풍부할 것 같아 대뜸 질문병이 도졌다. 이렇게 갑자기 선생님에게 삶의 교훈을 듣는 행복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인터뷰하는 실력과 요령은 나도 마음에 안든다. 나아지겠지.   


고향이 인천이신 선생님은 강화에서 10년째 자연과 더불어 살고 계신다. 지역에서 평범하게 살고 계신 분들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이렇다. '자신들을 감추려는게 하나도 없고 그냥 다 보여주는 자연을 우리가 바라보면 사람도 자연이 된다. 그들은 자연이고 보배다. 여기저기 진주들이 붙어 있다'. 사람들을 자연의 일부로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이 존경스럽다. 가끔 내가 강의를 할 때면 4차 산업혁명 시대 인본주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했던 게 빛 좋은 개살구 같아 부끄러워졌다. 선생님의 사람 존중하는 예쁜 마음이야말로 진정한 인본주의 아니겠는가.     


선생님은 책방 운영을 통해 외부 사람들과의 연결을 확장하고 있다. '외지에서 오시는 분들이 정말 너무 저랑 닮은 사람들이 오는 거에요. 사람들이 너무 정말 어떻게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지. 내가 좋아하는 책들을 내가 보려고 한 건데 다들 내 취향인거야 사람들이'. 낭랑한 목소리에 묻어난 행복이 보인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쁜 사람들이 없다고 하신 말씀처럼, 선생님이 만든 그릇에 찾아가는 분들 스스로 그 그릇에 어울려야 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그녀의 행복에 나도 조금이나마 일조했길 바란다.   


'기대를 안하면 감동만 와요'. 정착하고 책방을 운영하면서 어려웠던 점들이 있는지 질문에 대한 선생님의 멈춤없는 대답이다. 짧지만 강한 메시지다. 찾아 오는 북스테이 손님들의 사전 전화 문의에도 그냥 시골집이고 불편할 거라 기대하고 오시면 실망할 거라고 말씀하신단다. 생각하지 말라고 하면 더 생각나는 코끼리 법칙이라고 했던가. 순간 손님들이 기대하셨다가 실망한 경우가 있을 까 혼자 맘 속으로 염려 했는데 그런 경우는 없었던 것 같아 다행이다. 한번은 북클럽 활동으로 남자 중학생들이 온 적이 있단다. 장난만 치던 아이들은 창문 보면서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그들 중 한 친구가 '우리 할머니가 해주는 것 같아' 라고 혼잣말을 하더란다. 선생님은 그 친구가 진정한 휴식을 하고 있구나, 내가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가 없었는데 그래서 감동이었다고 하신다. 나는 살면서 기대라는 단어는 성과, 명예, 부 등 내가 얻는 것 위주로 생각했다고 부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늘 그런 기대를 하니까 실망이 컷다. 선생님은 기대도 안하시지만 하신다면 '남 행복하게 해주기'가 아닐까. 선생님의 더 많은 감동 스토리가 기대된다.     


기대를 안했더니 감동적인 만남을 할 수 있었다. 결국 기대했던 감동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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