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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낙하 Sep 18. 2022

서울에 대하여

잠시 살았던, 그리고 한때 내가 동경했던 도시.

서울은 뭔가 외로운 도시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스무 살, 서울의 기숙사 없는 전문대학에 합격해 처음 자취를 시작했을 때도, 대학을 자퇴하고 신촌의 고시원에서 유학시험을 준비하며 학원을 다닐 때에도 들었던 생각들. 대학에 다닐 때엔 그나마 매일 만나는 친구들이 있었지만, 친구 하나 없이 매일 고시원과 학원을 오가던 때에는 연고 하나 없는 서울이 참 외로웠다.


밤늦게 집에 돌아오던 날에 보던 신촌의 풍경들은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다. 밤인데도 환하게 불 켜진 건물들, 분주하게 오가는 버스와 사람들. 고시원은 식당이 많은 골목에 있었는데, 인근 대학에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학생들이 술이라도 마셨는지 큰 소리로 떠들며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들을 볼 때면 나는 늘 혼자라는 생각을 했다.


고시원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었지만 우리는 언제나 개인이었다. 주방과 냉장고를 공유하고, 세탁기와 화장실 겸 샤워실을 공유했지만 마주했던 시간은 없었다. 오며 가며 누군가 마주쳤을 법도 하겠으나 모두가 스파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주방에 누군가 있을 땐 잠시 방에서 기다렸다 사람이 가거든 출입했다. 고시원 화장실은 사람 한 명이 겨우 들어갈 만한 공간에 한쪽 벽엔 변기가, 반대쪽엔 세면대와 샤워기가 위치했다.


고시원에 방을 구하러 다닐 때, 대중목욕탕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을 듣긴 했지만, 나는 목욕값이 아까워 그 좁은 공간에 몸을 욱여넣고는 했다. 문 바로 옆에서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나고, 조금만 몸을 돌리면 벽이나 문에 몸이 닿는 공간에서 엉성하게 샤워를 하는 건 아무래도 좋았다.


고시원 아래층 식당에서 불이 나, 황급히 밖으로 대피했던 현충일 오전 여섯시 무렵. 유달리 서늘했던 여름 아침 공기를 잠옷 차림으로 맞을 때에서야 비로소 고시원에 이렇게나 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고시원 사람들과 드문드문 섞여있는 구경꾼들 사이에 서서 문득, 서울에 연고가 있는 사람, 서울에서 자란 사람들이 바라보는 서울은 어떤 모습일지 생각해 봤다. 그들도 이 큰 도시에서 외로움을 느낄까, 아니면 그들의 고향이기에 편안함을 느낄까.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내내 나는 서울을 동경했었다. 미디어에서 본 서울은 밤새 불이 꺼지지 않는 화려한 도시였고, 사람들은 모두 멋진 옷을 빼입고 거리를 활보했다. 아홉 살 때부터 고등학교 삼 학년까지 그 흔한 메가박스나 스타벅스 하나 없던 도시에서 자라온 나에게 서울이란 수학여행 같은 행사 이외로는 들를 일 없는 꿈같은 도시였다. 어른들도 모두 하나같이 열심히 공부해서 서울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도 그래야만 하는 줄 알았다.  


결과적으로 나의 유학은 실패했다. 그러나 그 시간들을 통해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게 되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다시 한번 대학의 문을 두드렸다. 비록 남들이 보기엔 그저 지방에 위치한 사 년제 사립 대학교 일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몹시 만족하며 생활하고 있다. 다시 서울을 떠올려본다. 서울은 내게 외로운 도시였지만, 지나고 나서 돌이켜보면 그 속에 남은 추억들이 나의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어쩌면 나는 서울에서 지내던 시간 동안 외로움을 딛고 설 마음을 얻은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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