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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정 Jun 27. 2024

그놈의 공부, 공부, 공부.

몇 년 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가 있다. 바로 스카이 캐슬. 나는 이 드라마를 보는 내내 마음이 힘들었다. 극 중 세리라는 캐릭터 때문이었다. 세리는 하버드 대학교에 다니는 차 씨 집안의 자랑이다. 그러나 정확하게 세리는, 하버드 대학에 다니는 척하는 가짜 대학생이다. 집안에 어둡고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조성해 아들들을 정신적으로 학대하는 차민혁은 세리를 볼 때만큼은 입이 귀에서 내려오질 않는다. 오직 하버드생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세리가 거짓말을 시작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세리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세리는 본인이 거짓말의 주체였고, 나의 경우 거짓말을 만드는 사람은 아빠였다. 나는 A대학에 다니다가 다시 입시를 치러서 SKY 중 한 곳에 입학했다. 굳이 대학 서열을 매기자면, A대학은 인서울 대학 중 끝자락쯤에 랭킹 된 대학이었다. 합격 글자를 보며 기뻐하는 내 앞에서 부모님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셨다.


그리고 아빠의 거짓말이 시작됐다. 아빠는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SKY에도 붙었는데 판검사가 되기에 A 대학의 학과가  나은  같아 학과를 보고 A대학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화 통화를 듣고 있자니  얼굴이 뜨거워졌다. 정말 말도  됐다. 학과를 따지기에는  대학의 네임밸류 차이는 컸고, 로스쿨 입시에서는 학과보다는 대학 간판이 훨씬 중요했다. 고작 스무 살이었던 나도 아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아빠는 표정하나 바뀌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어느새 아빠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같았다. 그러면서도 중단시키지는 못했다. 그때 나는 아빠가 무서웠다.


문제는 아빠가 무분별하게 살포하는 거짓말이  친구의 귀에도 닿아버린 것이었다. 친구는 내게 SKY 붙었냐고 물었다. 그때 느꼈던 수치심이 아직도 생생하다.  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해 와서는  고개를  떨구어 놓는다. 친구에게 나는 아니라고 했다. 차마 아빠의 허풍이라고는 말하지 못했다. 중간에서 말이 와전됐나 보다, 그렇게 연기했다. 마치 아빠처럼. 부끄러웠다.


내가 아빠에게 판검사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던 적이 있었던가. 그러나 내 의사 따위는 아빠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아빠의 허세에 활용하기 좋은 직업이 무엇인가였다. 아빠는 내 장래희망을 이미 판검사로 정해놓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물론 허풍도 허세도 처음 겪는 일은 아니었다. 아빠는 신나게 허풍을 늘어놓으면 끝이었지만   일들은   몫이었다. 아빠에 의해 만들어진 나의 대외적 이미지는 수재였으니 마땅히 무언가를 성취해야 하는 나이가 되면 언제고 친척들은 나를 찾았다. 뭐가 됐는지 물어봤다. 지금도  순간이 너무 싫다.


나는 우리 집에서 어떤 대명사로 통한다.


‘공부하는 애’


나는 ‘공부하는 애’라는 프레임 안에서 자라왔다. 엄마는 우리 집에서 공부하는 애는 나 밖에 없다고 나는 공부를 해야 한다고 했다. 다른 남매들이 학원을 빼먹든 밤새 게임을 하든 외모를 가꾸든 자유롭게 나뒀으면서 나는 ‘공부하는 애’의 규격에 맞춰 살도록 엄격하게 통제했다. 저 단어로 나를 평생 옥좨온 엄마와 아빠에게 도대체 ‘공부하는 애’가 뭐냐고 묻고 싶다. 내 안에서 다채로운 호기심이 펼쳐질 때마다 ‘공부하는 애’라는 한 마디로 모든 것을 억제시키고 부정했으면서, 그 ‘공부하는 애’에 내포된 함의에 대해선 설명을 생략하던 엄마와 아빠를 붙잡고.


나는 대학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다. 그곳은 천국이었다. 스무 살. 뭘 해도 안 좋을 수 있겠냐만은, 가족으로부터의 독립은 나에게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문 하나를 열어주는 것 같았다. 그러나 슬프게도 아주 잠깐동안만이었다. 그래, 이렇게 쉽게 벗어날 수 있는 일이라면 애초부터 도망칠 곳을 찾아 헤맬 필요도 없었겠지, 나는 체념했다.


새롭게 나를 괴롭힌 단어는 ‘공부는?’이었다.


동아리에 가입한다는 말에 ‘공부는?’이라는 답장이 왔다. 숨이 턱 막혔다. 저 세 글자는 압박의 새로운 상징이었다. 아르바이트를 알아본다고 하면 또다시 날아왔다. ‘공부는?’이라고. 친구들과 여행을 가도 ‘공부는?’, 드라마를 보고 있으면 ‘공부는?’, 카페에 가서 책을 읽어도 ‘공부는?’. 엄마는 내가 공부가 아닌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면 ‘공부는?’이라고 자동 응답기처럼 물었다. ‘공부는?’ 이 세 글자는 일상 곳곳에 침투해 나를 멈추게 했다. 성인이 된 내게 1분 1초마다 공부 타령을 했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머리에 띠라도 두르고 어디 산골에 처박혀서 공부라도 하길 바랐던 걸까? 그놈의 공부는, 공부는, 공부는. 무슨 말을 해도 저 답장이 오니 나중엔 구역질이 났다.


나는 결국 내 이야기를 하지 않길 택했다. 엄마와 아빠는 내가 먹고 자는 시간 빼고 공부를 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 중간에 SKY 대학으로 이동도 있었으니 내가 ‘공부는?’의 규정을 성실히 지킨다는 생각에 얼마나 만족했을까. 그러나 나는 여느 대학생이 그렇듯 아르바이트도 했고, 대외활동도 했고, 동아리도 했다. 학교 생활도 즐겁게 잘 보냈다. 시험기간 때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과제는 할지라도 시험 기간도 아닌데 공부를 하는 친구는 없었다. 적어도 내 주변에는. 물론 엄마와 아빠에겐 이 지독하게 평범한 대학생의 일상을 비밀로 했다. 그렇게라도 할 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졸업반이 됐다. 같은 과 친구들 대부분이 로스쿨 준비를 했다. 그 해 여름, 나도 로스쿨 입시를 위해서 필수적으로 치러야 하는 시험인 리트 시험을 쳤다. 로스쿨에 가서 무엇을 추구하겠다 하는 분명한 목적의식까진 없었지만 학업적으로 발전하고 싶은 욕구는 있었다. 또한 엄마와 아빠로부터 싫은 소리를 듣지 않아도 된다는 게 큰 이유이기도 했다. 그 상태메시지를 보기 전까지는.


‘부정부패 제보받습니다.’


아빠의 카카오톡 상태메시지를 보는 순간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 들었다. 동생 말에 의하면, 아빠는 주변에 딸이 곧 판검사가 된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했다. 설령 내가 뭐가 되었더래도 아빠가 왜 부정부패를 제보받는데? 머리가 뜨거워졌다 차가워졌다를 반복했다. 나는 안다. 아빠의 상태 메시지는 약자 보호나 정의 구현 등 정말 부정부패를 타파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허세와 잘난 척을 위해서라는 것을.


나는 엄마에게 빌다시피 부탁했다. 아빠에게 직접 말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얼마 뒤 아빠는 상태 메시지를 내려줬다.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내가 모르는 곳 어디까지 아빠의 허풍이 뻗어있을는지 겁이 났다. 알고 싶지 않다. 다만 시험을 잘 쳐서 엄마와 아빠가 좋아할 걸 생각하니 반발심이 들었다. 멘탈이 무너졌다. 나는 리트 시험을 망쳤다. 이런 결과까지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도저히 문제가 읽히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해 시험도 망쳤다. 나는 더 이상 리트를 치지 않기로 했다. 왜인지 홀가분했다.


문제는 내 결정을 어떻게 엄마와 아빠에게 말할지였다. 나는 교수님께서 취업을 추천해 주셨다고 전문가의 뒤에 숨는 전략을 택했다. 엄마와 아빠는 동시에 '너는 공부하는 애'라고 했다. 도대체 공부하는 애가 뭔데, 도대체 그게 뭔데 매번 나를 막아 세우고 주눅 들게 하는 건데? 대학 졸업생이 취업을 준비한다는 게 도대체 뭐가 문제길래 거기에도 '공부하는 애'가 따라붙는데? 물론 두 사람 앞에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화를 내지도 못했다. 한숨을 쉬지도 못했다. 내가 '공부하는 애'와 '공부는?'의 가스라이팅에 외부적으론 반발하지 않는 동안 엄마와 아빠에겐 동의의 의미로 해석되고 있었다.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와는 별개로. 그러니 이 지경이 된 데에는 나의 책임도 분명히 있다.


나는 그 '공부하는 애'의 감옥으로 다시 들어갔다. 내 발로. 공부하는 애 연설을 하는 엄마와 아빠 앞에서 밥상을 뒤엎을 용기 따위는 없었다. 그렇게 나는 고시촌에 들어갔다. 그때 엄마에게 아빠한테는 비밀로 해달라고 부탁했다. 알겠다고 대답한 엄마는, 결코 비밀을 지킬 사람이 아니었다. 친척 모임이 있을 때면 온 사람들로부터 고시 붙었냐는 질문이 날아왔다. 처음 보는 할아버지에게서도. 아빠는 거기서 유명한 인물들을 읊어대며 판검사보다 더 대단하다며 연설했다. 어린 동생들에겐 미리 내 사인을 받아둬라고도 했다. 짜증 나서 눈물이 났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 될 텐데 그런 날이면 나는 언제나 밤잠을 설쳤다.


나는 고시촌에서 3년을 공부했다. 마지막 시험에서 소수점 차이로 탈락하고 손을 털었다. 그렇게 지금까지 퍼져버렸다. 그 꼴 그대로 삼십 대가 된 것이다. 나는 다른 시험에서 아쉽게 고배를 마셨던 친구에게 너무 아깝다고 딱 한 번만 더 시험을 쳐보라고 조언을 한 적 있다. 그게 얼마나 주제넘은 말이었는지 소수점 탈락 성적표를 보고서야 체감했다. 내가 그 처지가 되니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못하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이건 정말 못하겠다고, 정말로, 정말로. 어쨌거나 내가 부족한 탓이다. 그런데 자꾸만 엄마와 아빠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어 진다.


며칠 전 유튜브에서 '혜옥이'라는 영화 소개를 본 적이 있다. 고시에 계속 떨어지지만 포기하지 못하는 혜옥이의 이야기였다. 혜옥이 옆에는 자녀에게 엄청난 기대와 부담을 주는 엄마가 있었다. 내가 그런 영상을 많이 봤으니 알고리즘을 탄 거겠지. 혜옥이는 음소거 버튼을 누르고 엄마에게 말한다. 시험 보기 싫다고, 나도 취업하고 싶다고, 아르바이트도 하고 싶다고. 물론 전화기 너머 엄마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엄마는 이름 때문에 떨어지는 거 같다면서 혜옥이의 이름까지 바꿔온다. 혜옥이는 숨이 턱 막힌다. 그러나 엄마 앞에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아마 스카이 캐슬의 영재도, 세리도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도망치고 부모에게 거짓말을 쳐가면서까지 일을 키우면서도 부모에게 기대치를 낮춰달라는 부탁은 차마, 차마 하지 못한다. 공부 잘하는 자식이 아닌, 그냥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 달라는 말도 못 한다.


나는 그 심정을 너무 잘 안다. 부모의 기대를 꺾어버리기보다 차라리 내가 망가지는 게 더 쉬운 그 마음을. 물론 여기서 벗어나야 하는 것 역시 너무도 잘 안다. 두 사람이 뭘 어떻게 하든 그냥 내 갈 길을 가면 되는데, 나는 도무지 그걸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때마다 내 마음에 가장 먼저 드는 감정은 공포감이다.


가끔씩 공부 못 하는 결말을 맞은 나를 보며 할 말을 잃은 엄마와 아빠의 모습을 상상한다. 쌤통이다, 하는 기분이 든다. 그렇게 공부가 대단한 거면 본인들이 하지 왜 나한테 강요하고 그래? 따지는 상상도 한다. 상상 속에서 나는 파리채에 맞지 않는다. 험악한 욕설도 듣지 않는다. 그러는 동안 더 망가지고 있는 내 모습을 망각한다. 바보 같다. 이 와중에 부모님이 나를 공부하는 애가 아니라 바보라고 생각해 줬으면 좋겠다는, 더 바보 같은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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