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프의 친구가 하는 치킨집에 맥주 한잔 하러 갔다가 사장님, 아니 시인 구시영 작가를 만나게 되었다. 소박한 선술집 분위기의 가게에서 구작가를 만나게 되다니, 진주는 정말 흙 속에 있나보다.
사물을 바라보고 그림으로 표현하면 화가, 글을 함축해서 쓰면 시가 된다. 강을 내려가는 래프팅을 할 때 거센 너울에 힘겹게 저항할 수록 배가 뒤집어진다. 흐르는 강물에 자연스럽게 몸을 맡겨야 인생이 아름답다는 시인 구작가의 말이다.
시인의 강에 몸을 맡기는 구작가의 이야기는 사전준비가 없어서 애먹었던 이야기로 시작된다.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이론적인 틀 또는 기본적인 스킬이 있어야 한다. 그런게 없으면 빈약해진다. 나름대로 시론, 시학이 있는거다. 한때, 그의 글을 소수의 한정된 인원이기는 하지만 보여줄 대상이 있었고, 박수 쳐주는 사람이 있어서 좋았다는 구작가. 시인의 강으로 가기위한 기초적인 배움이 없었고 그저 흉내낸 글 때문에 그는 당시 자괴감이 들었고 굉장히 힘들어 했단다.
구작가는 시인의 강을 거슬러 또 다른 어려움을 겪은 얘기로 이어간다. 구작가가 존경하는 시인이 말씀하시길 구작가의 작품은 너무 난해하단다. 인류가 살아가면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기본적인 틀, 템플릿이 있다. 정반합, 정이 있으면 반이 있고 합의의 템플릿을 찾아야한다. 읽어서 감동을 주기 위한 글이 템플릿을 벗어나 감동이 없으면 읽을 만한 가치가 없다는 거다. 이론적인 학이 시학이면, 시학에 대한 기본적인 이론이 있다. 그것을 뛰어넘지 못하면 더 이상 발전을 못한다. 이처럼 시를 쓰는 작가들은 흐르는 강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요즘 시인의 강의 흐름은 디카시라고 한다. 어떤 그림 또는 사진을 보고 기승전결에 맞게 표현하는 게 아니라, 사진은 기승전까지 전달하고 작가는 다섯 줄 이내의 결론만 내리고, 작품의 판단은 독자들에게 맡긴다. 문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도 사진과 짧은 글을 보고 감동을 받는 것이다. 고작가는 레가시한 글 쓰기로 고집할 게 아니고 시인의 강 흐름의 변화에 맞게 글을 써야 한다는 말을 하고 있다.
최근 요청 받은 고등학교 신문에 실릴 졸업 동문들을 위한 글(제목: 나의 학창시절)을 쓰고 있는데, 글 쓰는 변화의 흐름속에서 본인의 이야기(부제: 다시 나에게)로 작가의 색깔을 유지하고자 한다.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지만, 한편 그만의 호흡으로 유영하고 있는 구작가의 아름다운 인생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