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이 삼팔선이라는 이름으로 한반도 허리를 뚝 잘라놓았 듯, 우리 가족의 허리도 그렇게 끊어져 나갔다.
"너거들 형이 하나 있었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도마 위에서 꿈틀거리는 개구리 뒷다리를 날름 집어먹었어."
우리의 형이라는 그 형은 나와 내 위의 형이 태어나기도 전에 죽었다고 한다. 호적에 흔적도 없어 이름도, 나이도 모른다. 그런 형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다. 어느 날 술 취한 아버지가 넋두리처럼 흘린 말을 코 흘리며 들었던 게 전부다. 그 형이 왜, 언제 죽었는지 묻기에 나는 너무 어렸었다. 그렇게 세월이 갔다. 꿈틀거리는 개구리 뒷다리를 먹었다는 그 형의 존재를 아는 사람 모두 이 세상을 떠난 뒤다. 나는 그를 모른다.
그 형은 5형제 중 딱 가운데 있었다. 둘째와 넷째의 나이 차이는 15년이다. 가운데 있었으니 5년에서 10년 사이인 것 같다. 그때는 한국전쟁 직전이나 휴전 직후였을 것이다. 호적에도 올릴 여유가 없었던 것으로 보아 전쟁 중이거나 직후였던 것 같다. 흔적이 없으니 정말 흔적조차 없다. 어머니는 단 한 번도 그 형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 그 형의 존재를 알았을 큰 누나와 첫째 형도 말한 적이 없다. 술 취한 아버지, 원수만 같았던 그 아버지가 남긴 유일한 하나, 흔적 없는 그 형의 존재였다.
그 형을 생각할 때, 나는 슬프지 않다. 나는 그를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몸뚱이를 뒤뜰에 묻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슬프다. 엄마의 아픔이 내게도 전해온다. 어쩌면 그 형의 존재는 내 몸에 남아있을지도 모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가루가 된 그 형은 감자나 옥수수가 되어 내 몸 안에 스며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 형이 이 땅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 땅이라 해도 그때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지금도 이 푸른 하늘 아래 숨 쉬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의 삶에 이런 가정은 다 부질없다. 별똥별이 지구 어딘가에 떨어지듯 그렇게 떨어져 그곳에서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삶이다. 만약 우리가 태어나는 때와 곳을 선택할 수 있다면, 이 세상은 지옥이 될 것이다. 선택의 후회가 온 삶을 지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보다야 똥구덩이에 떨어졌어도 그렇게 살아내야 하는 삶이 더 낫다. 형처럼 그렇게 이름도 없이 죽을 수도 있고, 엄마처럼 평생 가난 속에 살아야 하는 삶이라도 후회하는 삶보다는 낫다.
'가난', 우리 가족의 중심을 관통하는 단어이다. 그것이 우리 가족 모두의 가슴을 관통함에 망설임이 없다. 그렇지만 굴복하지 않았다. 주어진 모든 여건 안에서 이런저런 것들을 이루어내며 살았다. 찬란하지는 않지만 부끄럽지도 않다. 어머니의 시간은 생존이 목표였다. 우리는 무논에 흙을 퍼 날라 다지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다 가버렸다. 기둥 하나 세워보지 못했는데 해가 서산에 걸렸다. 이렇게 다져진 곳에 번듯한 집 한 채 세우는 일은 다음 세대로 미뤄야 할 것 같다. 나는 그렇게 지어질 집의 문틀이 될 수도 있고 지붕이 될 수도 있겠다. 그 안에는 이름도 모르는 그 형의 흔적도 같이 묻어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